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예시를 들어보자.


500년 전 아즈텍에서는 식인을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고, 그것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했다. 따라서 내가 500년 전의 아즈텍 사람이 식인을 했다는 사실만 가지고 그 사람이 범죄자 기질을 가진 사람인지, 평범한 사람인지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만약 현대 한국에서 어떤 사람이 식인을 했다면 나는 그 사람이 범죄자 기질을 가진 사람이라고 거의 단정할 수 있다.


현대 튀르키예에서는 인구의 90%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긴 하지만 돼지고기를 사고파는 것과 먹는 것 자체는 합법이다. 그런데 사회적으로는 그것을 꽤 꺼리는 편이다. 따라서 만약 어떤 튀르키예인이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다고 하면 나는 그 사람이 다수의 의견에 쉽게 따르지 않는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한국에서 어떤 사람이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다고 하면 나는 그 사람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같은 원리는 일상적인 곳에서도 작동한다. 한국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반말을 하면 무례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영어에는 "you"밖에 없으므로 같은 상황이 성립하지 않는다. 만약 어떤 한국인이 "영어처럼 반말을 쓸 자유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반말을 쓴다면, 그 사람은 무례한 사람이라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 영어권이었다면 그 해석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행위가 같아도 맥락이 다르면 해석이 달라진다.


요점은 이것이다. 같은 행위라도 그것이 놓인 사회의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밖에 없다. 행위 자체에 절대적인 의미가 내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가 속한 사회의 규범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남녀관계를 보자. 서구 문화, 이슬람 문화, 동아시아 문화로 크게 범주를 나누어서 다음 상황을 상정해 보겠다.


어떤 여자가 약혼을 했는데, 약혼남이 아닌 다른 남자와 둘이서 식사를 했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다른 방을 사용하지만 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


서구권에서는 이 정보만으로 그 여자가 문란한 사람인지 아닌지 전혀 판별할 수 없다. 나도 저 두 상황을 모두 체험했기 때문이다. 독일의 WG(Wohngemeinschaft, 공동 임대 주거)에서는 남녀가 다른 방을 쓰기만 하면 같은 집에서 사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 나도 WG에서 살 때, 같은 집에 남자가 반, 여자가 반이었다. 당연히 같이 살던 여자와 술을 마시거나 식사를 한 적도 있었다. 서양에서 이것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 일상이다.

반면 이슬람 문화권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해석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약혼한 여자가 다른 남자와 둘이 식사하거나, 남녀가 같은 집에서 사는 것은 사회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 사회의 맥락에서 그런 행위는 사회적 규범을 크게 벗어난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동아시아, 특히 한국은 어떤가? 한국의 남녀관계는 이슬람만큼 엄격하지는 않지만, 서양보다는 훨씬 벽을 치는 문화다. 한국에서 남녀가 그냥 친구나 룸메이트 사이로 지내는 것이 서양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가? 그렇지 않다. 같은 행위라도 한국이라는 맥락에서는 서양과 다르게 해석되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까지는 사실 관계의 확인에 불과하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 다음이다.


어떤 사회의 규범에는 혜택과 결과가 함께 온다. 한국의 남녀관계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일정한 벽을 치는 문화는 그 자체로 여성에게 일종의 보호막이 된다.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관계의 진입 장벽이 높은 것, 이런 것들은 원치 않는 접근을 차단하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그 규범의 혜택을 누리면서 그 규범이 만들어내는 해석의 결과만 거부할 수는 없다. 한국식 남녀관계의 벽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사회적 해석은 서양 여자와 같게 해달라는 것은 성립하지 않는 요구다.


이것은 남녀관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서 서울대 졸업장은 단순한 학력 증명이 아니라 강력한 사회적 신호다. 미국에서는 주립대를 나온 사람이 아이비리그 출신과 큰 차이 없이 일하는 것이 비교적 가능하지만, 한국에서 지방대 출신이 서울대 출신과 동등하게 대우받기는 훨씬 어렵다. 그런데 만약 어떤 사람이 서울대라는 간판의 사회적 프리미엄은 전부 누리면서 "학벌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말한다면, 이것도 같은 구조다. 규범의 혜택은 취하면서 규범의 결과는 거부하는 것이다.


한국의 술자리 문화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술자리에서 상사의 술을 거절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고, 그것을 비판하는 사람이 많다. 비판 자체는 타당하다. 하지만 같은 사람이 술자리에서 형성된 끈끈한 인맥과 유대감의 혜택은 그대로 누리고 싶어한다면, 이것도 규범의 한쪽 면만 취하려는 것이다.


맥락은 해석을 결정한다. 그리고 맥락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은 맥락의 결과도 함께 짊어져야 한다. 케이크를 가지면서 동시에 먹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