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이다.’

이 명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세상을 말 할 필요가 있다.

세상은 초월적이다.

이는 즉,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시공간에 ‘나’라는 존재가 태어난 것이다.

내가 말 하고자 하는 것은, 세상을 초월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세상이 선험적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상이하다는 것이다.

물건이 없는 공간은 설명 가능하지만, 공간이 없는 것은 상상할 수 있는가?

이는 초월적 존재의 불가피한 ‘존재‘에 대한 요청을 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신’은 초월적인지에 대한 얘기를 할 수 밖에 없는게, 이는 다음기회에 설명하도록 하겠다.

세상이 없으면 그 무엇도 존재할 수가 없다.

여기서 세상은 존재가 존재할 수 있는 장이자 시간의 선험성을 증명할 수 있는 초월적 공간을 뜻한다.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는 것 같지만, 지금 얘기하고 있는 것은 공간과 시간에 대한 1차원적인 인식론적 설명이다.

여기서 시간과 공간은 선험성과 초월적인 것을 알 수 있으나, 시간적으로 보았을 때 초월적 세상 안에서 태어난 나는 역으로 초월적으로 후험적이다.

초월적인 후험적은, 후험적 존재의 끝을 얘기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즉 세상보다 초월적인 존재는 있을 수 없으며 -시간이란 공간(세상) 안에서 태어난- 즉, 시간이란 세상에게 있어서 후험적인 존재인 것이다.

내가 여태것 말하고 있던 세상의 4분면에 대한 사실(논고)은 3차원적인 세상에 대한 해석인 것이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세상의 존재를 깨닫는 것이 일차원적 인식론이라면, 이 세계의 무언가 존재한가는 사실(시간 및 존재)를 깨닫는 것이 2차원적인 인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상의 변동성과 사회적인 거시적 시점의 도약 및 개인의 삶에 대한 고찰과 같은 시선의 비틀림은 세상의 3차원적 해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즉, 세상은 ‘나‘다 라는 근거를 더욱이 굳건히 한다.

그 이유로는 초월적 존재인 세상과 ‘나’의 후험성은 서로 반대로 밀어내듯이 상반되어있지만, 두 것이 다 한 쪽의 끝을 의미한다. 즉 앞서 말했던 ’순수’한 초월적 세상과 ‘후험’적 초월의 곱은 같은 초월성을 자아낸다.

이는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나의 ’존재‘가 이를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서 간주하게 만든다.

이는 세상의 간섭은 초월적 존재의 순수한 간섭을 뜻하며, ‘나’는 초월적 존재임을 뜻한다.

이 둘의 공통점이 하나의 축과 축으로 엮인 음과 양의 형태로 나아가는, 즉 기학적으로 나선형태로 상승하는 구조를 지닌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차원의 나눔의 이유이자 세상이 ‘나’라는 것을 증명하는 토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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