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화가 향을 개방해서 억지로 관계까지 맺고 노팅까지 당했으니 카이가 임신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겠지. 카이는 낙태 시술을 알아보려고 산부인과에 갔는데 초음파때 아기 심장소리를 듣고는 죄는 카이는 눈물을 흘렸어. 작지만, 또렷하게 울려퍼지는 소리가 카이를 붙잡았어. 마치 유치원생 아이가 어른들 바짓자락을 붙잡는 것같았지. 카이는 아이를 낳기로 결심해. 병원에서 챙겨주는 산모수첩과 엽산제, 철분제를 받고 나왔지. 병원 앞을 나오니 매끈한 검은 세단이 서있었어. 앞에 서있던 검은 세단 뒷자석에서 낯익은 얼굴이 내려. 건화였지. 카이는 잠깐 그 모습에 흠칫했지만, 무시하고 지나가기로 해.


-선생님.


미쳤어. 대체 무슨 낯짝으로 저새끼가 여길 왔을까. 지금 제가 자기한테 어떤 감정이 있는지 알고나 있을까 몰라. 카이는 걸음을 빨리해. 한순간이라도 저 뻔뻔한 놈과 같은 공간에 있기 싫었어.


-왕카이.


건화가 팔을 뻗어 카이를 붙잡자 카이의 속에서 역겨움이 물밀리듯 올라와. 자길잡는 팔을 팍 쳐내. 한때 귀여운 제자라고 생각했던 아이는, 알파는 저를 울망한 눈으로 올려다봐. 정말 웃기지도 않아. 자길 그렇게 올려다보면 동정심이라도 생길줄 알았나봐. 건화는 가지말라는 눈으로 카이를 계속 봤지. 카이는 그 눈을 무시하고 돌아서. 왕카이, 왕카이! 뒤에서 자길 부르는 그 소리를 무시하고 카이는 택시를 잡고 집으로 갔지.




몇달 후, 배가 부르기 전에 카이는 학교에 퇴직계를 내. 주변 동료들이 모두 의외라는 듯이 카이를 붙잡고 무슨 일있냐 물어봐. 카이는 멋쩍은 웃음으로 집안사정 상 자기가 고향으로 내려가봐야할 것 같다고. 그래도 여긴 사립이니까 언제 다시 재취업할 수 있지않겠냐고 말해. 동료들은 고향으로 가도 연락은 해달라했지. 카이는 그 말을 끝으로 제 짐을 들고 교무실을 나섰어. 차에 자기 짐을 실고 학교를 나서. 백미러를 보니 건화가 자기를 뒤쫓아오고 있었어. 자길 부르는 듯이 계속 뭐라 소리쳐. 카이는 무시하고 정말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벗어나.



카이가 숨은 곳은 어느 시골도 아니고 해외도 아니고 대도시였지. 관광지로 유명한. 유동인구가 많은 도시라 자기가 알려주지 않는 이상 찾기 힘들거야. 중국인구가 자기마치 몇억인데.
카이는 난산이였어. 원체 마른 몸에 임신 중 오메가를 지탱해줘야하는 알파의 페로몬이 없었으니. 그나마 가장 친한 형인 근동한테는 자기 상황을 알렸겠지. 근동은 당장에 곽건화 그 놈을 족치겠다고 펄펄 뛰었지. 그러나 카이가 끝까지 뜯어말렸어. 내가 형한테 말한 이유는 그런 도움이 필요한 게 아니라, 다른 거라고. 우성알파인 근동한테 몇 주에 한 번, 아니 한 달에 한 번만이라도 자길 찾아와서 향만 개방시켜달라고. 근동은 제일 아끼는 동생이 그렇게 매달리니 어쩔 수 없이 몇 주에 한 번, 카이가 사는 곳으로 왔겠지. 올 때마다 아기용품이나, 카이가 입덧때 찾는 음식들을 가득 들고왔지. 안그래도 된다는 카이한테 근동은 선배가 주면 얌전히 받으라는 말로 일축했겠지. 카이는 그럴 때마다 근동한테 너무 감사했어.
카이가 아이를 낳을 때도, 급하게 달려온 것도 근동이였어. 고된 난산끝에 아기가 나오자 카이만큼 좋아해줬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기라고, 난산때문에 진이 빠진 카이에게 그렇게 말해줬지.



아이는 카이를 쏙 빼닮은 아들이였어. 아기 이름은 근동이 모든 사전을 뒤져가며 제일 귀한 이름을 지어주겠다고 난리쳤지. 물론 카이도 옆에서 같이 머리 싸매면서 아기 이름은 이게 어떠냐 저게 어떠냐 근동이랑 다투면서 아기 이름을 지어주겠지. 마침내 지은 이름은 청면이였어. 이제부터 네 이름은 청명이라고 말해주자 아기는 자기 이름이 마음에 든다는 듯이 빵싯 웃어줬지.


처음엔 혼자 아기를 키우는 게 힘들었어. 아기가 얼마나 기운넘치는지 새벽에도 울고, 아침에도 울고, 자는 시간이 없는 것같았어. 카이는 처음엔 산후우울증으로 아기가 보기 싫었어. 제 아비를 닮아서 나한테 저리 못되게 구나. 이런 말도 안되는 생각까지 했지. 그러나 청명은 점점 자라면서 답지않게 의젓한 아이로 자랐어. 저를 쏙 닮은 큰 눈망울로 아빠를 찾으며 달려올 땐, 진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였어. 가끔 건화의 성격이 보일때 흠칫했지만, 그래도 청명이는 너무 사랑스러웠어. 가끔씩 청명이한테서 건화의 모습이 겹쳐보이는 날에는 지독한 악몽을 꿨어. 자길 억지로 범하는 건화의 모습, 그 아래에서 야릇한 신음과 함께 허리를 돌리는 자신의 모습. 카이는 계속 청명이는 오롯이 자기 아이라고, 건화와는 상관없는 아이라고 생각해.


몇년 후, 청명이는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됐지. 청명이는 씩씩한 아이라 몇번 유치원에 데려다줬더니 이제는 저 스스로 갈 수 있다며 유치원 운행차량을 제 스스로 신청하고 왔지. 카이는 그런 청명이가 너무 대견했지.
그 날도, 청명이는 유치원에 갈 시간이 되자 다녀오겠다고 카이 볼에 뽀뽀를 하고 유치원에 갔지. 시간이 흘러 아이가 돌아올 시간이 됐는데 좀 늦는거야. 카이는 불안해서 유치원에 전화해보니 오늘 아이가 안왔다는 거야. 카이는 그자리에서 애가 유치원에 안왔으면 학부모한테 전화를 해봐야하는 거 아니냐고 유치원에 따졌지. 유치원과 통화에선 계속 죄송하다는 소리밖에 못들었어. 자기들도 백방으로 찾아보겠다면서 전화를 끊었지. 카이는 청명이가 누구한테 납치된 게 분명하다싶어 경찰에 전화를 걸려는 찰나, 초인종이 울렸지. 보통 청명이라면 제 스스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을거야. 그러나 카이는 지금 청명이가 사라졌다는 사실 하나에 그 것마저도 간과하고 현관문을 열었지. 청명? 청명이니? 카이가 벌컥 문을 열자 서있는 건 청명이 아니였어. 오히려 깔끔한 성인 남성이였지.


-왕카이.


청명이의 생물학적 아버지인 건화가 서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