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분을 공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밥이 아니다,
재미를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오락거리가 아니다,
쉼을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휴식이 아니다.
그럼에도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철학은 깨달음(앎)을 주는 어떤 것이라고.
그러면 나는 망설임 없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삶을 주지 못하는 앎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앎이 이로운 실천(삶)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앎이 아니다.
그러므로 삶의 용기를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철학이 아니다.
우리가 철학을 하는 목적은
단지 공허한 심연 속에 남아 있기 위함이 아니다,
철학은 삶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철학을 하는 이유는 삶이라는 목적을 바라보며
그 빛을 향해 일어나서 도약하고 전진하며
또한 우리 모두가 그 과정과 그 종점에서
함께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세계를 사유한다,
철학이라는 공론의 장에서 모두가 다 함께.
그러면 물리학은 물질의 증진을 위한 학문이요?
다만, 이것만은 확실히 대답할 수 있다: 철학은 곧 삶이다, 곧 삶은 철학의 조건(목적)이며 철학은 인간(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이다.
왜 철학이 삶인가?
철학은 세계 곧 인간 우리 자신에 대해 묻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철학은 삶이 동의어니까 철학이 삶의 목적이라는 말은 말이 아니다. 목적이라는 명사의 정의가 뭐임?
목적은 곧 조건이다. 때문에 목적이 있어야 삶이 성립할 수 있다.
삶의 목적이 있다면 우리는 목적을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뜻임?
목적은 곧 조건이다. 또한 삶은 그 자체로 목적이다.
그러므로 삶은 정언적이다. 삶은 다른 목적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목적에 대한 정의를 먼저 내리셈
그것은 조건이며 가능성이다.
용기의 대한 정의가 무엇임? 내가 생각하는 용기란 불편한 진실에 대해 외면하지 않는 것임 말은 누구 듣기 좋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삶에 대한 용기? 이것이 무엇인데? 정의내려보셈
그것은 곧 자유이다.
아니 왜 삶 그 자체가 목적성을 가지는지 말해보시라고 삶이란 목적성을 가진다며? 그 목적이 무엇을 위한 목적으로 우리가 태어난거냐고?
삶은 목적 자체이다. 그것은 곧 인간성이다.
인간성이 무엇임?
목적 자체이다.
그러면 당신은 어떤 목적성으로 존재하는데?
인간은 목적 자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