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함께 했던 나의 생애들"에서 발췌
예수는 【그가 가장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우리가 여행을 하는 동안에 접했던 공식적인 종교처럼 - 예를 들어 힌두교와 유대교 - 되는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매우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공식적인 종교들은 추락한 존재들에 의해 만들어졌거나, 왜곡되었으며, 이러한 종교들은 오로지 하나의 목적, 즉 사람들을 (육체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추락한 존재들 아래에 노예로 만드는 목적 밖에는 없습니다. 사람들과 영적인 세계 사이에 기관과 성직자 계층이 존재하느냐를 살펴봄으로써, 이러한 종교들을 아주 간단하게 식별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추락한 존재들이 사람들과 신(神) 사이에 중재자로 자처하려고 하는 것이지만, 이들은 실질적으로 이러한 지위를 결코 충족시킬 수가 없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금성인들에 의해 참된 길이 지구에 전해지게 되었지만, 이들이 오기 전에도 참된 길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 길은 우리를 천상으로 데려다줄 외적인 권위나 구세주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힘과 모든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영적인) 길이란 내적인 과정으로서, 천상과 여러분 사이에 어떠한 거리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 여러분의 의식을 점진적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입니다.
만약 공식적인 기독교 교리를 배우면서 성장했다면, 여러분은 예수가 이러한 길에 대해 설교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공식적인 기독교가 성경에서 볼 수 있는 몇 가지의 흔적들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흔적들은 행간의 의미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해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 당시에 유대교는 추락한 종교의 전형적인 본보기였습니다. 이러한 본보기의 한 측면은 이 세상에서 생이 끝나고 나면, 구원을 받게 된다고 약속을 하는 것이었으며, 이 말은 구원이 다른 장소, 다른 시기에 존재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분명히, 그것을 현재는 성취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돌아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왕국은 가까이에 있습니다!”라고 설교했을 때, 현대 기독교인들은 이것이 당시의 많은 유대인들에게 얼마나 도발적인 것이었는지를 거의 이해조차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말은 유대교의 성직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이었으며, 이 때문에 그들은 대단히 화가 났었습니다. 공식적인 기독교 또한 구원은 이번 생 이후에 온다고 설교한다고 여러분은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전적으로 맞습니다. 설명을 하자면, 공식적인 기독교 또한 추락한 종교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공식적인 기독교) 추락한 존재들에 의해 어떻게 왜곡되었는지에 대해서 나중에 정확히 설명할 것입니다.
내면의 길에 대해, 예수가 어떻게 설교했는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는 “하나님의 왕국은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누가복음 17:21).”라는 말을 꼽을 수가 있습니다. 이 말의 전체를, 특히 전후의 문맥상에서 생각할 때, 겉으로 보기에 단순한 말로 온 세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말을 언급하기 전에, 예수는 바리새인들에게 “왕국은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다(누가복음 17:20)”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는 추락한 존재들의 또 다른 주장, 즉 종교에서 말하는 외적인 규칙들을 따르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 자격조건을 자동적으로 갖추게 된다는 주장을 공격했습니다. 추락한 존재들이 하는 약속은 만약 여기 지구에서 그들을 의심하지 않고 따른다면, 여러분이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은 보장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실제로 설교를 하면서, 유대교의 주장은 거짓된 것이며, 심지어 “악마와 같은 것(satanic)”이라고 아주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여기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영어의 “사탄(Satan)”이라고 번역되어 있는 히브리어는 특히 내가 사탄이라고 불렀던 존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단어(satanic)는 창조주에게는 반대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감추기 위해, 추락한 존재들이 만들어낸 복합 개념입니다. 추락한 존재들이 갖고 있는 꿈은 우주를 창조한 창조주의 뜻을 반대 및 왜곡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강력한 힘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앞에 설명한 것처럼, 창조주에게는 반대되는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것은 헛된 꿈입니다. 하지만 추락한 존재들은 거짓된 신을 만들어냈으므로, 이 신(神)을 반대한다고 추측하는 거짓된 적(敵)도 만들어야 했습니다. 사실, 이 적(敵)은 실제의 하나님(God)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추락한 존재들이 만들어놓은 단지 거짓된 신(神)만을 반대하는 것뿐입니다. 이러한 거짓된 신은 이원론적인 의식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며, 이원성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반드시 반대되는 극성을 가져야만 합니다. 따라서 신을 반대하고,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적이 존재한다는 개념이 널리 퍼지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적이 존재하지만, 사실 이 적은 바로 추락한 존재들이며, 이러한 적들은 실제의 창조주를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케이,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습니다. 요점은 사탄(Satan)이라는 용어는 유대인의 문화 속에서 신(神)의 적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이름이며, 따라서 예수가 유대교의 성직자들을 사탄이라고 칭함으로써, 최고 수준의 도발을 했던 것입니다. 예수는 사탄이란 어떠한 의식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여기 지구에 어떠한 개념을 만들어내고, 그런 다음 이 개념을 모든 것들과 모든 사람들이 따르게 하려고 하는 의식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러한 의식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교리와 규칙을 스스로 정할 수가 있으며, 만약 이러한 교리와 규칙을 따른다면, 사람들이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은 보장이 된다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이것이 완전히 잘못된 주장이며, 세속적인 규칙을 아무리 잘 따른다고 하더라도,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아주 분명하게 설파했습니다.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의식을 이원성 너머로 끌어올려, 그리스도의 의식을 성취하는 것뿐입니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에 관한 한, 어떠한 속임수도 통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예수가 말했던 몇 개의 우화들 속에도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혼인 예복(그리스도의 의식)을 입지 않고, 혼인 잔치에 참석했던 남성이 (이원성 의식에 남아 있는 것에 의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던져진 우화 속에도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예수는 추락한 존재들에 대해 아주 직접적으로 이야기했으며, 단지 그러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또다시, 이러한 상황을 암시하는 내용이 성경 속에 기록되어 있으며, 예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한복음 8:44)”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추락한 존재라고 불렀던 것, 그리고 그들의 동기와 방법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여기에 대해, 예수는 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자세하게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진보된 가르침을 대중들에게는 전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자신의 직계 제자들에게만 전했습니다.
또한, 예수는 그리스도 의식을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문자 그대로 여러분의 자아감을 점차적으로 죽게 하여, 여러분의 정체성이 완벽하게 다시 태어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혀주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베드로(Peter)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바울은 이해했습니다. 예수는 자신을 따르기 위해(그리스도 의식을 성취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려고 하지 않는 자들은 제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했습니다. 이 말은 여러분이 육체적으로 죽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비록 필요하다면, 죽으려고 해야 하지만), 세속적인 삶의 어떤 것에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의식을 성취하는 것을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우선시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꼭 은둔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는 해야 합니다. 예수의 최초 제자들은 자신들이 성취한 그리스도임을 표현하고, 보여주면서, 사회 속에서 적극적인 삶을 계속 살아갔습니다. 예수의 의도는 제자들이 사회를 등지도록 하는 것이 결코 아니었으며, 삶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동배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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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을
우리 구주의 넓은 사랑을
함께 함께 가야 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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