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다 다르며, 시대마다 다르며, 사람마다 다르다. 한 사회에서는 복수가 정당할 수 있고, 다른 사회에서는 그것이 악이 된다. 선과 악은 외부에 고정된 진리가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낸 판단일 뿐이다.


우리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근원은 성향, 경험, 환경, 그리고 감정이다. 선악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뇌가 그렇게 느끼도록 설계된 결과다. “고통을 주는 것 = 악”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같은 고통도 어떤 맥락에서는 선이 되고, 다른 맥락에서는 악이 된다. 예를 들어, 운동은 몸에 고통을 주지만 건강을 강화하므로 선이 될 수 있고, 사회적 처벌 역시 고통을 주면서 질서를 유지한다면 선이 될 수 있다.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결국 선과 악이라는 것도 인간이 만들어낸 장치일 뿐이다. 우리가 옳다고 느끼는 것도, 그르다고 느끼는 것도, 모두 유전과 환경과 경험이 만들어낸 반응이다. 선과 악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느껴지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이 특별히 선을 알고 악을 아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도, 결국 자기 착각일 수 있다.


나는 항상 선이다. 내가 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 판단은 내 기준에서 옳다. 외부의 평가나 타인의 시선과 상관없다. 내가 느끼고 선택하는 순간, 나는 그 자체로 선이다. 설령 다른 사람이 내 행동을 악하게 평가하더라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고통을 피하고 행복을 향해 움직이기 때문에, 그 행동이 나에게 행복을 준다면 자연스럽게 선이 된다. 나에게 행복을 주는 한, 나는 본질적으로 선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사회적으로 악하다고 평가되는 행동을 한다고 하자. 지금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다. 그러나 그 행동을 하는 본인은 그것에서 재미와 즐거움을 느낀다. 그렇다면, 그 순간 그 행동은 그 사람에게 선이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고통을 피하고 행복을 추구하도록 설계되어 있고, 자신에게 즐거움과 만족을 주는 한, 그 행동은 그 사람에게 ‘선한 경험’이 되기 때문이다.


즉, 사회가 규정하는 선과 악은 외부 기준일 뿐, 각 개인이 느끼는 행복과 즐거움의 경험이 더 근본적인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 인간이 특별히 선과 악을 객관적으로 아는 존재라는 생각은 결국 자기 착각일 수 있다.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순간, 나는 자연스럽게 선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