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오락실에서 메탈슬러그3를 자주 했다. 사실 메탈슬러그를 클리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컴퓨터로 플레이하면 동전 없이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오락실에서도 동전 서너 개면 어렵지 않게 끝까지 간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클리어하는 것으로 부족해서 원코인에 도전한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스피드런까지 도전한다. 스피드런을 직접 해본 적은 없지만, 실제로 하려면 어마어마한 연습량이 필요해 보인다.
왜 사람들은 이런 일에 그렇게 매달릴까?
사실 스피드런이나 원코인 도전을 넘어서, 게임이라는 것 자체가 본질적으로 쓸데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고대 원시인들이 했던 수많은 행위도 마찬가지다. 동굴에 남긴 벽화가 생존에 무슨 도움이 되었을까. 열심히 조각 작품을 만든 것이 배고픔을 해결해 주었을 리 없다. 이렇게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무언가 쓸데없어 보이는 일에 열중하는 존재다.
그런데 이 '쓸데없어 보이는 일'이 문명을 만들었다는 사실도 틀림없다.
오늘날 매우 유용한 지식으로 여겨지는 것들 가운데, 처음 발견되었을 때는 쓸데없는 지식 놀음에 불과했던 경우가 많다. 16세기에 카르다노가 음수의 제곱근을 다루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있을 수 없는 수'라고 불렀다. 오일러가 18세기에 허수 i를 체계화했을 때도 그것은 순수한 수학적 유희에 가까웠다. 그런데 수백 년이 지나자 허수는 교류 전기회로의 설계에 필수적인 도구가 되었고, 양자역학의 근간이 되었고, 오늘날 스마트폰의 신호 처리에까지 쓰이고 있다. 발견한 사람들조차 그것이 무엇에 쓸모 있을지 몰랐다.
이런 사례는 허수만이 아니다. 패러데이가 전자기 유도를 발견했을 때, 당시 재무장관 글래드스턴이 "그래서 그게 무슨 쓸모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패러데이의 대답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당신이 그것에 세금을 매기게 될 것입니다"였다고 한다. 실제로 전자기 유도는 발전기와 모터의 원리가 되어 오늘날 전기 문명 전체를 떠받치고 있다. 플레밍이 배양접시에 핀 곰팡이를 그냥 버리지 않고 들여다본 것도 마찬가지다. 실험 실패의 부산물에 불과해 보였던 그 곰팡이가 페니실린이 되었고, 항생제의 시대를 열었다.
위대한 발견 중에는 간절한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 것도 있지만, '쓸데없는 짓'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뒤 한참 후에야 그 의미를 갖게 된 것들도 많다. 여기에 '쓸데없는 짓'의 가치가 있다. 비록 메탈슬러그를 원코인으로 클리어하는 것 자체가 세상을 바꾸지는 않지만, 무언가에 그렇게 열중하는 성향이 중요하다. 한 가지 혁신적인 것이 나오려면, 백 가지의 '쓸데없는 짓'이 용인되는 토양이 필요하다. 천재 한 명이 나오려면 백 명의 괴짜가 괴짜로 살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한국에서는 인생에 시간표가 존재한다. 몇 살에 무엇을 해야 하고, 몇 살에 어떤 관심사를 가져야 하는지가 정해져 있다. 나이별로 가져야 하는 취미의 카테고리가 있고, 그 카테고리에서 벗어난 취미를 가진 사람은 압박을 받는다. 나이 마흔에 메탈슬러그 원코인에 도전한다고 하면 유치하다는 비웃음을 사기 십상이다. 사회적 인식에서 벗어나는 무언가에 몰두하려면 핍박과 따돌림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용인되는 취미는 거의 무조건 몇 가지로 수렴한다. 이성관계, 술자리, 사람들과의 친교. 한국 교수들이 일본 교수들과 달리 양주 브랜드에 빠삭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자리에 올라가면 '가져야만 하는' 취미가 한정되어 있고, 그 밖의 것에 대해서는 관대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쓸데없는 짓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에서, 다음 허수는 어디에서 발견될 수 있을까.
굿굿
우연적 발견, 창의력의 원천
우연적 발견이라...
잘 봤어요.
방구석에 앉아서 주위에 어떤 사람도 없음에도, 인터넷 보고 혼자 사회적 압력이랍시고 받고 있는 거지. 이런 게 무쓸모인 비판이란 것
뭔 개짖는소리냐. 말의 요지가 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