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데리다는 해체론을 창시했을지언정 해체주의자는 아니다.
해체론 자체도 무슨무슨 주의가 되고 중심성을 획득하는 순간 해체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플라톤 형이상학이 그 자신이 폄하한 문자언어에 의존했듯, 해체주의나 포스트모던 역시 그 자신이 폄하하는 어떤 것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에 단순히 기존의 모더니즘적인 위계를 뒤집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2. 데리다는 친자본적인 철학자이다.
역사 이래 상업은 늘 생산활동이나 정치적 활동에 비해 천시되고 외면되어 왔다. 그럼에도 상업, 유통은 생산활동과 정치적 활동이 가능하게 만드는 원흔적의 역할을 해왔고, 하고있으며, 미래에도 그럴 것이디.
데리다 해체론은 이렇게 억압되어온 상업과 유통에 정당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철학이다.
3. 자본주의는 자유민주주의와 필연적으로 연결된다.
데리다 해체론 핵심은, 인간이 신이 아님에도, 혹은 신이 아니기에 신을 닮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요구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 무언가는 결국 신이 아닌 인간이 만든 우상이기에 해체가 신이 남긴 흔적에 의존하게 되고 해체가 불가피하다.
이 때 신이 남긴 원흔적이 무엇인가. 화폐이고 상업이며 유통이다.
원흔적으로부터 파생된 흔적의 흔적으로서의 기원, 혹은 현전이 무엇인가. 국민의 선택으로 구성된 정부이다.
해체론 관점에서 정부란 늘 해체 가능하기에 자본주의 하에서 자유민주주의는 필연이다.
4. 불교와의 연관성
집착을 내려놓는다는건 존재론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것이다.
인간은 인식할 뿐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은 오직 신 뿐이나 인간은 신에 대해 모른다.
해서 존재론을 대체하는 것이 메타인지이며, 인간 스스로가 신에 대해 모르고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메타인지이다. 메타인지는 인식론이 존재론으로 격상되지 못하도록 제한한다.
이 때 집착을 비울수록 바른 인식이 드러나고, 바른 인식이란 결국 상업과 유통으로 이어진다.
해서 붓다 생전 상인들이 붓다를 지지했던 것이다.
5. 화폐론
화폐란 일종의 반영구적 기원이다. 변하지 않는다고 믿어지기에 기원이 될 수 있지만, 그 기원도 흔적이기에 영원하지 않으며, 오히려 화폐는 시대에 따라 바뀌어도 인간 사회가 상업과 유통에 기반한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헌데 상업과 유통은 늘 신의 부재와 화폐라는 현전을 전제로 한 흔적이기에 화폐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인류 역사를 다시 보면 놀랍도록 쉽게 이해되는 사건들이 많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