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이의 착각"
무대는 모두에게 열려 있지 않다. 그리고 박수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무대에 오르지 않은 자가 무대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경기장 한 켠에서 공을 주워주는 사람이, 골을 넣은 선수의 경기 운영 방식을 평가할 수 있을까?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런 이들이 너무도 많다. 실력도 없고, 위치도 없고, 역할조차 조연에도 들지 못하는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목소리를 높이며 외친다: “이건 불공정하다”, “왜 나에게 기회는 없나.”
여기서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다. 세상은 너에게 기회를 약속한 적 없다.
기회란 애초에 평등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싸움이다. 경쟁이다. 결과다. 그 과정을 견디고 이겨낸 자에게만 주어진다. 반면, 자신의 무능과 무기력으로 인해 그 자리에 도달하지 못한 자는 그것에 대해 말할 자격도, 권리도 없다. 그런데도 종종,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자들이 세상 탓을 하며 말한다. "왜 나는 이 자리일까?" 그 물음은 자괴가 아니라 자기기만이다.
“파티는 메시나 호날두 보고 하라는 말이지, 볼보이 보고 하라고 한 적은 없다.”
이 말은 단순한 풍자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 구조의 본질을 찌른다.
파티는, 성과를 낸 자를 위해 존재한다.
그 무대는, 탁월함을 증명한 자가 오르는 곳이다.
명함 한 장에도 책임과 실적이 붙고, 그 이름의 무게는 돈과 권한으로 측정된다.
200억을 받는 사람은 그만큼의 책임과 압박, 그리고 실적을 감당한다.
200만 원을 받는 사람은 그만큼의 결정권, 발언권, 책임도 제한된다.
왜냐하면 세상은, 능력의 위계에 따라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이 서 있는 자리는 당신이 만든 것이다.
지금 당신이 받고 있는 대우는, 당신이 시장에서 평가받은 값이다.
많은 이들이 "기회조차 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허나 냉정하게 되묻자.
정말 그 기회를 원했는가? 아니면, 그 기회가 주는 결과만 원했던 것인가?
피와 땀과 절망과 실패 위에 쌓은 자리에, 정말 오르기 위한 투쟁을 했는가?
문을 두드리지도 않은 자가, 왜 문이 안 열리냐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볼보이는 ‘경기장 안’에 있기에 혼동한다. 나도 일부라고.
하지만 본질은 언제나 ‘중심’에 있다.
현대 사회 역시 그렇다. 어디 있느냐보다, 어떤 위치에서 있느냐가 중요하다.
당신이 있는 자리는 어디까지나 주변이고, 그 역할은 ‘공을 전달하는 것’뿐이다.
경기를 만들지 않고, 관중의 환호를 받지 않으며, 스코어에 기여하지도 않는다.
그저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존재하는 ‘기능적 장치’일 뿐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볼보이가 외친다.
“나도 저들처럼 인정받고 싶다. 나도 저들과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
이는 마치, 무대 뒤에서 마이크를 건네는 스텝이 “내가 진짜 가수였다”라고 외치는 것과 같다.
아니, 마이크를 닦던 사람이 음정 하나 낸 적 없이 음악을 평가하는 꼴이다.
웃긴 건, 그런 자들이 의외로 많고, 그 말에 동조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불평은 자격이 있는 자만이 해야 한다.
불평은 최소한 1.5군 정도는 되어야 설득력이 있다.
적어도 궤도 진입이라도 해보고 나서 이야기해야 한다.
경쟁의 링에 올라가보지도 않은 자가, 승패를 논하는 것은 모순이다.
실패해본 자만이 실패를 말할 수 있고, 노력한 자만이 세상의 냉정함을 고발할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가 던지는 불만은, 그냥 잡음이다.
그리고 이건 절대 잔혹한 말이 아니다.
이건 질서다.
질서가 없다면 모두가 아무 말이나 하게 되고, 결국 사회는 무너진다.
스포트라이트의 무게를 견딜 수 없는 자는, 조용히 조명을 바라보는 자리로 만족해야 한다.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면, 무대에 올라야 한다.
무대에 올라가고 싶다면, 경쟁을 견뎌야 한다.
견디고 싶다면, 우선 자기 위치를 인정해야 한다.
볼보이는 어디까지나 들러리다.
200만원짜리 월급을 받는 것은, 200억짜리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오히려 축복이다.
그 부담을 짊어질 능력도, 의지도 없는 자가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다행이다.
하수구에서 하늘을 논하지 마라.
하수구의 역할은 물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하늘은 땅 위에서 보는 것이고, 그 위로 올라가는 것은 선택받은 자들의 몫이다.
올라가고 싶다면, 밑바닥부터 싸워야 한다.
“이 위치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은, 노력의 총량이 부족하다는 뜻일 뿐이다.
이 세상엔 너 같은 인간이 50억 명 있다.
특별하지 않다. 독보적이지 않다.
당신이 지금까지 묻히고 살아온 이유는 세상이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현실을 인지한 자만이, 다음 단계를 밟을 수 있다.
기억해라.
볼보이로 기네스북에 오른다고 해도,
당신은 여전히 경기장을 청소하는 이름 모를 기능일 뿐이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세상은 잔혹하고 불공정하다.
하지만 그걸 감내하고 싸운 자만이, 무대 위에서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니 정신 차려라.
세상은 네게 박수칠 준비가 없다.
너는 박수를 받을 자격도, 내용을 말할 무게도 없는 상태다.
먼저 무대에 올라라. 그리고 살아남아라.
그 후에야 비로소, 말할 수 있다.
"나도 내가 하루 1000억은 벌 수 있는 사람인줄 알고 지금까지 달려왔다"
"근데, 내 주제는, 하루 100만원 버는 인간이었다"
"그래, 난 쥐새끼같은 씹새끼 하수구에서 찍찍거리는 개새끼 종자다"
"혀로 똥물을 핥아 먹으며, 빛을 향해 나도 언젠가는 메시나 호날두가 될 줄 알았다"
"이젠 깨달았다, 나는 한달 5000만원 버는게 한계인 것을"
"한달 200만원 버는 인간 백정들의 인생은 논외로 하자, 내가 개미나 바퀴벌레까지 신경쓰고 살아야하나?"
"나는 그래도 최소 궤도에 진입할려고 노력이라도 했지, 그들은 애초에 200따리 동사무소로 시작했다"
"그들이 행정고시를 도전했다면, 좀 달리 봐줄수도 있는데, 그들은 9급 똥무원을 택했다. 그래서 거절한다"
"애초에 나랑 겸상조차 안되는 인간 벌레들을 상대할 가치는 없다"
"쥐새끼보다 못한 생물들까지 신경쓸 에너지 자체가 없다, 알아서 해라, 뒤지든 말든"
"어제 40만원 벌어서 되게 의기소침해 졌었는데, 다행히 100만원 벌어줘서 역시 내 능력에 의심은 없다"
"나는 그래로, 내 나와바리 안에서는 언제나 최고다, 이건 확실하다"
"난, 주식 단타 전문가다, 누구도 나보다 잘하진 못한다"
"난, 주식 단타계의 호날두와 메시다, 그거면 된거다"
"오늘 목표 달성했으니, 존나 가뿐하게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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