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해하기론 이런 이유가 대표적입니다
그 유명한 예시중에, 밤하늘에 때가되면 뜨는 달을보고
사람들은 제각각 희노애락같은 감정 느끼는데
이 희노애락과 같은 갖가지 감정들/마음들 모두가
생각으로 이어지고, 이런 것들이 번뇌의 시작/근원이라 보는 시각입니다
그래서, 이런 감정과 생각을 벗어버리면
번뇌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상이 발전하면, 느끼고 생각하는 주체 즉 '나'를
버려야한다 까지 오게 됩니다
과격하게는 조사/부처/나.. 까지 만나는 족족 죽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말들의 의미는 결국 사물/관계에서 오는 모든것을
감정이나 생각에 몰입해서 치우치지말고
있는 그대로를 봐야 한다는것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해석 합니다
감정이나 생각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오류인지 아닌지
정신을 차려서 생각해보라는 의미라고도 해석 합니다
그래서, 무언가를[나, 세상, 생각, 깨달음 등등..]을
아니다,없다,벗어라,버려라,죽여라,무아,허위,허망,허무하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 모든게 마음작용으로 비롯되는 것으로,
마음/생각을 올바르게 통제해야한다는 말이라고 봅니다
항상 궁금한게 결국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 이후의 삶은 그냥 죽지못해 사는 삶 아님? 내가 없음을 깨달았는데 의지 자체가 집착 아님?
논리구조를 따라가면 그냥 사는것이 됩니다. 죽지못해서 산다고 하는게 오류가 되는것이죠. 그리고, 깨달음 자체도 집착의 대상으로 봅니다. 깨닿고 난후에 가지는 의지자체를 집착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런우려가 제기 될 수는 있고 집착이 될수도 있습니다. 어떤 의지를 가지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그 깨달음이 허무에 빠져서 무한루프를 하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이 다음 부터는 제 주장인데, 아마도 유가[유학]에서 주장하는 도덕적 삶이 합리적이고 효율적 이라고 봅니다. 제 주장에서 유교는 제외됩니다. 이런 학문이 종교가 되면서, 합리성이 사라지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극복하는 재료로 이용되어 간다고 생각 해서 그렇습니다.
@smV2.28 그니까 죽지 못해 사는 삶이라는게.. 깨달음 이후엔 먹더라도 집착하지 말고,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만남에 집착하지 말라는데, 인간의 모든 행위는 ‘자극에 의한 반응’이라는 점에서 결국 반응한다는거 자체가 무언가를 행하겠다는데 의지를 갖는다는거 아니냐는거임.. 깨달음을 얻은 뒤 그 의지를 모두 거부하면 굶어죽건 탈수로 죽건 할텐데, 그런 결말은 뭔가 이상하니까 대충 얼버무린다는 느낌밖에 안들음..
@ㅇㅇ [그 의지를 모두 거부하면 굶어죽건 탈수로 죽건 할텐데, 그런 결말은 뭔가 이상하니까..] 그런경우 '집착하지 말라'는 말에 또다시 집착하는 경우입니다. 이미 제가 말한 무한루프[논리순환고리]에 빠지는 겁니다. 그런 깨달음에 집착하는 경우도 오류가 됩니다. 한마디로 쉽게 예시를 하면 '다람쥐 쳇바퀴도는' 질문입니다. 저는 이미 그기에 대해 말 했고, 유학을 대안으로 제시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말을 반복하는 이유 하나가 있습니다. 유학은 도덕을, 불교[정확히는 싯달타]는 '수행'을 통해 본질을 보는것을 대안으로 봅니다.
@smV2.28 그니까 그걸 대안으로 삼는건 형이하에 있어서 님 사상이고 존중하겠는데, 내 질문은 그럼에도 불교의 입장만 놓고 보면 정도를 유지하며 삶을 계속 살아가야한다고 주장하는거 자체가 집착 아니냐고 묻는거임
@ㅇㅇ [불교의 입장만 놓고 보면 정도를 유지하며 삶을 계속 살아가야한다고 주장하는..] 이런식으로 불교를 완전 오해하고 있기에 이상한 결말이 나고 계속 같은 질문을 하는 겁니다. 싯달타는 [정도,살아가야한다]와 같은 '삶의 의미'를 말하지 않았고, 삶 자체를 관조한다고 볼수 있습니다. 삶에 본질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겁니다.
@smV2.28 삶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보는 행위 자체가 이미 생존을 전제로 하는건데요..? 아니면 혹시 별도의 육신에 의존하지 않는 영혼 개념을 말씀하시고 싶으신건가요..?
@smV2.28 그니까 쉽게 설명하자면.. 님 말대로 있는 그대로 본다 라는 행위를 지속하기 위해 육체를 유지하고 음식을 섭취하고 호흡을 이어가는 그 모든 과정이 이미 존재하고싶다는 거대한 의지이자 집착의 발현이잖아요.. 진짜 집착이 없으면 관조고 뭐고 육체가 소멸하던 말던 내버려둬야지 왜 생존을 연장하냐는거에요
@ㅇㅇ [행위 자체가 이미 생존을 전제로 하는..집착이 없으면 관조고 뭐고 육체가 소멸하던 말던 내버려둬야지 왜 생존을 연장하냐 이마저도 집착이다]처럼 삶을 생존/집착이라고 보는 건, 이미 떠난 화살을 두고 ‘왜 날아가냐’고 묻는 것과 비슷합니다. 화살은 힘이 다할때까지 그냥 날아가는 것이죠.
@smV2.28 전 ‘삶’이 아니라 ‘삶을 유지시키고자 음식을 섭취하고 호흡하는 것’이 집착 아니냐고 묻는건데요? 화살 비유하시는거 보니 제가 묻는 바를 이해 못하신 것 같은데, 제가 수정해드리자면 화살이 날아가기 시작했으면 힘이 다하게 되어 멈추게 됐을 때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거지, 왜 화살이 굳이 안멈추게 뒤에서 바람을 불어주냐는거에요..
@smV2.28 이거 한번 읽어보시죠 불교에서도 이 질문에 대해 변명만 늘어놓는 것 같은데 https://m.newspower.co.kr/38843
@ㅇㅇ 삶을 먹는것과 분리시켜 집착이라고 하는 자체가 하나의 해석[생각]일뿐 입니다. 토끼가 풀을 뜯는것을 생존을 위해서?라고 봅니까? 살아야겠다! 그래서 먹어야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먹는 걸까요? 토끼의 삶을 토끼의 집착으로 볼지, 그냥 살아가는것으로 볼지. 또는 인간과 토끼의 삶을 비교하며, 또다시 인간과 동물은 다르고,인간은 의지/생각이 있지 않냐?로 나아갈지. 고민 할까도 싶네요. 그렇게 논리를 끌고 간다면, 배고파서 먹는것은 집착이 아니라고 확언을 미리 해둡니다.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많은 일들을 하지만, 그 모든 사건과 행동을 통째로 집착으로 보는게 아닙니다.
@ㅇㅇ 그리고 링크글은 불교식교리 내용이 복잡하게 얽혀[해석]있어. 제가 유학과 유교를 다르게 보듯 불교와 싯달타의 말을 비교할때도 종교적인 색체자체를 지워 버리고 보는 편이고, 그 시작은 싯달타의 말에서 합니다. 유전,열반,유여니 무여니 이런 단어들이 있으면, 싯달타가 중국식 한자를 떠들었을리 만무하고, 시간낭비 시킨다고 생각해서 평소에도 잘 안 봅니다. 모르기도 하구요. 시간이 아주 많이나서 심심하면, 조금씩 공부할 뿐입니다.
@smV2.28 삶을 먹는거랑 왜 분리해요..? 배고파서 먹는 것을 집착이 아니라고 규정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데 “그저 그런 것이다!” 라고 대답을 하시면 제가 물은 질문에 결국 대답하신건 전혀 없게 되는데요..? 토끼도 결국 그 생명활동이 육신에 의존하는데, 토끼도 사유의 폭이 좁을 뿐 토끼의 생명활동은 의지의 발현으로 보아야 하는게 타당하지 않나요?
@smV2.28 일단 알겠습니다 혹여 제 궁금증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답을 떠올리신다면 언젠가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ㅇㅇ 배고파서 먹는 것을 집착이 아니라고 규정하는 이유를 몰라서 이러는건 아닐것 같아서요. 그건[집착의 정의] 철학이전의 거의 상식 수준입니다. 집착과 의지를 혼동하는건지 혼동하려고 하는건지. 토끼의 의지요? 토끼의 의지라... 그냥 상식으로 배고파서 먹는걸 음식에 삶에 집착하는 거라고 아무도 주장하지는 않는다고 주장 합니다. 이는 제가 누군가의 말을 일일이 다 확인 할 수는 없기에 주장이라 하겠습니다
@smV2.28 아니요.. 12연기설만 봐도 분명 유와 취는 갈애에서 나온다고 주장하는데요? 배고픔을 느끼니 먹는다 라는 행위가 생물학적 생존 의지의 가장 강력한 발현인데 이걸 그냥 “상식적으로 집착이 아니다”라고 우기시는건 논증이 아니라 선언이죠.. 어떤 철학에서 집착이 의지와 별개라고 주장했나요??
@ㅇㅇ 집착과 의지의 의미를 찾아보시죠. 될수 있으면 전문가와 상의 하면 좋고 사전이나, ai를 활용하는 것도 추천 합니다. 연기,유,취,갈애 까지 가지 않아도 알 수 있어요.
@smV2.28 그럼 제 비판에 대해 평가해주세요 1. 욕구는 이미 결핍을 전제한다. 2. 결핍은 곧 자극의 형태이다. 3. 모든 욕구는 이미 집착이다. 아무리 봐도 불교에서 집착과 의지를 구분하는 기준이 너무 자의적인 것 같아서 제기하는 의문입니다
@ㅇㅇ [모든욕구=집착]은 댓글쓰는 분의 오류라고 확언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교는 싯달타의 사상에서 많이 변형/왜곡이 되어서 너무 개념/교리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깨달음에도 아주 집착하는 사람들이 많고, 심지어는 돈벌이로 사주봐주는 사람들도 넘쳐 납니다. 그 초기경전의 해석도, 아주 많이 불교교리에 오염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퇴보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 불교는 평생을 공부해도 다 못합니다. 싯달타가 말 한게 그렇게 많은 분량은 결코 아니죠. 그래서, 저는 싯달타의 말을 인도원문으로 공부 합니다.
@smV2.28 불교 교리의 세속화에는 깊이 동의하는데요 제 비판의 3번은 1과 2를 통해 나온 결과입니다 깨달음을 얻더라도 자연스럽게 내 육신이 먹을 것을 요구함 - 이것이 무엇을 기준으로 집착이 아닐 수 있는 것이며, 그 기준은 싯다르타의 자의적 해석에 따른 기준인지, 아니면 그것을 넘어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무언가가 기준으로 작용하는 것인지를 묻는거에요..
@ㅇㅇ 모든 욕구가 '집착'이라고 말한적은 없고, '집착의 근원'이 될수있다. 라고 이해합니다. 그래서 그 욕구를 잘 다스려야 한다. 이런정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