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함께 했던 나의 생애들"에서 발췌
첫 2년 후, 예수는 아주 비범한 일들을 많이 행함으로써, 초자연적인 이적을 행할 수 있다는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지하에서는 강력한 저항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으며, 이러한 단체들은 로마인들에 맞서 폭력적인 봉기를 일으키기 위해, 훈련하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이것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공식적인 승인을 받지 않았으며, 비록 루시퍼가 저항 운동의 지도자는 아니었지만, 사실상 이러한 운동을 선동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루시퍼가 예수를 인식하게 되는 상황이 찾아오게 되었으며, 루시퍼는 예수에게 로마인들에 맞서 봉기하도록 이끌어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 저항 운동의 지도자들을 예수에게 보냈습니다.
루시퍼 및 사탄과 우리가 연루되었던 것에 대해, 그리고 루시퍼 및 사탄에게 폭력을 사용하고 싶어 했던 모든 욕망을 우리가 초월하게 된 것에 대해, 내가 앞에서 설명했던 모든 것들을 토대로 살펴보면, 어떠한 폭력적인 봉기에도 예수가 결코 참여할 의사가 없었다는 것이 명백해야 합니다. 예수는 "시저의 것은 시저에게 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주라"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예수는 로마인들이 이스라엘을 점령한 것은 자신의 사명과는 관련이 없다고 여겼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 대신에, 예수는 유대인들을 추락한 존재들의 통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한 가지, 즉 완전히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삶에 접근하는 방법을 보여주기 위해 왔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어떤 종류의 운동이든, 폭력적인 운동에 연루되는 것은 예수의 목적과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루시퍼는 예수가 저항 운동을 이끌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저항 운동의 지도자들을 보냈던 목적은 예수를 설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짜 목적은 저항운동을 지지하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거부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연히, 이것은 효과가 있었으며, 소문이 퍼져나감에 따라, 예수가 로마인들에 대한 폭력적인 봉기에 앞장서는 것을 거부했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예수와 그의 가르침을 거부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됨에 따라, 대다수의 사람들 눈에 예수가 약속된 메시아로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만약 예수가 약속된 메시아가 아니라면, 올바른 사고방식을 가진 유대인들이 왜 예수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이것이 바로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가 예수를 석방할 것인지, 아니면 바라바(Barabbas)를 석방할 것인지 선택권을 군중들에게 주었던 상황의 이면에 숨어 있는 진짜 이유입니다. 예수가 메시아, 즉 전사의 왕으로서의 역할을 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살아있는 그리스도보다 오히려 일개의 살인범(murderer)이 석방되는 것을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나저나, 메시아가 대단한 존재(super being)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매우 잘 작동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유대인들은 오늘날에도 추락한 존재들의 지배하에 갇혀 있습니다.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앞장서서 유대인들을 이끌었던 모세의 이야기는 진실로 상승 마스터들의 대리인들이 추락한 존재들의 지배하에 있던 노예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유대인들은 모세는 받아들였지만, 예수는 거부했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이러한 잘못을 인정하고, 자신들의 영적인 진화에서 다음 단계로써, 예수를 받아들일 때까지(공식적인 기독교가 아닌), 이들은 추락한 존재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추락한 존재들은 가까운 미래에 이 행성에서 틀림없이 제거될 것이며, 엄연한 사실은 유대인들의 현재의 마음 상태로는, 추락한 존재들이 어디를 가든,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추락한 존재들을 따라가게 될 것입니다.
내 말의 요지는 사명을 수행했던 3년 차가 되던 해에, 대다수의 유대인들이 예수를 이미 거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점점 더 많은 군중들을 (어떻게든) 모을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가 행했던 치유 작업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지만, 그래도 이들은 영(Spirit)의 힘을 만났으며, 예수를 통해 전해지는 상승 마스터들의 가르침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공식적인 기독교에 왜 상승 마스터들이라는 개념들이 들어 있지 않은지에 대해 궁금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한 가지 이유는 언어가 시간이 흐르면서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상승 마스터들”이라는 정확한 용어가 그 당시에는 사용되지 않았으며, 그 이유는 미묘하지만, 중요합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집단의식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상상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습니다. 우리는 종종 예수가 살았던 시대를 되돌아보면서, 그 당시의 사람들이 우리만큼 많이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이것을 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지어 더 중요한 것은 그 당시의 사람들이 우리와는 아주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지 못했으며, 우리가 당연시하고 있는 태양계 시스템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당연하다고 여기는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아주 제한적이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사례로서, 숫자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가 광야에서 금식을 하면서 40일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일부의 사람들은 만약 40일간을 금식한다면, 자신들도 어떤 특별한 영적인 경험을 하거나, 질병이 치유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금식을 하는 것은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며, 예수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한동안 혼자 있기 위해, 몇 번 갔지만, 결코 40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40이라는 숫자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요? 그것은 12보다 더 큰 숫자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히브리어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그 당시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12보다 더 높은 숫자를 좀처럼 셀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12보다 더 큰 양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12보다 더 큰 숫자를 지칭하는 단어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13 이상부터 무엇이든 될 수 있었습니다. 이 단어가 나중에 정확한 숫자 40으로 번역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의 시대에, 그것은 정확한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숫자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이 향상되었으며, 이러한 이유로, 우리가 모든 것들을 정확한 숫자로 나타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례는 오늘날의 사람들은 태양계 시스템이 3차원의 공간 속에 존재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보이는 풍경 너머에 어떠한 것에 관한 한 입체적으로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방대한 3차원의 공간에 떠돌아다니는 둥근 행성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예수가 상승 마스터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자신의 제자들에게만 이야기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물론, 예수는 천상의 주인(heavenly host)이라는 다른 말을 사용했습니다.
예수가 일반 대중들에게 고의적으로 뭔가를 숨기거나, 거짓말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자신이 하는 말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혹은 그를 통해서 상승 마스터들)는 대다수에 의해서 간과되었지만 그리스도임의 길을 위해 준비되어 있었던 사람들에 의해서 알아채진 특정한 암시를 주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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