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선만으로는 악을 이길 수 없는 이유
— 악을 이해하되, 악에 잠식되지 않는 존재에 대하여
사람들은 흔히 선과 악의 대결을 단순하게 상상한다.
선은 맑고 순수하며, 악은 거칠고 파괴적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순수한 선이 악을 이긴다고 믿는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며, 현실의 악은 대개 노골적인 괴물의 얼굴로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계산적이고, 교묘하며, 인간의 선의를 역이용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바로 이 점에서 순수한 선만으로는 악을 제압하기 어렵다.
악을 상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한 착함이 아니라, 악의 구조를 이해하는 통찰과 그것에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이다.
악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대는 단순히 선한 사람이 아니다. 선하기만 한 사람은 오히려 악인에게 이용당하기 쉽다.
그는 타인을 자신의 기준으로 이해하려 한다. 자신이 타인을 속이지 않기에, 타인도 그렇게까지 비열할 것이라고 쉽게 상상하지 못한다.
자신이 연민을 느끼기에, 상대 역시 최소한의 양심은 남아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이 악이 파고드는 틈이 된다.
악인은 선한 사람의 신뢰, 죄책감, 배려, 인내를 하나의 자원처럼 사용한다.
선한 사람은 도덕적으로 고귀할 수 있으나, 악의 언어와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현실 속에서는 반복적으로 착취당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중요한 것은 선함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순수함이 언제나 힘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선이 현실에서 무력해지는 순간은, 선이 자기 방어 능력을 상실했을 때다. 아무리 고결한 가치라도 그것을 지킬 힘이 없다면,
그 가치는 현실 속에서 짓밟히기 쉽다. 악은 종종 선보다 강해서가 아니라, 선보다 더 현실적이고 더 비대칭적인 방식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우위를 점한다.
규칙을 지키는 자는 예측 가능하지만, 규칙을 도구처럼만 여기는 자는 훨씬 더 공격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따라서 악을 막기 위해서는 도덕적 순수성만이 아니라 냉정함, 경계심, 판단력, 그리고 필요할 때 단호하게 거절하고 끊어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악을 이기는 힘은 ‘악마가 되는 것’에 있지 않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자기 안의 어두운 가능성을 인식하는 데 있다.
인간은 누구나 공격성, 복수심, 지배욕, 파괴 충동 같은 그림자를 어느 정도 지니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부정하거나 위선적으로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존재함을 인정하고 통제하는 일이다.
자기 안의 어둠을 모르는 사람은 오히려 타인의 어둠에도 무방비하다.
반대로 자기 내면의 그림자를 직시한 사람은 악인의 심리를 더 잘 읽는다.
왜 그런 말투를 쓰는지, 왜 죄책감을 유발하는지, 왜 애매한 호의를 가장하는지, 왜 상대를 지치게 만든 뒤 지배하려 하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다.
그는 악의 충동을 실행하지는 않더라도, 그 구조를 이해할 수는 있다. 바로 이 이해가 방어의 시작이다.
이 지점에서 필요한 존재는 천사가 아니라 다크 히어로에 가깝다. 여기서 다크 히어로란 악을 숭배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악의 문법을 이해하지만, 그 문법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순진하지 않지만 타락하지도 않는다. 그는 연민을 가질 수 있으나,
그 연민이 자기 파괴로 이어지게 두지 않는다. 그는 상대의 비열함을 읽을 수 있으면서도 스스로 비열해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는 선과 악의 중간지대에 머무는 인물이 아니라, 악을 직시한 뒤에도 선을 선택할 수 있는 더 높은 차원의 인물이다.
순수한 선인이 세상을 지나치게 낙관한다면, 다크 히어로는 세상의 어둠을 너무 잘 알기에 오히려 더 의식적으로 정의를 선택한다.
진정한 복수 역시 여기에서 다시 정의될 수 있다. 악인에게 가장 큰 패배는 그를 똑같이 따라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그의 방식이 유일한 생존법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 있다. 악인은 대개 모든 인간이 결국 자기와 비슷하다고 믿는다.
다만 기회가 없거나 힘이 없어서 선한 척할 뿐이라고 여긴다. 그렇기에 그의 심리를 완전히 이해하고도 그 반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악인의 세계관 자체를 무너뜨리는 존재가 된다.
조작할 수 없고, 죄책감으로 흔들리지 않으며, 동시에 잔혹함으로 타락하지도 않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 악인에게 가장 껄끄럽고 두려운 상대다.
결국 악을 무찌르는 힘은 순수한 무지에서 나오지 않으며, 사실 각성된 악함에서 나온다.
악을 모르는 선은 쉽게 희생되지만, 악을 이해한 선은 비로소 힘을 가진다. 중요한 것은 내면의 어둠을 키워 악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둠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길들이는 일이다. 선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순진함을 버려야 한다.
정의가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기 보존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
빌런을 무찌를 수 있는 것은 순수한 천사가 아니다.
어둠을 이해하되 그 어둠에 지배당하지 않는 존재, 바로 그런 다크 히어로만이 악과 맞설 수 있다.
당신이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볼 것이다.
그 심연에서 탈출한 자가 다크히어로가 되어 악인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상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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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ㅊㅊ
진짜 유익한 글이다 이건 인생 경험치, 노련미가 느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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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은 정말 좋은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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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 선과 악을 어떻게 나눔?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