당신은 왜 불행한가?

한국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막연한 불행감을 안고 살아간다. 그들은 자신이 왜 불행한지도 모르고, 무엇을 고치면 나아질지도 모른 채, 그저 살아간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 불행은 대부분 ‘조급함’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 조급함은 단지 개인의 성격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으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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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조급함이 일상에 너무 깊게 스며들어 있어 당사자는 그것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마치 미세먼지가 심해도 평소 공기와 차이를 못 느끼듯, 우리 역시 그런 환경에 길들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외부의 계기, 예를 들어 외국 생활이나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통해서야 비로소 “내가 그동안 너무 조급하게 살아왔구나”라고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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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급함은 단지 느긋함의 부족이나 시간 관리의 문제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성적인 판단과 삶의 균형을 해치는 정신적 압박감이다. 조급함은 사람을 멍청하게 만든다.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 상황에서도 감정적으로 움직이게 하고, 단기적인 손해를 두려워하여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선택을 포기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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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함은 빈곤이 아니라, 사회적 압박에서 온다

한국 사회가 이토록 조급한 이유는 단지 경제적 빈곤 때문이 아니다. 많은 저소득 국가들조차 한국처럼 조급하지 않다. 나 역시 예전에 조급함을 느꼈을 때, 그 원인을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나보다 더 가난한 삶을 살면서도, 훨씬 느긋하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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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동남아 등에서 만난 사람들은 빈곤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한국 젊은 남성들처럼 초조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불안에 쫓겨 성급한 판단을 하지 않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며 살아갔다. 반면, 한국의 많은 젊은 남성들은 경제적으로 과거보다 나아졌음에도, 훨씬 더 조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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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조급함을 생산한다

왜 그럴까? 한국 사회는 시스템적으로 조급함을 유도한다. 예를 들어, 남자 청년이 주식에 손댔다가 투자 실패로 전 재산을 날리는 경우가 있다. 겉으로 보기엔 무리한 투자를 한 개인의 책임처럼 보인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그에게 “지금이라도 무언가 하지 않으면 영영 낙오한다”는 공포심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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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예로, 어떤 사람은 심각한 비만을 겪고 있었지만, 알고 보니 헬스를 다니며 단백질 쉐이크까지 먹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더 망가졌다. 왜?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조급한 조급한 강박감이 앞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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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함을 이끄는 구조: “남에게 피해 주지 마라”는 말의 위선

한국 사회는 ‘조급함’을 도덕적 언어로 포장한 사회적 압박을 통해 확산시킨다.

“남에게 피해 주지 마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이 말은 겉보기엔 공익을 위한 듯하지만, 실제로는 타인을 통제하고, 개인의 삶을 간섭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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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군가의 행동이 못마땅하면 “그건 남에게 피해를 주잖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 피해가 없더라도 ‘기분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제재하려 한다. 예를 들어, 외국인 노동자가 집을 알아보려고 전화를 하면, 집주인은 “외국인은 안 받는다”고 거절한다. 이유를 묻자, “시끄럽고 지저분해서”라는 막연한 말만 반복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 외국인이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있는지 확인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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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한국 사회에서는 “도덕적 정당성”이 사실과 상관없이 작동한다. 어떤 행동이 실제로 해를 끼치지 않더라도, 집단이 싫어한다면 그것은 ‘피해’가 되고, 그에 따라 개인은 제재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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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을 빌미로 타인을 통제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 사회

이 사회의 특이한 점은, 사람들이 비판은 잘하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병역 거부를 한다거나, 노키즈존에 반대한다거나, 마스크를 벗는 것에 대해 의견을 표할 때, 주변 사람들은 “그건 공공의 피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피해를 주는지, 아니면 단지 자신의 불편함일 뿐인지는 성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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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판단을 정당화하기 위해 ‘공익’이라는 말을 끌어오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싫은 것에 대한 정서적 반응일 뿐이다.

즉, “나는 싫지만, 그걸 내 감정 때문이라고 말하면 내가 나쁜 사람이 되니까…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너를 비난하겠다.”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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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조용한 책임 회피’를 제도화했다

한국 사회는 ‘말 안 해도 알지’라는 식의 비언어적 압력을 선호한다. 그 속에선 명확한 책임도, 명확한 기준도 없다.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통제하고, 그로 인해 누군가가 불행해져도 “그건 네 선택이잖아”라고 말한다.

이중적이며 무책임한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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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사회에서 “착하게 살라”는 말은, 사실 “타인의 기분을 해치지 말라”는 말일 뿐이며, 그 기분은 항상 조심스럽게 읽어야 하는 사회적 기류에 달려 있다. 그것은 공기처럼 퍼져 있지만, 그 실체는 없다.

우리는 그 공기에 질식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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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개인의 내면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조급함, 도덕적 압박, 공익이라는 이름의 궤변, 그리고 무책임한 사회 분위기.

이 모든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