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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막 14:36)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 곧 마셔야 할 고통의 잔을 세 번이나 거두어 달라고 간구하셨습니다. 많은 이들은 이를 두고, 그분께서 인간으로서 십자가의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피하고자 하신 것이라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 속에는 단순한 두려움 이상의 깊은 사랑과 아픔이 담겨 있습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눅 19:41)
예루살렘은 결국 AD 70년에 멸망하였고,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고 세상 가운데 흩어져 떠돌아야 했으며, ‘그리스도를 죽인 자들’이라는 낙인 속에 오랜 세월 미움과 박해를 겪어야 했습니다.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눅 19:44)
그리스도께서는 멸망을 선포하시면서도, 그 참혹한 광경을 내다보시며 눈물 흘리셨습니다. 심판이 이루어져야만 하는 사실을 아시면서도, 그 심판이 실제로 이루어질 때 겪게 될 고통을 아셨기에, 차라리 그 잔이 옮겨지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멸망을 향해 가는 자들까지도 품으셨습니다. 그들을 위해 눈물 흘리시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마음이며, 믿는 이들에게도 바라시는 삶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 가운데에는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도 있습니다. 때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잔이 우리 앞에 놓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하시며, 우리보다 더 깊이 사람들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셨지만, 끝내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하심으로 구원의 길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삶의 자리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해되지 않아도 신뢰하며, 아프더라도 사랑하며, 두려움 속에서도 순종하는 삶. 그 길 끝에서 우리는 구원, 절망이 아니라 회복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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