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왜 우리를 가르치려 드는가"
1. 말이 너무 많아진 시대의 말장사들
지금은 ‘콘텐츠’라는 이름으로 말하는 자들이 넘쳐나는 시대다. 누구나 유튜브에 카메라를 켜고 마이크를 달고 세상을 설교할 수 있다. 특히, 한때 공부의 신, 서울대 간 전설, 노력의 아이콘이라 불렸던 이들이 카메라 앞에서 갑자기 ‘공부해도 소용없다’, ‘세상은 허무하다’, ‘열심히 살아도 안 된다’고 말하며, 세상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의 말에는 이상한 구석이 있다. 예전엔 성공을 외치더니, 이제는 실패와 허무를 권유한다. 전에는 피땀 흘린 노력을 예찬하더니, 이제는 무의미한 노동, 헛된 경쟁을 조롱한다. 바뀐 건 세상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다. 이 변화를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왜 그들은 말의 방향을 바꾸었는가?
2. 신념의 붕괴 – 서울대가 주지 못한 세계
그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은 대학을 간다. 좋은 대학을 가면 좋은 직장을 간다. 좋은 직장을 가면 좋은 인생을 산다.” 이 고전적 삼단 논법은 산업화 사회의 근간이었고, 그중 정점이 바로 서울대였다. 서울대는 단순한 대학이 아니었다. 그것은 구조의 상징이었고, 계급의 문이었으며, 삶의 방향을 보증해주는 여권이었다.
하지만 막상 서울대에 입학해 사회에 나와보니, 세계는 다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스타트업 하나로 억대를 벌어들이는 고졸 사업가, 카메라 앞에서 춤추는 유튜버가 월 수천을 벌고, 코인 한 방으로 평생 벌 돈을 만든 사람들이 즐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부를 죽어라 한 자신은 그 밑에서 월 200, 비정규직, 사회의 불안정한 바닥을 전전했다.
배신감이 들 수밖에 없다. 자신의 삶에 대한 근본적 부정이 일어난다. 더 끔찍한 건, 이 배신을 인정하지 못하는 자신이다. ‘내가 실패한 게 아니라, 세상이 잘못된 것이다’라고 되뇌는 순간, 사람은 철학자가 된다. 그것이 허무주의라는 탈을 쓴 자기 위안의 탄생이다.
3. 프로젝트된 열등감 – ‘현실을 직시하라’는 위선적 선언
‘공부해봤자 안 된다’는 그 말, 진짜는 이렇게 들린다.
“나는 공부 열심히 했는데 안 됐다. 너희도 해봤자 별 수 없다.”
이것은 교훈이 아니다. 설득이 아니다. 단지 투사(projection)다. 자신의 실패, 분노, 억울함, 수치심을 대중 위에 던지는 것이다. 그래야 자기 삶이 실패가 아닌 것으로 정당화된다. 그래서 그들은 공부하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스스로는 여전히 학벌을 팔고, 서울대 출신이라는 타이틀을 팔며 살아간다. 왜?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실을 직시하라’는 말은 결국 두 가지로 나뉜다.
자신이 현실을 이기지 못해 포기했으니, 너희도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패배를 가장 먼저 자각한 선지자이니, 나를 따르라.
이는 이중적이다. ‘허무’를 말하면서도, ‘그걸 먼저 깨달은 나’를 숭배하라는 역설. 이 모순적 태도는, 철학이 아니라 권력욕이다. ‘무의미’를 말하면서도, 그 무의미를 설파하는 나에게는 유의미한 권력을 부여해달라는 숨겨진 욕망이 있다.
4. 대중은 왜 이런 말에 열광하는가 – 위안과 자기 정당화의 공모 구조
그런데 문제는 그 말에 대중이 열광한다는 것이다. 왜? 사람들 역시 지쳐 있기 때문이다. 노력해도 안 되고, 최선을 다해도 인정받지 못하고, 일은 점점 불안정해지고, 집값은 오르고, 연애는커녕 인간관계조차 힘든 시대다. 그런 현실 속에서 누군가 “괜찮아, 너 탓 아니야. 원래 세상이 쓰레기야”라고 말해주면, 그것이 얼마나 큰 위안인가.
그래서 그들의 말은 위로가 된다. 그러나 그 위로는 책임의 전가이자, 고통의 재생산이다. ‘세상이 잘못됐다’고 외치는 순간, 개인은 자기 삶에 책임을 지지 않게 되고, 바뀌지 않을 운명처럼 자기 현실을 받아들인다. 위선적 지식인의 말은 그렇게 사람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 세상에 분노하게 만들고, 자기 삶에는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독성이다.
5. 말의 중독 – 유튜브의 지식 장사꾼이 되는 과정
이제 그들은 매일 유튜브에 수십 개의 쇼츠, 클립, 강연 영상을 올린다. ‘공부 안 해도 된다’, ‘모두가 무너지고 있다’, ‘노력의 신화는 끝났다’, ‘세상은 부조리하다’라는 내용을 말하면서도, 알고리즘에 맞춰 썸네일을 자극적으로 만들고, 편집에 효과음을 넣고, 조회수를 체크한다. 정말 허무주의자라면, 이런 ‘데이터 기반’ 콘텐츠를 이렇게 생산할 리 없다.
왜 이렇게까지 말해야만 하는가? 간단하다. 인정욕구다. 존재 증명이다. 떠들지 않으면 자신이 잊힐까 봐, 말하지 않으면 자신의 철학이 무너질까 봐, 그리고 무엇보다 ‘성공하지 못한 나’라는 실체가 드러날까 봐, 쉼 없이 떠들고 있다. 그렇게 그들은 ‘허무를 설교하면서 성공을 갈망하는 자’가 된다. 자기모순 그 자체다.
6. 진짜 철학은 말하지 않는다 – 고요의 지혜
정말 세상을 꿰뚫은 자는 사람 위에 서려 하지 않는다. 진짜 깨달음을 얻은 자는, 타인을 가르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깨달음이란 언제나 자기 자신의 몫이며, 타인에게 강요되는 순간 그것은 교훈이 아닌 독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도, 붓다도, 공자도 — 모두가 공통적으로 말한다.
“진리는 설명되지 않는다. 다만 존재할 뿐이다.”
너는 철학자가 아니다. 아직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한 자다. 고작 30~40년 살고, 아직도 세상에 미련을 가득 품은 자가, 무슨 권리로 세상을 가르치려 드는가? 너는 아무도 설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너는 아직 너 자신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7. 진심으로 묻는다 – 네 진짜 목적은 뭔가
"네가 진짜 원하는 건 뭔가?
"세상의 진실을 알리는 것?
"대중을 계몽하는 것?
"아니면, 박수와 구독자 수, 강연 수익, 광고료, 유명세?
나는 네가 진짜 바라는 게 있다면, 그것은 단 하나, **“다시 인정받는 것”**이라고 본다. 학창시절 성적표로, 서울대라는 간판으로 인정받던 시절의 쾌감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이제는 유튜브 알고리즘과 강연장에서 그 감정을 대신 충족시키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가짜다. 진짜 성공은 조용하다. 그리고 진짜 영향력은, 말보다 삶에서 나온다.
"니가 뭔데 우리를 가르치냐"
‘지식을 팔아서 부와 명예를 얻으려는 사람’과 ‘진짜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은 전혀 다르다. 겉보기엔 비슷해 보일 수 있다. 똑같이 카메라 앞에 앉고, 강연장을 채우고, 글을 쓰고 말을 한다. 하지만 그 동기와 목적에서 차이는 절대적으로 분명하다.
너는 끊임없이 ‘가르치려’ 든다. 그 말 속에는 늘 전제가 깔려 있다. “나는 너희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나는 세상을 깨우친 자다”, “그러니 너희는 내 말을 들어라.” 이건 교화가 아니라, 지식으로 포장된 권력 행사다. 그리고 나는 그 교묘한 위선을 누구보다 혐오한다.
너는 ‘허무주의’를 말하면서도, 허무하지 않다. 너는 ‘의미 없음’을 주장하면서도, 네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에는 ‘강한 의미 부여’가 담겨 있다. 그건 가짜다. 철저하게 자기기만이고, 자기불일치다.
니가 만약 정말로 인생이 허무하고, 세상이 무의미하고, 공부가 쓸모없다고 믿는다면, 왜 하루에도 수십 개씩 클립을 올리고, 왜 책을 쓰고, 왜 무대에 서고, 왜 구독자 수에 집착하나? 니 삶은 니가 하는 말과 완벽하게 충돌하고 있다.
그러니까 다시 묻는다.
"도대체 너는 누구냐.
"무엇을 믿는 사람이냐.
"너는 진짜로 사람들을 위하는 사람이냐, 아니면 그냥 너 자신을 위한 무대가 필요한 사람이냐.
나는 후자라고 확신한다. 왜냐면 네가 하루라도 '말 없이', '설명 없이', '조용히' 살아가는 모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너는 조용한 것을 견디지 못한다. 인정받지 못하는 것, 잊히는 것, 무시당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설명하고, 해명하고, 가르치고, 부르짖는다.
그렇게 말 많고, 말만 많은 자를 사람들은 이제 ‘지식인’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냥 ‘유튜버’라 부를 뿐이다.
"진짜 철학자처럼 살기 시작하라"
네가 정말로 깨어있는 사람이라면, 너의 첫 번째 과업은 ‘침묵’이어야 한다. 더 이상 사람들을 교화하려 들지 말고, 먼저 너 자신을 직면하라. 인정받고 싶은 너, 성공하고 싶은 너, 부와 명예와 이성을 원하는 너. 그 욕망 자체가 추한 게 아니라, 그것을 부정한 채 ‘나는 초월했다’는 위선이 추한 것이다.
진짜 깨어있는 사람은 이런 식으로 설교하지 않는다. 그는 타인의 삶을 재단하지 않으며, 자신의 기준을 만인의 기준이라 포장하지 않는다. 그는 알아도 모르는 척하고, 가르칠 수 있어도 침묵을 택한다. 왜냐면 삶은 말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각자의 맥락에서만 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너는 아직도 중간에 있다. 서울대라는 성취의 환상에 미련이 남아 있고, 그것이 무너진 현실에 분노하며, 동시에 그 과거의 명성과 현재의 허무를 동력 삼아 또 다른 명성을 만들고 있다. 그 자체가 이미 철저한 자기부정이다.
세상이 허무하다고 말하면서 너는 세상에서 가장 치열하게 성공을 좇고 있다. 그리고 그 모순을 위장하기 위해 사람들을 가르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제 안다.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니가 가장 성공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걸.
마지막으로
나는 너에게 분노하지 않는다. 오히려 동정한다. 왜냐면 너는 스스로 만든 신화 속에서, 가장 먼저 갇혀버린 사람이기 때문이다. 네가 만든 ‘성공=공부=서울대’라는 공식을 너는 누구보다도 철저히 믿었고, 그 공식이 무너진 후에도 그 잔해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니가 바뀐 게 아니라, 니 신념이 부서진 것이다. 지금의 너는, 그 무너진 신념 위에서 생존을 위해 말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네 말은 이미 공허하다. 왜냐면 니 삶이, 니 말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짜 지성은 그 삶 자체가 메시지다.
"그 침묵이, 그 태도가, 그 선택이.
"니가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게 진짜 영향력이다.
"그게 진짜 철학이다.
"그리고 그게, 니가 그토록 되고 싶었던 진짜 ‘성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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