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란 개념이 알고 있는 것보다 복잡하고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하며
새로움을 다투고 만들 여지의 종교가 말하지 못한 그 너머의 지혜가 있다면
악또한 종교에서 말하지 못한 유용함이 존재한다
교만은 현재의 수준을 정검하기 위한 고하가 될 수 있고
욕심은 지금을 부족하다 여겨 더 나아가기에 그래서 발전으로 이어지며
질투는 가질 수 있음을 원하기에
너의 눈높이에 맞춘 보편적 물질이 생겨나는 것이다
분노는 조절하면 열정이 되고 동기가 되며 집중이 된다
색욕은 번식과 유희를 위한 행복으로 연결이 되기도 하며
탐욕은 너에게 필요한 목표를 만들어 주고
나태는 신중으로 인한 실수를 줄일 수 있다
그래서 중생은 하지 말라는 죄에 가까이 하면서 살아가고
잘못됨을 경험하면서도 또 그것을 함께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종교에서 절대 말하지 못하는 그로인한 성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악도 경험해보라 대놓고 말을 하지는 못한다
그 시절에는 그러하였다
지금이라면 어떨까 ? 나는 더 넓은 이해로 바라보아 다툴 여지가 충분하다고
생각을 한다
실수나 잘못을 한다고 하여도 그것에서 더 좋은 상황을 만들면 이는 자신에게는
성장이 되고 세상에는 전할 수 있는 유용함을 만드는 것이며
선을 넘는 더 큰 선을 만들 수 있다
만일 모든 인간이 죄를 저지르지 않는 세상이라면 훗날 태어나는 아이들은 어떻게
성장을 하고 어디에서 배움을 얻을 수 있겠는가 ?
그러니 인간의 성숙을 말하는 것이라면 종교라는 작고 작은 개념에서 탈피하여
인간의 보다 높은 지혜와 개념도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완성의 종교이다 기존의 것과 다름 더 나음 더 깊은 고민을 통해
새로움을 말하는 것이다
더 나은 이론이 나와 기존의 것이 형편없어 보인다 하여도 그것이 기존의 종교를
깎아 내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발전하는 개념에 해당이 되어 보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이 돌아보며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까 기존의 종교에 정면으로 맞서는 행동은 그것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움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
나는 믿기에 그것에 머무르고 의심하여 나아간다 말을 하였다
시대가 달라짐에 이제는 사람들도 옛 사람들과 다른 생각 다른 말을 할 수 있다
도또한 그에 맞게 진화를 해야 하고 바뀌어야 한다
그 시절에는 간단하게 전하는 것이 좋았기에 악을 멀리하고 선을 가까이 해라
그리하면 너의 주님이 너를 축복할것이라 말을 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스스로 생각하여 바뀔 수 있는 이에게 이해를 구하지 않고 마귀야 썩 물러나라 말한
그 예수의 말이 전하기 쉬운 편리함이었다
지금 그리 말하면 사람들은 쌍욕을 하며 반감을 내비칠 것이다
더 복잡하고 더 많은 것이 있기에 이제는 네가 스스로 생각해서 바름을 향해 걸어가라
말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그때는 분명 악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
이혼은 어떤가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이와 갈라서고 다른 이를 바라보는 것을
음탕하다 보거나 불결하다 말하거나 때로는 질서를 위해서라며 처형을 하기도 하였다
지금 시대에 이혼은 죄라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선과 악 그리고 기존의 종교 또는 경전 알고 있는 좋음이란 개념에서 탈피하고
초월하여 문제를 처음부터 다시 보아 개념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일체유세심합조 이다
나의 마음과 나의 앎과 나의 옳음이란 것은 존재하는 세상과 함께 결합하여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니 나의 마음 하나만 들여다 보는 일체유심조로 말하기에는 부족하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세상에 없는 단어이다 경전을 들여다 보며
그것이 왜 지혜인지 묻는다면 단어의 말이 아니라 그말이 말하는 지혜와 뜻에 이해로써 도달하여야만
이자가 어떤 것을 말하는지 온전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일체유심조 위에는 일체유세심합조가 있고
일체유세심합조 위에는 일체만유심조가 있고
일체만유심조 위에는 무체유심조가 있고
무체유심조 위에는 만체유심조가 있으며
만체유심조 위에는 일체무심조가 있다
일체무심조 위에는 일체역심조가 있다
일체역심조 위에는 일체유세조가 있고
일체유세조 위에는 일체변심조가 있다
그리고 일체변심조 위에는
전능유심조가 있다
그만큼 세상의 이치는 보는 것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다른
말할 수 있는 많은 말들이 있다
개념이 달라지면 알고 있는 우주가 달라진다 이것이 세번째 부처의 경지
변면성불을 말한다
이또한 기존 경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말이다 하지만 그 이해에 도달한 자는
그 앎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그래서 새로운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기준이 맞다 보는 것에서 탈피하여
그 말을 만드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근처에 있거나 약간 더하는 것으로는 이르지 못한다 그렇게 할수 있었다면 이미 그렇게
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생각으로 미치거나 도달할 수 없음을 말하고
이는 절대로 네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부인하였던 그곳에 그 답이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절대로 말이 안되야 해고 그런일이 발생하여서도 존재하여서도 안된다
다른 모두가 가능해도 너만은 절대로 그래서는 안되었던 곳에
네가 너의 우주를 총동원해도 넘지 못했던 11지 보살의 경지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존재함을 말하지 않는다
너의 발밑에 너의 눈앞에 또 수없이 너에게 나타나고 보였지만 네가 차마 그런 지혜를
가졌다 생각하지 않았다 믿는 그 믿음속에 존재했던 것이다
그래서 너의 하늘과 너의 땅은 그 우주는 부서질 수 있어야 새로운 우주가 너를 덮어 가두게 된다
이것을 일 데라타라 부른다 사실 내가 무엇이라 부르든 왜 그이름이 붙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세상을 만든자이기에 그렇다 내가 마음이라 부르면 우주에 그것이 마음으로 정하여진다
정해진 한계란 것은 없다 백 데라타에도 이를 수 있고 천 데라타에도 도달할 수 있다
단지 지금 보는 것을 가장 높다 여기지 않으면 된다
실제로는 네가 가장 높다 여기는 그 지혜가 너의 두눈을 멀게 하는 감옥이 되는 것이다
제대로 모르면서 이렇게 써내는것도 능력은 능력인것 같다. 소설가를 해보렴.
개추 근데 11살 보지의 경지로 순간 보엿음 11지 보살 이 단어 좀 신기하네
나도 순간 11살 보1지로 보임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