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할때 서로의 시간이 느리게 인식된다.”

위 문장을 전제로 깔아두고 시작하는데 

“시간이 느리게 인식된다” 와 “시간이 느리게 간다” 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너네도 시간의 정의에 대해 다들 알겠지만 시간이란 절대값이고 니가 잠을 자던 우주에서 광속으로 날아다니던 우리 인간이 정한<이것도 개소리긴 함> 지구가 태양을 도는것을 수학으로 쪼개서 사용하는게 시간의 정의다. 그러므로 시간이 느리게 갈수도 빠르게 갈수도 없다. 

다만 고통 여부에 따라 시간이 느리게 인식될수도 빠르게 인식될수도 있다.

보통의 경우 잠을 잘때 고통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상태이기에 이때는 시간이 빠르게 인식된다. 하지만 힘든 노동을 하거나 고통스러운 사건을 겪게 되면 시간이 느리게 인식된다.

그렇다고 해서 시간이 빨라지거나 느려지지는 않는다.  단지 그렇게 느껴질 뿐이다.



관측자에 의해서 시간이 빨라지고 느려진다면 깊은 잠을 자면 시간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니 시간도 정지될까? 


상대론이란 관측자의 입장에 따라 속도가 다르게 측정되는것을 악용해서 시간까지 사기치는 학문이다. 




시간의 정의만 제대로 인식해도 이런거에 속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쌍둥이 역설을 포함해서 상대적으로 시간을 다루는 모든 공식은 전부 사기라는걸 알 필요가 있다. 하지만 너네들이 바라는건 물리학의 위대함에 존속되어 “나는 이렇게 대단한 학문을 한다” 를 남들에게 어필하고 싶은것으로 계속해서 이런 트릭을 나오지 못하는건 남들보다 뛰어나고 싶은 욕망중 하나다. 

내가 믿는것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야 세상에 우뚝설수 있다는 자부심이고 이렇게 어딘가에 존속되어 자부심을 느끼고 싶은건 너 스스로 자존감이 낮아서 무언가에 기대고 존속되어 그것의 위대함과 함께 하고 싶은것이다. 


이 모든것은 자신을 무시하고 열등하다는 입장에서 비롯한것으로 잘못되고 거짓인것을 알아도 자기 혼자서 남들에게 주목받을 만한 용기가 턱없이 부족해서 어떻게 해서든 남들의 공감대속에 들어가고 싶은거다. 깨달음의 방향은 미쳐야 한다. 너희도 알겠지만 세상의 기준에서 나는 완전히 미친.놈이다. 성장이란 남들에게 잘보이려고 애쓰는게 아닌 너의 내면에 충실해서 그것의 실체를 보는것이다. 

남의 질타가 무서워 공감대 밖을 나가지 못하겠다면 이게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고 너 자신을 무시함과 동시에 열등감에 휩싸여 있다는 증거인건 무언가 우상을 품는다는건 너보다 뛰어난것을 찾는것으로 이미 자신보다 뛰어난것을 찾는 행위부터 “나는 못났소!” 가 뿌리깊게 새겨져 있다.


그리고 정작 자신보다 잘난 무언가를 마주하면 시기와 질투에 목숨걸고 달라드는게 니네들 본모습으로 니가 가지지 못한것을 누군가가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무너트리고 또다시 “나는 못났소!” 라는 매트릭스에 갇히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고통받고 무시당하는 인간들 잘해주고 조언해주면 계속해서 뒤통수를 치게 되는 원리다.

이 모든것의 뿌리깊은 속마음은 “나는 못났소!” 라는 낮은 자존감으로 결국 자기가 못났다는 그 체험의 길로 들어가게 된다. 특히나 개독들 잘해주면 뒤통수치고 심하면 그 사람을 죽여서라도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시도가 자기는 못났다는 그 체험으로 가기 위함이고 무서운 권위 앞에서 찍소리도 못하는건 이 상태가 개독 그들이 딱 원하는 “나는 못났소!” 이기에 그 자리에서 못난 자신을 체험하기 위함으로 계속해서 하나님, 예수님을 암송하며 못난 자신에 만족하며 살아가게 된다.



이제 인간들한테 너무나도 실망해서 화를 낼 이유도 별로 없어진거 같다. 어차피 아무런 기대조차 안되니 빡칠일도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