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에 뿌리는 번식인가..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질투했다
과거의 척박한 환경에서 자원과 배우자는 늘 한정되어 있었다. 내 곁의 누군가가 나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보이거나 높은 지위를 차지한다는 것은, 단순한 시샘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곧 나의 번식 기회가 박탈됨을 의미하는 실존적 위협이었다.
이때 질투를 느끼지 못했던 관대한 개체들은 경쟁자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유전자를 남기지 못한 채 도태되었다. 반면, 타인의 우월함에 극심한 불쾌감을 느끼며 반응했던 질투하는 개체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번식 가치를 사수하여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했다.
결국 질투는 우리가 나빠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번식 전쟁에서 승리한 질투쟁이들의 후손이며 질투는 우리 유전자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가장 강력한 생존 전략이다
문제는 우리의 '뇌'는 여전히 수만 년 전 초원 위에 있는데, 우리가 사는 '환경'은 빛의 속도로 변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치명적인 시스템 오류가 발생한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SNS 등을 통해 내 번식 범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전 세계 수만 명의 '우월한 경쟁자'를 매일 마주한다.
우리 유전자는 이 화면 속 인물들을 실제 내 옆집에 사는 위협적인 경쟁자로 오인하고, 쉴 새 없이 위험해! 번식 가치가 떨어지고 있어! 라며 질투의 경보를 울려댄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가짜 경보다 불이 나지 않았는데도 요란하게 울리는 구식 화재경보기처럼,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한 구식 뇌가 불필요한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현대의 질투는 본능의 발현이자, 동시에 거대한 기술 격차가 만들어낸 해프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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