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나' 라는 개념에 대해서 생각하기 전에 '경계' 개념에 대해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봄.

왜냐면 여기에 진정한 '나' 란 무엇인가에 대한 실마리가 있다고 보기 때문임.


경계는 무엇인가? 서로 다른 존재자를 구분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을

다 경계라고 할 수 있음. 울타리 안과 밖을 구분짓는 울타리도 경계고

남과 북을 가르는 철조망도 다 경계임. 세포 수준까지 들어가서는 세포막 이런게 경계고.


우리들의 의식사이에도 분명히 어떤 경계가 있음.


왜냐면 내 팔을 때린다고 니가 고통을 느끼지 않고,

니 팔을 때린다고 내가 고통을 느끼지는 않기 때문임.

이건 당연한 사실같아 보이지만 이것이 함축하는 바는 무시할만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함.


왜냐면 내가 앞서 언급한 울타리, 철조망, 세포막의 사례는 진정한 경계가 아니기 때문임.

진짜 경계는 의식에 달려있음.


하나의 구름을 떠올려보셈. 그 구름을 구성하는 입자를 C1, C2, C3... Cn 이라고 해보자는 거임.

그 Cn을 빼서 Cn-1 까지를 취하면? 여전히 구름이지 않을까?

C1을 빼면? 그래도 여전히 구름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이렇듯 물리적 개체들의 경계는 사실상 무의미함. 그러니 앞서 언급한 울타리, 철조망, 세포막 이런 것들은

진짜 경계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임. 물리적 개체들에 한해서는,

어디까지가 하나의 사물이고 하나의 사물이 아닌지 정하는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임.


그러니 확실히 존재한다고 여길 수 있는 경계는 1) 의식간의 경계.

그리고 2) 하나의 의식안에서의 심리적 경계임.


1)에 대해 말하자면, 내가 느끼는 심리 상태, 네가 느끼는 심리상태 이렇게 구분 가능하기에

너의 의식, 나의 의식.

이렇게 여러 의식들 사이에는 분명히 경계가 존재함.


2)에 대해 말하자면,

이 경계 내부에도 다시 어떤 경계가 있는듯 보임.

왜냐면 감정, 기분, 고통, 쾌락, 불쾌감. 이런 여러 심리적 과정들은 서로 구분되기 때문임.

그러나 나의 기분, 나의 고통, 나의 쾌락, 나의 불쾌감.

이런 식으로 주관적으로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모든 심리 현상들이 나라는 주체에 귀속되어있다는

공통점을 우리는 분명히 느낄 수 있음. 그러니까 나의 고통과 나의 불쾌감, 나의 감정과 나의 기분. 이런 것들을

구분짓는 경계와 의식과 의식을 구분짓는 경계는 분명히 뭔가 다를 것임.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함.


진정한 의미에서의 '나'는 심리 현상들을 담아내는 다른 그릇들과 구분되는, '경계가 확실한 그릇'이다라는 것.


즉 진짜 나의 본질은 기억에도, 생각에도, 경험에도, 판단에도, 추리에도 있지 않음.

그것들을 담아내는 하나의 심리적인 그릇. 인식론적인 점.

이것이 진짜 나임. 이게 없으면 아무것도 성립하지를 않아.


여기서 일상적 의미에서의 '나' 와, 

진정한 의미에서의 '나' 를 구분지어야 할 것임.


일상적 의미에서의 '나'는

그릇에 무엇을 담아내느냐에 따라서 개성이라는게 생기는데, 이 개성을 두고 나라고 부르는 방식임. 


내가 어떤 기분 상태이고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고, 어떤 감각을 느끼고 있고 어떤 사고를 하고 있는지.

이런 모든 개별적 상태값들이 모여서 하나의 식별 가능한 개체를 이뤄내는 순간

그걸 나라고 부르는 것이 일상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나' 에 대한 개념임.


그니까 기억을 완전히 복제한 내가 있으면 똑같이 나인가? 누가 진짜 나냐

이런 질문에 빠지게 만드는 것도 이런 '일상적 의미' 에서의 '나' 라는 개념임.


참 모호하고, 복합적인 개념이지.

개별적 상태값들의 조합이니까 당연히 기억도 중요하고 생각도 중요하고 경험도 중요하고

물리적 구성도 중요하겠지. 어느 것 하나 일상적 의미에서의 '나'에 기여하지 않는 것이 없는데


나의 본질은 기억이냐 아니냐

나의 본질은 물리적 구성에 있냐 아니냐


이딴 무의미한 질문을 쏟아내게 만드는 것이 일상적 의미에서의 나 개념임.


철학에 조예가 없는 일반인들은 그래서 안되는 것임.


이렇듯


왜 사람들이 진격거 같은거 보고 기억 지우고 추가하고 이 ㅈㄹ 하는거 보면서

진짜 '나'는 뭘까? 이런 철학적 질문을 던지면서 이 질문이 왜 어렵다고 생각하냐면

일상적 의미에서의 나와 진정한 의미에서의 나를

구분하지 못하는


일종의 언어적 혼란에 빠졌기 때문임.


이 언어적 혼란을 경계 개념부터 차근차근 되짚어가며 정리하고,

생각을 명료하게 가다듬다보면 이건 딱히 어려운 문제도 아님을 알게됨.


이런 개념 정립을 몇 가지 질문들에 응용해볼까?


질문 몇 개가 있겠음


1) 복제 인간은 진정한 나인가?

-> 아님. 물리적 구성과 심리적 구성을 동일하게 만든다고 한들, 의식이라는 그릇들 사이에

경계가 실재하므로 그릇들을 서로 구분할 수 있고, 심지어는 시간적으로 앞서 존재하던 그릇을

지시까지 할 수 있으므로 복제인간은 당연히 내가 아니지


2) 기억을 컴퓨터에 업로드하면 나냐?

-> 이것도 마찬가지의 논리로 아님. 


3) 테세우스의 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1일차의 배와 100일차의 배는 동일한 배인가?

-> 앞서 제시한 물리적 사물에는 경계가 없다는 논증에 따라서, 1일차의 배부터 100일차의 배까지 모두 다른 배임.

의식을 지닌 무언가만 통시적 동일성을 지닐 수 있음.


4) 데이비드 흄에 따르면 그릇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순간마다 떠오르는 감각 인상 뿐이라던데?

-> 우리는 하나의 완결된 생각을 할 수 있음. 이건 팩트임.


하나의 생각이 완료되기 까지는 시간이 걸림. t1, t2, t3, t4, ... tn 에 걸쳐 생각이 완료된다고 해보자.

t1 일때의 그릇과 와 t2 일때의 그릇이 다른 그릇이라면 생각이 산산이 흩어져버림.

t1, t2, t3, t4 ... tn 일때 각각의 그릇은 동일한 그릇이어야함.


따라서 하나의 일관된 그릇이 통시적으로 유지됨. 이게 그릇이고 자아이고 진정한 의미의 나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