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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의 고충을 다룬 기사나 인터뷰는 언제나 동정을 얻는다. 어린 아이를 돌보느라 야근을 못 하고, 인사고과에서 밀리고, 승진에서 누락된다. 이 서사는 반복될수록 익숙해지고, 익숙해질수록 의심 없이 수용된다.


그런데 한 번도 제기되지 않는 질문이 있다. 직장에서의 성과를 정말로 포기할 수 없다면, 왜 남편에게 전업주부를 시키지 않는가? 전업까지는 아니더라도 남편이 파트타임으로 전환하고 양육을 주로 맡으면, 본인은 주 부양자로서 커리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논리적으로는 가장 깔끔한 해법이다.


그런데 워킹맘 담론에서 이 선택지를 진지하게 검토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단 한 명이라도?


결국 드러나는 전제는 이렇다. 남편은 자기보다 더 벌어야 하고, 더 오래 일해야 한다. 그 전제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 다만 자신도 그 남편과 같은 조건으로 일하는 남성 동료들에게 뒤처지고 싶지는 않다. 고과도, 승진도, 인정도 동등하게 받고 싶다.


이것은 고충의 토로가 아니라 모순의 고백이다. 가정 내 성별 분업의 혜택은 그대로 누리면서, 직장에서는 그 분업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평가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하나도 잃지 않고 모든 것을 얻겠다는 요구, 그것을 사회는 '고충'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준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남성이 주양육자가 되는 데는 구조적 장벽이 있다. 남성 쪽 임금이 높은 현실, 주변의 시선, 남성 본인의 저항. 그러나 이 장벽들이 선택을 어렵게 만드는 것과, 그 선택지를 아예 논의조차 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장벽이 있어서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남편이 자기보다 못 버는 구도 자체를 받아들일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워킹맘 담론이 진정으로 구조적 문제를 제기하려 한다면, 역할 재배분이라는 가장 명백한 해법이 왜 매번 논의에서 빠지는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그것을 설명하지 않는 한, 이 담론은 평등의 요구가 아니라 유리한 위치의 확장 요구로 읽힐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