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정은 그 장면에서 짧게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울기 시작했다. 미나의 시선이 빠르게 희정을 스친다.


화면이 바뀌면서 검은 배경에 숫자가 크게 나타났다. 디지털 시계였다. 처음에는 10분이였다가 곧 9:59로 떨어졌다.


"미영언니, 우리 저렇게 되는거에요?"


희정은 여전히 울고있었다. 미나는 입술을 지그시 물엇다.



"아니야. 그럴리 없어요. 하느님...."



"9분 30초 남았어요. 뭐라도 이야기 해야죠. 저사람이 바라는 것도 우리의 대화인것 같은데요"


강하게만 보이던 미나도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훌쩍이던 희정도 고개를 들었다.


"한명이 뛰어내리면 나머진 다 죽는데. 그러니까"


시계는 9분 15초를 가리키고있었다.


"뛰어 내리지마. 5분동안 버티고... 같이 살자. 죽으면 같이 죽고 알았지?"


희정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미나는 굳은 팔짱위로 찡그린다.


"이 애가 뛰어내리면요? 이애가 뛰어내리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거냐고요"


9분.....


"언니, 전 안뛰어내릴거에요"


미영은 잠시 가늘어진 희정의 눈빛을 기억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섬뜩한.... 아니 착각인가?


"전 안뛰어내려요. 언니, 정말이에요"


"그냥, 우리 뛰어내리지 않으면 돼. 뛰어내리지 말자"


뛰어내리지 말자고 하면서도 아이들이 자신의 말을 따라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대화의 끝은
하나인것이다.



"네 그래요 언니"


희정이 대답한다



"50%확률로 죽는다는데 안무서워?"



미나가 희정을 보며 말했다. 



"무서워요"
"혼자 뛰어내릴거지?"
"아니에요"


희정은 고개를 흔든다.


"내가 뛰어내리면 ....언니들 모두 죽잖아요."



숨구멍이 탁 막히는 느낌 미나의 표정도 굳었다. 죽음은 현실적이였고. 50%나 5%나 죽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100퍼신트인것이다. 잠시 흐른 침묵을 타고 시계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미나와 희정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따라간다.


정적을 깬건 희정이였다.



"나 무서워요 죽는것 싫어요"
"너나 뛰어내리지마 나도 무서워 하지만 미영언니 말대로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지. 안그래?"


미영은 약간 거친 말투의 미나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만약 희정이 미나 떄문에 마음이 변한다면?

손으로 희정의 어깨를 어루만졌고 미나에게 눈짓으로 그만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미나는 눈짓을 이해했고
시선을 다른곳으로 옮겼다.


"내가 할말은 그냥.... 혼자 사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거야. 난 친구들한테 너무 배신을 많이 당해서, 적어도 나는 배신하지
말자, 라고 마음먹었어. 살면서 하지 말아야 할 것 중에 하나가 배신하는 것 따위지."
"알았어요. 언니."



더이상의 대화는 불필요했다.


"미나야 너는 어떻게 잡혀왔니? 나는 친구들이랑 술을 먹다 봉고차가...."

미나는 힘겹게 고개를 저으며 말을 꺼냈다.

"나도 ..... 납치돼서 눈 떠보니 여긴걸요 뭐, 친구들이랑 지하철 구석에서 춤추다가 밤이 늦어서 오빠들이랑 집에 가는길에
뭐 그렇게 된거에요. 오빠들도....."


미나를 보는 희정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래서 너희 오빠들은 어떻게 됬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미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소리질러서 미안해요 언니. 다 목이 날라갔거나 했겠죠. 마음약한 오빠들이니까 뭐...그랬겠죠"




"저는 교회 수련회 갔다가 친구들이랑 잡혀왔어요"


말을 끝마치자마자 희정은 울기시작했다. 4분 10초 
혀로 입술을 적신다. 더이상 이야기해봤자 둘의 감정만 상할것이다. 그렇다고 웃고 떠들수도 없고...
상희가 있다면 좋았을 텐데, 상희는 살아있을까? 상희는 성격이 밝고 리더쉽이 좋으니까 잘 이끌었을건데...
조한석의 한마디가 기억속에서 스며나왔다.


'이미 5명으로 실험을 마쳤고, 4명으로도 실험을 마쳤습니다.'


혹시 어쩌면....


갑자기 울음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괜찮아요 언니. 우리모두 살아남을거에요"


1:00에서 소리가 찰칵하고 났다 59 58 .... 내가 뛰어내릴까? 동공이 아득해진다. 심장줄기를 타고 흐르는 피가 역겹다.

고개를 들고 미나를 바라본다



"너희를 살릴 수 있다면.... 내가 대신 죽을 수도 있는데...."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언니 그냥 5분만 서있으면 되요"
"우리 아무도 뛰어내리지 말아요. 꼭 같이 살아남죠."


"우리...같이.......살자"



겨우 한마디를 뱉어낸다.


시간이 0을 가리키고 시계밑의 문이 열린다.


복면 쓴 사람이 들어왔고 문쪽으로 이동하라고 손짓을 했다. 셋중 아무도 반응하지 않자. 몽둥이를 꺼냈다.
몽둥이는 강해보였고 우리를 움직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희정이 먼저 문으로 들어갔고 미나가 뒤따라 나갔다
미영은 비틀거리며 걷다 겨우 다리의 힘을 찾았다.


"같이 살자"


길은 좁고 어두웠다. 키가 큰 사람은 머리가 닿을것 같았다. 복면 쓴 사람은 플래시를 비추며 걸어갔고, 그 빛에 의지해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오래된 하수관 냄새가 났다. 희정의 재채기 소리에 놀라 몸을 움츠린다. 이미 죽은 몸인듯 
자신의 차가워진 피부를 매만진다.


잠시 후 쪼그려야 들어갈 수 있는 구멍으로 복면 쓴 남자가 기어들어갔다. 희정이 따라 들어갔고, 미나도 들어갔따.
목줄을 조정하는 기계의 일부분 같았다.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굽혀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환기통을 지나는 기분이었고
구멍을 둘러싼 철판을 통해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발바닥에 진동이 전해져왔고, 어꺠가 벽에 닿았을때 기분나쁜느낌이
뼈를 스쳤다. 뭔가 미끈미끈한 느낌....


길고 좁은, 그리고 어두운 구멍을 빠져나오자 방에서 보았던 사형대가 보였다. 복면을 쓴 남자는 그녀들의 목에 목줄을 
묶었고 조금있다가 방송이 흘러나왔다.



'10분동안 즐거운 대화를 나눴는지 모르겠네요. 어쩃든 여러분들의 대화는 좋은 데이타가 될것입니다. 침묵조차 데이터가되죠.
어차피 정신적인 문제는 개인마다 다르니까 언제나 우리가 얻는 결과는 천자만별입니다. 그래도 그속에서 공통점을 찾아
내는일은 더 없는 즐거움이죠. 즐거움을 선사하는데 동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길면 5분 짧으면 몇 초 안에 끝나는 실험이니
지루하진 않을겁니다. 그럼 곧 카운트를 시작하죠.'


고개를 돌렸다. 미나와 희정의 모습에서 마네킹 목떨어지는 장면이 떠올랐다. 뛰어내리면 살 수 있다. 그러나 미나와 희정의
목이 떨어진다. 오늘 처음본 아이들인데, 내가 희생할 필요가 있을까? 미영은 애써 표정을 감춘다. 내가 미쳤지....아이들을....



"힘내 미나야 희정아 착각하고 뛰어내리지 말고"
"착각.....이라뇨?"


"그냥 몸이 저려서 움직였는데...뛰어내린다고 생각하고......"
"알겠어요. 희정이 너 대답해"
"저 안뛰어내려요."


캐주얼하게 빼입은 남자친구가 나무밑에서 기다리고있다. 미영은 눈을 깜박였다 사형대 건너편에 마치
남자친구가 있는듯 했다. 이런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두려운 건 동생들도 같은 생각을 할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30 초 뒤에 5분 카운트를 시작합니다'

잡읍이 섞인 목소리가 어둠을 삼킨다


"얘들아 5분은 금방가 걱정하지말구"



다시 아이들을 바라본다. 두렵다기보다 비장한 느낌이 전해진다.


검은 얼룩이 시선을 잡았다. 아이들의 어깨 뒷부분이 아닌 자신의 어깨에 길게 묻어있다. 왜 얼룩이? 미영은 눈을
껌뻑거리며 목줄을 바라본다. 

분명 처음에 내옷에는 없던건데.....그럼 오는 도중에 묻은건가? 오는...도중? 어디지?


방으로 들어오는 작은 통로



미끈미끈한 느낌



그리고 아이들의 옷에 이미 묻어있던 얼룩



5명과 4명의 실험




신경을 뜯어내는 듯한 기분나쁜 예감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온다.




그 실험의 생존자들.....



'5분남았습니다' 라는 방송 소리와 함께 옆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 움직임이 무엇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미영은 자신의 목뼈가 으스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