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也(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 스승이 죽임을 당한 후제자들은 복수를 다짐하는데 그들은 각자 복수를 위해 고수의 가르침을 받으러 마을에 떠나거나 마을에 남아 복수 할 방법을 찾는 선택을 하게 된다. 복수의 길은 쉽지 않아서 대부분의 어떤 이는 시련을 이기지 못해 권력자의 부하가 되어 같이 악행을 하고, 어떤 이는 사람이 되길 포기하며, 어떤 이는 복수를 잊게 된다. 하지만 3명의 제자는 달랐다. 그들은 전부 마을을 떠난 제자들이었는데, 그들 또한 시련이 있었지만 고통과 풍랑을 끝까지 견뎌내 사람으로서 그리고 무인으로서 성장하게 된다. 여기서 작가는 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也, 추운 계절이 되어야 소나무, 잣나무의 지조있음을 알게된다. 즉 고통을 이겨내야 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대들은 지금 한여름 짙은 녹음(綠陰) 사이로 야광(夜光)나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있는가?
譬如爲山, 未成一簣, 止, 吾止也.(여위산, 미성일궤, 지, 오지야)
譬如平地, 雖覆一簣, 進, 吾往也.(비여평지, 수복일궤. 진, 오왕야)
하지만 협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제자들도 복수의 실행하기로 약속 한 날에 복수를 함께하게 된다. 그들은 복수에 많은 투자를 하지 않았기에 작은 도움밖에 줄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게 헛된 것이었는가? 아니다. 작가는 譬如爲山, 未成一簣, 止, 吾止也 譬如平地, 雖覆一簣, 進, 吾往也, 학문은 산을 만들다가 한 삼태기를 이루지 못하고 중지함도 내가 중지함이며 비유컨대 평지에 흙 한 삼태기를 쏟아 붇는 것도 (산을 만드는 일에) 나아감은 내가 나가는 것이다.즉 작지만 인의(仁義)를 행한다면 그 또한 진정한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것이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사람다움'이다.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 나는 작가가 우리에게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살아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주체(사람)-객체(사람)이 아닌 서로가 주체로서(행위자) 관계를 가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자본주의 사회는 어떠한가?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서 객체는 사람이 서비스라는 형태로 은밀하게 복속시켜버렸다. 이는 예전엔 사람이 객체로서 존재 했다면 지금은 도구처럼 존재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마치 이소설의 의종, 의원처럼 말이다.
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군자의 덕은 바람이요, 소인의 덕은 풀이다.’ 그러니 우리는 풀을 눕히기 위한 바람이 아닌 사부처럼 풀을 일으키기 위한 바람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112.162=121.175=59.21 촉산무새애.미 성병걸려보지썩어뒤짐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