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운명"이 과연 뭘까? 사람들은 그걸 궁금해 하지. 



왜냐하면 우린 필연적으로 '죽음'으로 향하기 때문이야. 



철학은 '세상을 알아가는 법칙'을 알아가는 과정이고, 그 확장의 끝은 결국 '죽음'으로 연결돼. 


그래서 '철학과 종교'는 끝에서 만나는 구조야.



"자유의지"라는게 뭘까? 에 대한 궁금증이 있는 사람들 잘 들어. 너네들이 힘들어 하는 이유



"자유의지 자체를 완벽히 통제하고 싶은 마음"



그러니까 우리가 '내 생각은 어디서 나오지?", "내 생각은 내 생각이 맞나?" , "자유의지... 즉, 내가 이렇게 글을 적는게 맞나" 라고 의심하고 고찰하는 것 자체가


"인간이 모든것을 판단하고 평가하려는 심리" 라는거야. 참 오만한 생각이지. 



 " 세상은 정해져 있나? 아님 내 '의지'대로 흘러가나? 아님 그 아닌 그 무언가? "   


그런 고민은 '철학적 몽상'에 가까워. 그러니까 너무 두리뭉실한 감상에세이 같은거야. 그건 '철학'이 아니라고 





2. 인간은 크게 '두 부류'가 있어.  → . "안정과 평화를 원하는 자" / "불확실성에서 '진실'을 향해 도전하는 자"


우선 내 성향이 뭔질 정확히 파악해. 그러고 '운명'이란 관점을 대하는거야.



1) 내가 "안정과 평화를 원하는 자의 유형" → "종교"를 찾어.






"박진영"은 심장이 왜 뛸까? 나는 과연 "내 자유의지"대로 흘러갈까? 


결국 모든것은 "누군가의 뜻"이 아닐까? 에 대한 궁금증으로 



2010년 ~2013년 까지, 모든 과학(물리/자연/뇌) + 모든 종교를 시간나는대로 '공부'했어.


결국 박진영의 귀결은 '하나님'이야.



왜냐하면, 다른 모든책에선 '정답'을 알려주진 않았는데, 


"성전"만이 정답을 알려줬기 때문이야. 



즉, 박진영은 '종교'로 귀결했어. 








내가 '마음의 안정'을 원하는 성향은 '철학'과는 거리가 멀어. 


"안정과 평온 확신"을 원하는 성향은 '종교'에 귀의하는게 답이야. 



왜냐하면, 그건 '철학'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야. 


그 말은, 저 똑똑한 '박진영'조차도 진심으로 3년간 모든 학문을 공부했는데



"답이 없어" 이게 정답이야. 인간은 '우리'가 정확히 돌아가는 원리를 알수 없어. 


그건 '신'의 영역이야. 



그렇기에, 박진영은 '확실히 말해주는' 종교에 간거야. 




2) '종교'도 결국은 철학의 연장선이다. 



형이상학의 '본질'에 뚫고 들어가면 결국은 '종교'와 만나게 돼. 


왜냐하면 '형이상학'은 세상의 '본질'을 끝까지 파악하는 학문이고 



그러면, 결국 인간이 볼수 없는 영역인 '자연' '우주' '창조주' '절대법칙' 같은 개념까지 건드려.



'과학'도 마찬가지야. 과학과 철학과 종교는 끝으로 가면 "결국은 만나게 되는 구조"야. 



단지, 어떤 관점으로 '해석'을 하는가에 따라 다른거지. 



"종교" =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신'을 설정하여 파악하는 원리. "신" 자체가 "확실성"을 보장할수 있는 매체야.


"과학" = 물리적 데이터의 실험과, '통찰'에 이른 '가설'검증으로 세상의 끝을 알아보고 싶은 원리


"철학" = 과학을 포함한 '인문학적' 통찰 개념으로, '세상'의 본질을 파악하고 싶은 원리 




각자는 모두 자기만의 '무기'들로 '세상의 끝'을 향해 가. 


그런데 "답"은 다 달라. 왜냐하면 애초애 '답'을 인간이 알수 없기 때문이야.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 귀의한 후, 거기서 시키는대로 해



"인간은 열심히 살아야 한다. 우리는 사랑해야한다. 결국은 '현재'가 중요하다"


같은 본질적 메세지를, 각자가 다른 언어로 설명할테니까.



단 "종교 = 특히 기독교"는 "절대자"가 형성이 이미 되버린 구조기 때문에


그냥 시키는거 그대로 지키면 살면 되는거야.  



어차피 '보편원리'는 거의 다 비슷해. 죄짓지 마라, 남을 헤치지 마라, 같은것은 '각자의 언어'로 사례를 들어 설명할거야.


그거 그대로 받아들이면 돼.




2."불확실성에서 '진실'을 향해 도전하는 자" = 철학 + 과학



자! 이 사람들은 이 개념을 외워. 


" 나는 세상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안다고 해도 "틀릴수 있다" 



즉, 철학은 "세상 =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인간'에 가까운거야. 



ㄱ. 애초에 "세상을 제대로 알수 없다"를 명확히 인지


ㄴ. 그럼에도 "세상을 알아보고 싶은 마음"으로 끊임없이 '도전' 



즉, "불확실성"이 있음에도, 하나하나 알아가는데 "희열"을 느끼는 것 = 철학 +과학 이야.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라고 말한거라고.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나의 관념" 이다 = "관념론: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실재"와 똑같을수 없을지, 단언할수 없다. 왜냐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건 나의 '관념'일뿐이니까'



이게 "관념론"




그럼에도 세상은 '실재한다'고 파악할수 있다.



1. 수박은 나만의 느낌일수 있으나, "보편적인 성향의 특징들이 모두 일치한다" 즉, 내 '관념'이 틀리더라도, 수박이 달고 초록색이고 빨간줄이 그어졌다라는 사람들의 평가는 동일하다.


2. 내가 '덥다, 춥다'가 실재하는지 확언할수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모두 나와 같은 상황으로 덥다/춥다를 공통적으로 말한다 = "보편근거"



즉 "관념론" 자체도 음모론이 아니야. 인간은 "내가 보는것"과 실재 존재하는 것을 "분리"하는 능력을 가졌으니까




암튼 "철학"은 그런관점을 가진자만이 하면 돼. 



첫째. 인간이 세상을 파악하는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둘째. 인간은 그저 세상의 '보편원리'나 특징만을 설명할수 있다.


셋째. 인간은 심박수를 왜 일정하게 뛰나는 '과학'의 영역이다. '철학'의 영역이 아니다. 


넷째. 모든것을 파악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 오만'이다. 인간이 "불확실성을 실어하고 + 확정짓고 싶은 마음" 이다. 






3. 운명



내가 생각하는 운명은 이렇다 



"나를 가두는 모든 한계" + "자유의지"




첫째. 나의 성향, 키, 인종, 부모, 시대, 지역은 내가 '통제'할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 나의 한계


둘째. 나의 성격, 나의 재능, 나의 기질 모두 "내가 선택한 부분"이 아니다 = 나의 한계


셋째. 인간은 자고자란 '시대' '지역' '사람'의 영향을 받는다 = 나의 한계


넷째. 나는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내 "자유의지"로 확장한다. 





그러니까, 운명이란 건 결국


나를 가두는 모든 한계속에서, 내가 할수 있는 '기질'을 가지고 , 내가 하고 싶은 '자유의지'의 발현을 통하여...



"한계"를 끊임없이 확장하는 과정이다.





즉, 운명은 "나를 가두는 한계속에 "내"가 있기에, 나의 자유의지야 말로 매우 중요하다"



"운명"은 자유의지도 아니고, 한계도 아닌 그 둘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ㅇ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