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손으로 잡아야 살아있음을 느껴.]
똘망한 눈을 품고 다가오는 아기가 어미의 손을 움켜 잡아. 악력은 맥아리가 없지만 꿈쩍 못하지. 신체가 마비돼. 하지만 벅찬 가슴이 부르르 떨려. 자연스레 온 몸이 흔들리지. 죽어도 여한이 없어. 온 세상이 한 손가락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지. 아기가 잡는 힘이 이토록 커. 애기의 옷 소매가 팔목에서 팔꿈치로 가까워 질때 천방지축 꼬마가 놀고 있어. 뜀박질하다 넘어질 것 같으니 애비의 손을 낚아채. 그 고사리 같은 손이 잡아봐야 얼마나 세게 잡겠어. 그런데 묵직해. 아이가 보는 아버지의 모습이 이리도 크다는 걸 붙잡음으로써 알게 되지.
아이는 여러가지 모습이 있어. 장난감 가게만 가도 우리는 단번에 알아차리지. 그 곳은 우는 소리와 웃음 소리의 멋진 불협화음을 만들어 내고 있어. 정신 사납지만 나름대로 진귀한 광경이야. 작은 장난감 하나 지니고 오는 아이의 미소는 여지없이 사랑스러워. 세상을 다 가졌음을 확인할 수 있어. 보잘 것 없는 것에 큰 행복이 될 수 있지. 그러나 입꼬리가 올라간 아이의 뒤로는 처절하게 울고 있어. 부모의 바지 가락을 잡고 필사적으로 돌이키려 해. 얼마나 시끄러운지 꽹가리 저리가라 할 수준이야. 못이기는 부모도 많지만, "그래,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하는 부모도 많아. 하지만 잡아 당기는 그 변변치 않는 손길에서 믿음이 생기기도 하나 봐. 처절하고 간절하니 아이의 몸짓보다 더 큰 에너지를 분출하는 것을 보고 사람다움을 느끼는 거지. 간구하면 일어서 잡으려 하니깐. 꼬마의 살아갈 힘의 존재를 본거야. "간절하면 너도 헤쳐 나갈 수 있겠구나", 하고 말이야.
어느덧 아이의 옷장에 교복을 넣을 때가 돼, "어째, 이리 컸을까"하며 놀랍기도 하지만 징글맞는 구석은 어지간히 드러나. 학생은 이제 연필을 잡거나, 교재를 잡아. 붓을 움켜쥘 수도 있고, 악기를 들수도 있어. 공을 던지거나, 권투 글러브를 착용할 수도 있지.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허우적 거릴 수도 있고. 첨벙청벙하다 술담배와 도박이 걸릴 수 있는 거지. 그래도 끊임없이 잡으려고 해. 괴테는 파우스트를 집필하면서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다. 이게 내 길인지 아닌지 자신도 도통 모르는 와중 어쨋든 손을 뻗고 손가락을 오므려. 모래를 한 줌 크게 쥐고 마디 사이사이 모래는 밀려져 나오고. 실상 손바닥에 남는 건 수 십개의 모래알 뿐인데 말이야. 하지만 적어야 그 가치가 들어날 수 있나 봐. 우리는 흔히 말하잖아. "걱정은 할수록 는다", "생각도 많으면 독이다"라고. 물이 담긴 유리컵에서 파동하는 청량한 소리는 그 잔에 가득 담겼을 때가 아니야. 맑은 음색은 항상 약간 모자를 때 울려.
울림의 굴곡이 더욱 깊어졌을 때 어엿한 성인이 되지. 대학을 진학하여 새내기 생활을 맛볼 수 있어. 학기가 쌓이면서 로망은 줄어들겠지만 풋풋함은 여전해. 남자라면 바로 군대를 갈 수 있지. 청춘을 군대에 바치는 것, 갈 때는 소모적인 일이라며 사회비평가가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녀오면 왠지 모를 자부심이 생겨. 입대해서 총을 잡고 유격도 하고 행군도 하는데 말이야. 의미없고 고생스러워도 해냈다는 뿌듯함은 사라지지 않지. 그리고 청년이 되고 곧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 수 있어. 대학을 포기하고 일찍 기술을 배워 자리를 잡으려는 생각인 것 같아. 아니면 열심히 돈을 모아 사업을 할 수 있고. 예전과 다르게 더욱 잡애내려고 하지. 뭐든 말이야. 붙잡고 붙잡는 과정에서 달콤한 사랑을 잡을 수 있어. 얼마나 달달한지 계속 꼭 찍어 맛보고 싶은게 또 사랑아닐까. 손깍지를 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지. 온 힘을 다해 붙잡고 끌어 안으면 그것만큼 황홀한 게 어디겠어. 말도 말아야지.
하지만 이별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법인 것 같아. 뒤틀리면 그림자에게 잡아 먹혀. 자신의 손에 잡혔던 사랑스러운 온기가 저마치 떠나가지. 이제 붙잡히는 건 추억이 담긴 사진 뿐. 아픔을 망각하기 위해 부단히 무언가를 해. 꽉 잡고 놓지 않겠다라는 강한 의지가 서려 있지. 심지어 손에서 피가 떨어져도 말이야. 아픔은 큰 아픔으로 진정되는 건가봐. 어쩌면 가리고 싶은 은밀한 마음일 수 있고.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는 그런 비밀 같은 거지. 그러나 시간은 약이 되어주기도 해. 끝없는 미래가 현재가 되기 위해 밀려 들어오는데. 마구잡이로 잡지만 놓치는게 많아. 정신없이 두리번거리고, 떨어진 것을 줍으며 진땀흘리다 보니 어느새 배우자가 옆에 있고. 결혼행진곡과 함께 나란히 손을 포개고 걸어.
그 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부부 사이의 새 생명이 꿈틀거려. 태아가 우렁차게 메아리를 만들지. 산부인과를 들썩거리게 하지. 그러다 잠잠해지면 보이지 않던 조약돌같은 손들이 보여. 여리고 여린 손, 뭉치같아. 살포시 자신의 손을 주변을 포개보니 솜털들이 쭈뼛 세워져. 엄마의 손이, 아빠의 손이 울고 있는 거야. '왜 이제 왔냐'는 한탄과 '무사히 잘 왔구나'하는 안도 그리고 '드디어 너의 얼굴을 볼 수 있구나'하는 기쁨이 휘몰아치지. 아기는 굳게 닫은 눈꺼풀로 부모를 진정시켜줘. 깊은 공감이 일어날 때 그러잖아. 두 눈을 꼭 감고 심장의 파동만을 느끼지.
인큐베이터가 아기 침대로 변하면 초롱초롱한 눈으로 떠 있어. 엄마의 말을 유심히 듣기도 하고, 아빠의 행동에 궁금하고, 신기한 것에 집중도 해. 아기를 유심하게 보면서 각자 할 일도 끝내놓지. 간혹 애가 운다면 쏜살같이 달려가. 끌어다 안고 말똥같은 눈물을 손으로 잡아. 그리고 등을 쓸어주지. 그러다 아이가 힘차게 말을 하면 선물받은 아이처럼 뛰어가 꼭 껴안아. "그래, 내가 엄마야, 내가 아빠야"하면서 말이야. 영락없는 가족의 모습이야. 아기가 세상 진지하게 뒤집기를 시도할 때면 수차례 실패를 반복해. 부모는 아기의 손을 잡고 걸음마를 같이 연습하지. 나란히 손을 붙잡아주어야 혼자서 해낼 수 있나 봐.
벽에 그은 키를 체크하던 것이 날이 갈수록 올라가고. 어느새 소년소녀이 되지. 다치는 날도 많고, 속상이는 일도 많아. 아이는 부모를 곁에 두고 자전거를 탈 궁리를 해. 자전거 따위를 정복하겠다는 의지가 돋보이지만 불안한 기색은 어쩔 수 없나 봐. 반복적인 시도를 감행하지. 크게 다칠 것 같으면 잽싸게 뛰어가 자식을 잡아. 부모의 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나 봐. 이제는 자신이 자식의 교복을 옷장에 넣어줘. 전에는 내 옷장에 부모님이 걸어 두셨는데 말이야. 그리고 몇 푼 안되지만 용돈을 쥐어 줘서 학교에 보내. 가서 요깃거리는 하라고. 때로는 매를 들기도 해. 스스로 회의하면서 꾸증을 하지. "혼내야 해. 버릇 나쁘게 들어. 아니, 이게 맞는 방법일까? 모르겠어, 나도 정말."
얼굴의 부드러운 선들이 그어지면 녀석의 졸업장을 들어준 채 친구 놈과 사진을 찍어줘. 사진을 보니 희망차지만 구석에는 막막함이 기웃거려. 애써 아무말 안 해주지. 잔소리하듯 어떻게 살래,를 말하였지만 그 날 만큼은 말하진 않아. 지나가는 행인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하고 자식과 함께 나란히 손잡고 찍어. 약하디 약한 손들은 어디갔는지 모습이 보이질 않아. 성인의 손이, 이제 거칠어질 손만이 잡힐 뿐이야. 자식들과 술자리가 많아질 수록 이제 각자의 보금자리를 만들거나 찾으러 떠나. 그리고 돌아오면 손주 녀석들이 손을 내밀어 주지. 빈 손으로 돌아가게 하는 게 마음이 아파 오만원 권 지폐 한장 그리고 과자 한 봉지 건내 줘. 이제는 물질적인 것은 삶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지 않기에 다 전해주고 싶은 마음인 거야. 자신의 무릎에 앉히고 지난 세월에 관한 이야기도 해줘. 간혹 할아버지로써의 허세도 보여주며 으쓱대기도 하고, 아픈 허리도 잊은 채 목마도 태워주지. 죽어가는 사람의 손과 살아가야하는 자의 손이 만나는 지점이랄까.
그동안 삶을 동반한 배우자의 호흡이 꺼져가고 힘아리가 없는 손을 부둥켜 매만지고 있어. 세월의 흔적이 손 구석구석 검버섯으로 피어올랐지. 그을리 듯이 전부 물들면 영혼은 육체를 떠날 것 같아. 시야와 연결된 정신은 이제 하나둘씩 끊어지기 시작작하지. 마침내 차가운 손이 따듯한 손 위에 덮여져. 그 순간만큼은 신이 야속해. 그러나 빠르게 수긍할 수 밖에. 자연의 섭리는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깐. 연기가 훨훨 날아가고 지팡이로 의지하던 것도 힘에 부치면 몸은 말을 듣지 않아. 다만 마음은 아직 역동적이야. 신기해. 죽기 전에 여행이나 다녀와 볼까 해. 작은 백팩하나 매고 지팡이에 의지하면서 전국을 돌아보는 거지. 마음 가는대로 천천히 발을 이끌고, 조촐한 식사도 즐기며, 찜질방에서 쏟아지는 잠을 자. 금방 눈이 떠져 뭉친 몸을 뜨거운 탕에 풀어보고, 우연히 여행 중인 청년과 얘기를 나누고 다시 전주, 포항, 대전, 대구, 천안으로 숙소를 옮겨 가지.
끝난 여행은 사진 몇 장으로 간추려 져. 이미 사진첩에다가 보관해놓았어. 먼지가 살포시 얹어져 있는 채로 말이야. 이제는 밤이 되면 저승사자가 보인다고. 일찍 준비하라는 배려인가 싶지. 속으로 말을 걸어보는데, 이런 저런 삶을 살았다고 말이야. 저승사자는 귀찮으면서도 한 글자 한 글자 잘 들어줘. 이야기는 아직 한참 남았는데, 영혼을 붙잡고 있던 몸이 서서히 놓아주고 있어. 곧 무중력 상태처럼 붕 떠. 눈을 감았다 떠보니 익숙한 실루엣이 보여. 나의 어머님, 아버님이 내 앞에 계셔. 손을 다시 잡아주시지. 그 뒤로 배우자가 보여. 어김없이 손을 붙잡아주지. 그리고 이끌리듯 더욱 깊숙히 들어가보는데, 마침내 자신에게 악수를 건내는 무한한 존재를 보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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