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가 신에 대해서 불가지론인 경우는 있지만 결국 철학자는 자기 신념(철학)으로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신념과 불가지론의 관계는
어떤가요? 서로 시너지가 있을까요? 당연하게도 없습니다. 불가지론은 결국 공리 설정이 되는 형태가 아니란 겁니다. 철학자로써 무적의 기술이
아니라 무능함의 상징이란 것이죠. 토론회장에서 우리는 무신론자와 유신론자의 토론을 보고 싶지 그냥 우린 알수없다 이렇게 끝나는 걸
보고 싶은 사람도 없다는 겁니다. 물론 이것은 스포츠가 아니죠. 그럼에도 유신론의 논리나 무신론의 논리나 토론을 통해서 서로 발전을 해왔습니다.
즉, 우리가 철갤에서 무신론 유신론의 토론을 한다면 진부하게 무신론자는 표독하다? 유신론자는 멍청하다? 제 눈에는 사실 그렇게 말하는 유신론자들이
더 표독해보이고 그렇게 말하는 무신론자들이 더 멍청해보이는데 그런 수준의 토론은 이미 과거에도 많았을 겁니다. 결국 토론이나 논쟁을 하려한다면
새로운 논리라도 있어야 그나마 가치가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보통 범신론이나 이신론자는 잘 싸우지도 않습니다. 신이 이 세계를 만들고
개입은 하지 않고 자연에 맡겨둘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종교인과 싸울 필요를 못느끼기 때문이죠. 그래서 주로 종교적으로 광신적이거나
무신론자를 가장한 반종교주의자들이 싸운다는 겁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싸우더라도 새로운 논리를 가져와서 싸우라는 겁니다.
아마 그런건 없겠지만 말이죠.
음 알 수 없기에 취해야 할 태도들에서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저 불가지론자 홀로 있으면 더 말할 것도 없겠지만 대응자가 있으면 논박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게 실제로 논박이 되는 종류의 토론일지는 회의적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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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의미있는 논박이'
본문은 결국 불가지론자가 우주의 근본적인 부분에서는 당위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우리의 학문의 발전에 관해서는 무능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무신론 유신론에 관해서는 의미가 있긴 하겠죠. 하지만 저는 철학자라면 자기 나름대로의 신을 정의하여 하여 신을 찾는게 맞다고 보는 겁니다. 신의 무용성을 찾거나 또는 신의 무용성을 찾거나 하는게 더 철학적이란 것이죠.
물질의 세상에서 물질을 초월하는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그 ‘존재’를 최초로 인지한 사람 입장에서는 분명 어떠한 방식으로든 ‘흔적’이 남아야 함. 종교를 반대하는 이유는 종교인들이 그저 당장 알 수 없는 모든 의문에 대해 ‘신’을 선언하고 사유를 포기하기 때문임. 그것은 근본적으로 문제의 해결을 논하는 자세가 아님
근본적인 부분에서는 유신론자나 무신론자나 해결 할수없습니다. 그게 불가지론이 성립가능한 이유고 말이죠. 아니면 무신론자가 해결 했을까요? 무신론자는 그 최초에 대해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 능력이 있을까요?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글로 써주시면 좋겠네요.
@부기우 무신론자는 그렇기에 살아가면서 신의 영향을 모든 변수에서 배제함. 알지 못하는 부분을 신의 영역이라고 두고 그저 무언가가 이루어짐을 바라는 간절한 기도같은 이딴 행위형식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행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메타적으로 인식하고 분석하여 ‘어떻게’ 해야할지를 연구함. 적어도 지금까지의 모든 과학기술은 연구에서 ‘신’을 변수로 사용하지 않았고, 문제를 실제로 ‘해결’해왔음.
핵심적인 가장 근본적인 부분을 해결하지 못하면 논점과 관련이 없습니다.
@부기우 과학과 철학이 그 근본적 부분에 닿기 위한 노력임
@부기우 그 가장 근본적인 부분에 대해서 과학은 연구하지 않습니다. 철학적으론 결국 불가지론이나 우주가 없다. 또는 우주는 그냥 있다 세가지만 가능합니다. 아니라고 생각하면 님이 아닌 케이스를 하나 찾으면 될겁니다.
@부기우 이미 그 세 가지로 정의하려는 시도 자체가 사유의 중단인데요
@부기우 그러니까 그게 사유의 중단이라 생각하면 그 셋을 제외한 케이스를 가져오시면 됩니다. 저는 그걸 충분히 사유한 결론이라 생각하거든요.
@부기우 현실을 마주하는 것은 두려우니 그저 세 가지의 결론을 던져놓고 무엇이 되었든 셋 중 하나에 도달한다 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론이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과학적 철학적 ‘탐구’는 본인이 말한 셋 중 하나의 명백한 목표를 정하여 방향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알게 됨이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부기우 우주가 없다 - 우주가 있다 이 두 가지 중 하나가 참이더라도, 여전히 우리가 무언가를 인지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자꾸 되돌아가는데 님이 말하는것은 근본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논리를 진행함으로써의 생기는 발전의 의미일 뿐이란 겁니다. 결국 신과 관련된 부분은 우주의 존재성에 관련이 있는겁니다. 님이 말하는건 논점 외라는 것이죠.
@부기우 논점 외인 이유: 신이 변수로 작용된 결과값은 지금껏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므로 애초부터 ‘가정’일 뿐임. 과학은 이미 우주의 존재를 논하고 있음.
그러니까 과학은 우주가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발전해온거지 우주가 왜 존재하지는 또는 존재하지 않는지는 철학적으로 모르는데 따라서 여전히 해결된게 아니죠. 단정을 결국 님이 하고 있는걸 모르겠나요?
@부기우 본인 본문에서 한 말 대로 불가지론은 공리 설정이 되는 형태가 아님. 그 어떠한 방향성도 가지지 않는 ‘입장 표명’에 불과함. 인간이 물질계에 물질로 존재하는 한, 과학을 통해 ‘증명’된 것들만을 말하는 것은 ‘겸손’이며, 존재하지 않는 것의 ‘가정’을 논하는 것은 오만임
그러니까 존재하지 않는지 아닌지 누가 밝혀냈냐는 겁니다. 또 되돌아가네요.
@부기우 모든 인지가 물질적 기반 위에서 나타난다는 결론은 압도적인 확률적 근거를 가진 귀납적 사실임
이미 본인이 철학적으로 불가지론의 스탠스가 성립가능하다고 하면서도 그걸 무시하고 무신론적으로 과학쪽을 맹신하고 있는데 그게 바로 단정하고 믿는 행태입니다.
@부기우 그야 당연히 ‘증명’되지 않았으니까요.. ‘증명’되면 변수로 고려하겠다니까요?
또 다시 돌아가서 그럼 불가지론이 왜 성립 가능한지 생각해봤나요?
@부기우 무언가가 변수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게 무엇이며, 어떻게 작용하며, 어떻게 측정되어야 하는지를 ‘증명’해야지, 주장해놓고 ‘그 방법은 니가 생각해 봐야지’라고 하는건 그 자체로 유신론자들의 태도인데요?
@부기우 불가지론: 공리 설정 불가 과학: 논증된 것들만을 기반으로 하여 논함
또 되돌아가는데 님이 자꾸 반복해서 말하는 부분은 우주의 존재성과 관련이 된게 아니라 그 이후의 부분입니다. 결국 우주가 왜 존재하는지 또는 존재안하는지 모른다면 그건 과학의 영역이 아니고 철학의 영역이고 당연하게도 유신론 무신론 불가지론 다 그에 기반하여 버티는 겁니다.
@부기우 그니까 그걸 과학이 연구하고 있다고요.. 우주배경복사 연구하고 입자가속기 돌리는건 심심해서 돌리는건가요?
@부기우 자꾸 무언가를 ‘가정’하시고 그것을 합리화할 방법을 찾는걸 철학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확실히 아는 것’을 근거로 한 사고의 확장이 바로 철학과 과학의 탐구원칙이죠..
과학은 어떻게를 연구하는 것이라고 본인이 이미 썻자나요. 근데 어떻게는 공리가 이미 정해졌기 때문에 가능한겁니다. 우주가 있다는 공리로요. 그런데 그게 철학적으로는 단지 불가지론 우주 없다 우주 있다중 하나를 채택한것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우주의 존재성을 연구하는데 우주의 존재성을 연구하려고 입자가속기나 배경복사를 연구하는 것도 아니고.
빅뱅 당시의 상황을 재현해보려고 그러는 겁니다
@부기우 사고의 확장을 통해 우주의 존재성을 연구하는 지점에 닿는겁니다
@부기우 만약 기존의 공리로 설명되지 않는 영역이 있다면 당연히 거기서부터 논하게 되겠죠
@부기우 근데 그 또한 가정일 뿐 지금 밝혀진 사실은 아니라는겁니다
우주의 존재성은 어떻게로 되는게 아니고 그점에 관해서 충분히 사유되었기 때문에 결국 세가지정도의 케이스로 남은 겁니다.
@부기우 그니까 그게 가정이잖아요..
그러니까 님 말이 맞다면 과학이 우주의 존재성을 밝혀내는 날이 오겠죠? 저는 안올거란 거고요. 물론 저도 그런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암튼 저는 이만.
@부기우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