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65614aa1f06b367923425499b3dc8b1fb3acfba698041f0cd6b83e6b423bd3a6736005df66c52a407b08d4885673c048c






"조언은 왜 주어지는가"





누군가 내 인생에 참견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본능적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쟤는 뭔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야? 나한테 뭘 얻어먹으려고 하나?" 특히나 인생이 꼬였거나, 자기 삶이 삐그덕대는 사람일수록, 주변의 조언을 '간섭'이나 '무례한 충고'로 받아들인다. 그런 반응이 아주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사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자기 기준에서 우월하다고 느끼는 사람을 향해 '피드백'이라는 명목으로 열등감을 숨긴 공격을 감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조언이 그런 심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는 정말이지, 성격 자체가 오지랖인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바쁘지 않다. 오히려 심심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그 시간 동안 생각을 곱씹는다. 어떤 사람은 예능을 보고, 어떤 사람은 맛집을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이들은 그런 시간 속에서도 끊임없이 인간을 관찰하고,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해부하고, 행동의 원인을 추론하고, 거기서 작은 통찰을 길어올린다. 그리고 그 통찰을 혼자 품고 있자니 입이 근질거린다. 입 밖으로 내보내야 직성이 풀린다.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선생기질이 있다', 혹은 '너는 가르치는 쪽이 잘 어울린다'는 소리를 듣고 자란다. 이들은 지식을 축적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을 남에게 전달하면서 쾌감을 느낀다. 이들의 말투는 가끔 거슬릴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도 자각 없이 자신의 생각이 '더 나은 관점'이라는 전제를 깔고 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꼭 잘못된 것인가? 아니다. 오히려 인류 문명은 그런 불청객 같은 조언과 피드백으로 발전해왔다. 누군가가 말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절대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 우리가 지금 쓰는 말도, 지금 믿는 가치도, 대부분 누군가가 기꺼이 나서서 '이건 이렇다'고 설명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것이 문명의 순환이다.



인간은 왜 남에게 공짜로 무언가를 주고 싶어하는가?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친사회적 행동(prosocial behavior)을 설명할 때 여러 이론이 동원된다. 그중 하나가 '진화적 이타주의'다. 인간은 원래 무리를 이루고 살았다. 그리고 그 무리 속에서 생존하려면, 다른 개체에게 자원을 나눠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높은 생존 확률을 보장했다. 쉽게 말해, 단기적으로 손해 보더라도, 결국 돌아오게 돼 있다는 생존 메커니즘이다. 우리는 이 진화적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았고, 그래서 '아무 이득 없이도 누군가를 돕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뇌 구조를 가진 존재다.

또한 뇌는 도파민을 통해 보상을 받는다. 누군가가 내 말에 감탄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고 말할 때, 우리는 뇌에서 작지 않은 보상을 받는다. 마치 '좋아요'나 '댓글'을 받는 SNS 알림처럼 말이다. 조언이란 결국, 뇌의 자기 보상 체계를 만족시키는 행위일 수도 있다. 우리는 "너 잘됐으면 좋겠다"는 말 속에서, 어쩌면 "내가 너 잘되게 도와줬다"는 자기만족을 함께 얻는 것이다.



조언자에 대한 의심은 왜 생기는가?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세상은 쉽지 않다. 누군가 내게 잘해주면, 우리는 "이 사람이 나한테 뭘 얻어내려 하지?"라는 의심을 먼저 품는다. 이것은 현대 사회의 역설적인 생존 전략이다. 지나치게 많은 사기꾼과 위선자, 술수꾼들이 교묘하게 '도움'의 얼굴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도움과 조언이 사기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중 일부는 진심이다. 문제는 그 진심이 가려져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리는 주범은 다름 아닌, 조언을 받는 자의 열등감과 피해의식이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낄 때, 남의 조언은 불편하고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마치 내 인생을 침해하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자기 자존감이 아직 조언을 담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숟가락 얹기의 미학: 똑똑한 자를 옆에 두는 것의 위대함



이제 중요한 이야기를 하자. 항상 세상을 보는 눈이 부족하거나, 지식이 짧고 경험이 모자라면, 나보다 뛰어난 사람 곁에 붙는 것이 정답이다. 이른바 빈대 전략, 혹은 '숟가락 얹기'다. 이건 절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현실적이고 영리한 전략이다. 역사를 봐도 그렇다.

세종대왕은 수많은 학자들을 곁에 두었고,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이라는 천재 개발자에게 숟가락을 얹었다. 조선의 실학자들, 조선후기의 사상가들 역시 중국 고전을 파고들며 선진 문명의 숟가락을 얹었다. 창조는 어디서든 무에서 유로 탄생하지 않는다. 이미 잘하고 있는 사람에게 붙어서 그 에너지를 흡수하는 것, 그게 똑똑한 사람들의 방식이다.



"의심보다 관찰을, 방어보다 수용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누군가가 당신에게 조언을 한다. 그는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당신이 그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 사람은 당신이 절대 얻을 수 없었던 시각 하나를 선물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인생의 방향이 조금은 틀어질 수 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조언은 시간여행자의 말처럼 미래에서 온 힌트일 수도 있다.

조언을 무작정 믿으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조언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라는 것이다. 어떤 말은 감정 섞인 투정이고, 어떤 말은 진심 섞인 조명이다. 어떤 말은 의도 없는 습관이고, 어떤 말은 인생을 통째로 갈아 넣은 통찰이다. 이 모든 것을 분별하려면, 당신은 자기중심적 의심에서 벗어나 관찰자의 시선으로 나와 타인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입장이라면, 그러니깐 인생의 퍼즐 조각이 제대로 맞춰지지 않았다면, 자신을 낮추고, 배움을 청하고, 숟가락을 들고 잘난 사람 옆에 앉으라. 그게 가장 빠르고도 확실한 성공 루트다. 잘난 사람은 어차피 당신한테 얻을 게 없다. 그냥 인간애로, 심심해서, 혹은 자신의 지혜를 전하고 싶어서 말할 뿐이다.




"그러니 제발, 의심의 눈깔을 거두시라."







- dc official Ap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