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미나이랑 선문답 하면서 뭔가 그럴싸한 얘기 처음 주워듣고
지적 허영 쌓으면서 지좆대로 의미부여하고 저울질하는거까진
좀 애새끼같긴 해도 걍 적당히 받아주려고 했는데
모든 대화마다 AI한테 생각을 의탁하는건지
아니면 그저 사유가 짧아서 대답마다 모순이 생기는건지
지새끼야말로 절대 철학하면 안되는 지능인걸
전혀 눈치를 못 채네
철학과 자유의지를 부르짖지만
결국 그 주체가 자기 자신이 아닌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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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까츄 얘를 지칭하는 구나. 일단 구체도 함께 있어야하는데 구체적인 건 없음. 추상화랑 구체랑 같이 가야하는 거임. 한쪽만 있어서는 안됨. 한편으로 나는 걔 말에 동의하는 부분이 있는데, 뒤의 댓글들을 보니까 그런 것마저 자기 스스로 생각한 점이 아닌 것 같다고 보았음.
제일 중요한, 과정이 오래 걸릴지라도 스스로 생각한다가 없는 것 같고. 나의 생각과 나는 분리된다는 점도 고려해야 무언가를 정체성으로 삼아서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들은 지극히 본능적인 차원에서 거부하는 그런 면모가 없을 것. 나는 어떤 답답함을 느낄 때는 약간 근본적으로 스스로 생각하는 바가 없는 사람을 보고 답답함을 느끼는데, 그런 점에서 답답했음.
@철갤러1(106.101) 처음엔 사용하는 단어에 있어 신중이 느껴지지 않길래 단지 사상이 아직 확고히 정립되지 않았구나 정도인 줄 알았는데.. AI가 말해준거 그래도 복붙하기전에 한번쯤은 읽어볼 줄 알았는데 대답마다 모순 있는거 보니 전혀 안읽어보는 것 같음 - dc App
@ㅇㅇ 온라인에서 여러가지 글 긁어다가 ai에다가 넣어주고, 그 글을 넣기만 한다면 ai는 호응을 해줘버림. 그래서 ai 사용자의 태도에 따라 ai 답변 방향과 내용이 달라지고, ai에게 ai의 답변을 포함하여 비판하라고 해도 재료의 한계가 발생함. 즉 인간들 중 모자란 인간들 같이 ai가 상황의존에서 못빠져나옴.
@철갤러1(106.101) 그런데 히까츄가 만약 위같이 ai에게 말한다면, ai글 또한 그 문자들이 그저 표상에만 머물거나 생각대상인 현상이 될지라도 히까츄는 여전히 생각은 안하고 있고 처음 자신이 이거다! 했던 느낌이나 자주봐서 낯익은 것들에 얽매여있는거.
@ㅇㅇ 라고 보고, 그런 히까츄가 네 글을 읽을 턱이 없지. 히까츄 대답 모아봤을 때 모순 생기고, 상대방이 모순이라고 히까츄에게 말했을 때 모순해명을 해서 자신의 입장에서 구분되는 바를 소명하고 범주를 달리잡으면 되는 건데 그런 게 없지.
@ㅇㅇ 이런 특징도 그냥 반대를 위한 반대거나, 스스로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지 않은 것이라면 계속 자신이 썼던 말로 회귀하고 있기만하는 거. 그러면 그 외 다른 사람이 재고 대상이나 모순 대상으로 잡은 지점은 생각조차 못하는 식으로 됨. 원래 히까츄가 생각을 안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약간 동물적 반응만 하는 이들이 저럼.
@철갤러1(106.101)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쟤의 허점을 꼬집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함 좆같은건 둘째치고 내 사상의 무모순성을 절대 증명할 수 없다면 그게 내가 혐오하는 쉽게 내뱉어지는 단편적인 생각들과 다를게 무엇인가 - dc App
@ㅇㅇ 음..난 일단 이런 생각이 떠오름. 기본적으로 모순을 참거짓을 가리는 것에 쓰는 것도 있지만 이건 너무 좁고, 모순을 범하지 않으려함은 그런 모순을 포함한 여러 논리를 통해 필연성의 길을 따라 기존의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필요함. 즉 무모순성은 위에 말했듯 상황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
@ㅇㅇ 중요함. 그래서 이런 사상적 측면에서는 모순을 사실인지 아닌지 여부, 즉 진위판단에 쓰는 것보단 사실확정이 됐음을 전제로 그 사상이 지칭하는 바...지칭하는 새로운 것. 나아가야할 길. 그런 방향설정하는 것에 주목하는 데 사상의 의의가 있다고 봄
@ㅇㅇ 그래서 사상의 무모순성을 증명한다는 말에서 이 증명은 자신이 자신에게 하면 되는 것이라고 보고, 무모순성 판별 과정은 논리 검토 과정이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함. 그리고 이건 무슨 상황의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무분별하게 무언가를 다 받아다가, 저 상ㅎ
@철갤러1(106.101) 저 상황에 가니까 전 상황이랑 다른 것이 있어서 그런 정보끼리 비교대조해서 무모순성을 만들고 이걸 계속 반복하는, 이러한 상황의존적인 수정작업이랑 차이점이 있음. 이건 저런 본능적으로 직접 파악하는 상황을 제외하고 하는 이성적 작업이거나 지성적 작업임. 근데 이게 더 나은 게, 다른 인간들이 추상화작업 해놓은 걸 바탕으로 검토하면 되니깐 더 시야가 넓음.
@철갤러1(106.101) 어차피 다른 사람이 구체에서 시작해서 만들어 놓은 추상적 작업의 결과물들도 여하튼 구체에서 시작했기에 현실기반이고 우리는 우리가 직접 마주하는 상황들을 얼마나 더 마주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서 제약이 있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 낫다고 여김. 그리고 변화하는 부분은 모양만 바뀌고, 우리가 모든 것을 다 학습하기엔 문자로만 해도 시간제약이 있기 때문에 100%
@철갤러1(106.101) 사상의 무모순성 증명은 못함. 그래서 예외가 있는 것. 그리고 이 예외 또한 어떤 사안은 특정 범주로 대부분이 포섭되는데, 범주 타고 들어갔을 때 포섭이 안되는 부분때문에 생기는 문제라서 그 사상이나 원리원칙으로 포섭이 안된다고(모순발생)하더라도 그냥 조리로 풀거나 공백부분으로 두거나 예외에 대한 다른 범주로의 대안설정을 하는 것을 권장함.
@철갤러1(106.101) 이런 생각들은 어떠니
@철갤러1(106.101) 결국 사상을 정립했다는 표현 자체는 오만인건가 - dc App
@철갤러1(106.101) 무언가를 정립하는데 있어 절대적으로 의심될 수 없는 전제적 요소가 필요하다면 그 자체로 삶의 기준으로 삼기엔 부적절할 수도 있지 않을까? 종교를 비판하다가 언젠가 보니 그들을 비판한 질문에 내 스스로가 잡아먹힌 것 같음 - dc App
@ㅇㅇ 나는 일단 그 "의심" 이라는 것에 대해서, 자기가 무언가를 의심할 경우, 또는 의심이 가능하다는 경우에서 의심이 어떻게 발동되는가를 좀 보면 좋겠는데. 만약 이 의심이 자신이 생전에 감각으로 마주하지 못한 것이거나 그와 비슷하지 않으면 가능한..혹은 단지 반동적인 습관으로 한다는 그런 상황의존적인 내용으로 인하여 발동한다면, 정말 모든 것이 의심가능함.
@ㅇㅇ 그래서 무언가를 정립할 때 한 치의 의심도 할 수가 없는 지짐을 사상의 토대로 삼는 것에 대해서 너처럼 부적절할 수도 있다고 여기고, 관심을 두지 않음. 극단적인 회의주의적 사고습관은 인생을 좀먹는데, 훗날 빠져 나와보면 시간 버렸다는 생각만 든다고 봄.
@철갤러1(106.101) 시간낭비인건 알고 있었지만 도무지 접근 방법이 생각이 나지 않으니 그 회의감에 대한 방어기제였던 것 같다. 물론 인생관 자체는 이미 나름 정립이 되어있으니 가치판단은 내 스스로 후회하지 않는데 - dc App
@철갤러1(106.101) 뭔가 그냥 괜히 주제 하나 던저놓고 불장난하는걸 즐기게 된 것 같음 그게 내 삶에 알빠인지 아닌지와 별개로 - dc App
@철갤러1(106.101) 그 일련의 사고 자체가 삶의 의지를 갉아먹는다는 점과 그마저도 삶의 의지의 연장선이라는 점의 모순인데 말하다보니 이 또한 순환이네 - dc App
@ㅇㅇ 범주를 나누면 모순이 아니게 됨.
아프다노 마이 아프다노.
제대로 짚었네...뭐냐면.... 바보가 남에게 바보라고 하지않는다고 해서 그게 바보가 아니란 보장은 없다... 대략 이런식으로 생각하고.. 철학함이란게 진정한 A는 B다의 변형이라 생각했었음...
다만.... 뭐랄까 이런식으로 짚어나가는건 니 말대로 자신은 저 사람과 다를게 뭔가... 이런식으로 연결되는 경향성이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잘 짚진 않음.. 과거의 나도 저랬을거니까
비단 저사람 뿐만 아니라 갤러리 글이 대략 그런패턴임... 진정한 스코틀랜드 오류에서 나오는 진정한 A는 B다의 형태로 그럴듯함을 쌓아서 경계를 본인이 자의적으로 옮길수있고 또 반증불가능한 형태의 연결을 만들며 그걸 확정함 그리고 깨달음 포즈를 짓는거지.. 철학하지 않음을 비판한다 해서 자신이 철학한다는 보장은 없는데 말야..
철학함이 뭐네 어쩌네..하지만 진정한 A는 B다의 변주곡 시리즈일뿐임...
직접비판이.... 좀 그래서 우회해서 메타비판을 하는편이였는데... 잘 못알아듣나 싶더라고...
223.39 너 계속 있었구나. 그래서 구체를 봐야하고, 연결로 확정된 것들은 수정되기도 하고 다만 스코틀랜드 오류에서 '진정한' 이거는 스코틀랜드인은 그런 경우가 많다라는 말로 수정되어야한다고 봄. 스코틀랜드인 다수가 하는 것과 다른 반증이 나왔어. 그렇다고 해서 다수의 행위가 깨지지 않음. 그래서 여기선 일상어와 엄밀성을 갖춘 언어 사이의 간극이 생김
@ㅇㅇ(223.39) 예컨대 일상어를 쓰는 사람이 엄밀한 언어를 쓰면서 무엇을 지칭해. 그럼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보면 됨. 근데 손가락인 그 엄밀한 언어의 정의를 보고 있으면, 일상어 쓰는 사람입장에선 위 스코틀랜드 다수가 그렇다는 것인데 왜 소수도 있다고 이걸 반증 삼아 다수가 그렇지 않다로 나아가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지. 확정은 항상 부분적임
@ㅇㅇ(223.39) 그래서 난 네 의견이나 본문 글에 대해서 기존에 있는 방법을 좀 쓰라고 권유하는 거. 분석이나 어떤 이성적 검토작업은 사실확정 후에 할 수록 더 현실성있고 분석이나 검토결과가 사리에 맞음. 사실확정의 부분과 다른 부분은 똑같은 검토나 분석작업이라할지라도 과정에서 구분되어야함.
@철갤러1(106.101) 으음.. 모르겠어 쉽지 않아 "엄밀할수록 설명비용이 올라가나?" "공론장이 원래 그런가?" "일상언어가 원래 그런가?" 하는 잡생각만 이리저리 스칠뿐임..
@ㅇㅇ(223.39) 그 잡생각 써놓고 기억에서 지운다음, 나중에 써놓았던 잡생각 전개했던 부분 보고 다시 이어서 생각 ㄱㄱ. 너는 생각이 많고 창의적으로도 보이는데 그런 버려지는 생각들이 뭔가 아깝다.
@철갤러1(106.101) 그치 으음..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뭐랄까 레고라고 생각하거든.. 그럴듯한 모양을 만들수는 있어 하지만 그걸 다시 부숴..그리고 다시 만들어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거야 그리고 어쩌면 반복하다보면 그럴듯한 뭔가를 만들어내는.. 그런게 생기는게 아니냔 막연한 기대가 있을뿐임.. 물론 다른 실용적인 이유들도 있겠지만.. 몰라?
히카츄 새벽에 활동하는거 같은데 개백수로 추정됨. 점심에 기상하면 전쟁터 될 예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지능자니까 걍 먹이 주지 말고 무시하는게 답일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