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다른 사람들 소득에 대해서 그리고 소비에 대해서 '부러워해라'라고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다만 개개인이 원래 그런 성향이라기보다는, 한국 사회의 구조와 문화가 그렇게 반응하도록 강하게 유도한다는 쪽에 더 가깝다.
더 문제인 점은 무엇을 부러워해야 하는지도 거의 표준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고연봉 → 부러워해야 정상
서울 아파트 → 부러워해야 정상
명문대/대기업 → 부러워해야 정상
반면 그런 물질적 표준에서 벗어난 것들의 개인적 성취는 거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한국 사회가 진정으로 불편해하는 사람이란 남의 소득·소비에 진심으로 아무 감정이 없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한국 사회에서 절대 법칙과 같은 비교 구조를 흔들고 부러움 → 동기부여 → 경쟁이라는 서사를 깨뜨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러워해라”는 말은 사실 “이 게임에 계속 참여해라” 라는 의미에 가깝다.
따라서 '부러워하지 않는 것'은 초연함이 아니라 '현실 감각이 없는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는 거의 자동화된 해석 공식이 있다.
부러워한다 → 현실을 직시한다→ 욕망이 있다→ 발전 가능성이 있다
부러워하지 않는다 → 상황 인식이 부족하다→ 패배를 합리화한다→ 자기 위로 중이다
그래서 “난 별로 안 부러운데?”라는 말은 성숙한 거리두기가 아니라 현실 도피 또는 자기기만으로 번역된다.
누군가 부러워하지 않으면 비교 사다리가 흔들리고 자신이 왜 그렇게 달리고 있는지 설명이 필요해지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생긴다.
그래서 가장 쉬운 대응은 “쟤는 현실 감각이 없어” 라고 규정해버리는 것이다.
이는 집단 합리성을 지키기 위한 방어 기제에 가깝다.
결론적으로 한국에서는 부러워해야 하는 대상이 정해져 있고 “나는 이걸 굳이 욕망하지 않는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조용히 성찰적인 사람이 아니라 게임 규칙을 어기는 건방진 놈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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