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마약을 하지 말아야 할까? 단순히 불법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마약은 인간의 도파민 시스템을 비정상적으로 자극하여 수용체를 손상시키고, 그 결과 평범한 자극으로는 더 이상 만족을 느낄 수 없게 만든다. 결국 평생을 ‘더 센 자극’을 갈망하며 살아가게 된다.
즉, 지나친 쾌락은 오히려 고통으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인간은 ‘항상성(Homeostasis)’이라는 생리적 균형을 유지하려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가 책에서 소개했듯이, 로또 1등에 당첨된 사람도 일시적으로는 행복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다. 반대로 사고로 팔다리를 잃은 사람도 초기에 불행을 겪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이전의 행복 수준을 회복한다. 인간의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익숙해진 상태로 되돌아간다.
쾌락도 마찬가지다. 언제 물이 가장 시원한가? 언제 음식이 가장 맛있는가? 답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땡볕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한 뒤 마시는 물은, 평소엔 아무 느낌 없이 마시던 그 물조차 놀라울 정도로 시원하다. 하루를 굶은 뒤 먹는 마트 초밥은, 배부른 상태에서 먹는 스시 장인의 작품보다도 훨씬 더 맛있게 느껴진다.
결국 고통을 인내한다는 것은 쾌락을 위한 준비이며, 반대로 쾌락만을 추구하는 삶은 끊임없는 결핍과 무감각 속에서 고통을 자초하는 길이다.
나는 중학생 시절, 성적이 낮아 늘 꾸지람을 들었다. 그래서 ‘공부를 잘하게 되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고등학교 때 나는 결국 전교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고, 수능에서도 상위 1%에 들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잠깐의 성취감은 있었지만, 그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언제든 밀려날 수 있다는 불안감과 스트레스였다.
군 시절에는 더욱 극단적인 환경에 놓였다. 2010년대였지만, 낡은 나무 관물대와 난방조차 잘 되지 않는 컨테이너에서 13명이 함께 생활했다. 내가 간절히 원했던 것은 단지 ‘나만의 공간’, ‘따뜻한 물’, 그리고 ‘자유’였다. 전역 직후 그것들을 당연히 얻었지만,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자 그 모든 것들은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대부분의 사람도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늘 ‘이번엔 다르겠지’라며, 자신에게 필요한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어떤 것을 갈망한다. 그리고 그것이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 착각한다.
나는 이제, 행복을 경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행복의 기준, 즉 역치(threshold)를 낮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군대처럼 극한의 고통을 경험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의도적으로 적당한 결핍을 만들어내는 건 가능하다. 하루쯤 스마트폰 없이 지내기, 간헐적 단식, 에어컨 없이 생활하기 같은 작은 실천들이 그 예다. 그렇게 일상의 감각을 되살리고, 작은 것에 감사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보다 자주, 보다 깊은 행복을 경험할 수 있다.
진정한 행복은 새로운 자극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일상을 다시 느낄 수 있는 감각에서 비롯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