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도 습관처럼 책을 펼쳤어. 집에 굴러다니는 것이었으니, 분명 유심히만 읽었더라면, 첫머리만 보고서도 제목이며 저자를 달달 외웠을 거야. 그런데 그만큼 낯익었어야함에도 불구하고, 문장들이 이상하리만치 낯설지 뭐니. 아니, 낯설다기보다도 유난히도 무심하게 느껴졌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거야. 평소와 달리 문장과 나 사이의 시선은 내 집 문턱을 밟고 선 이방인을 보기라도 하듯 더더욱 멀었어. 한데, 기묘한 일은 그에 그치지 않았지. 문장들이 점차 빵부스러기처럼 흩어지더니, 자모의 뭉텅이들이 새까맣게 춤을 추는 게 아니겠어?


 책장에 덕지덕지 발라진 기호들의 나열을 뚫어져라 노려보면서 나는 의아함에 웅얼거렸어. 이놈의 안경이 문제인가, 아니면 내 머리가 오늘만큼은 책을 거부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군. 의미가 읽히지 않는걸. 그러면 글이 다 무슨 소용인가. 책이 다 무어야.


 그래도 기왕 편 김에 조금만 더 집중해 보아보자. 요것이 기역, 조놈은 히읗. 건너편 것은 ‘ㅐ’와 ‘ㅢ’로구나. 아니, 아니지. 대체 난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거람? 자모를 화폭 위 붓질 더듬듯 감상이라도 하려는 것인가? ‘아, 그것 참, 시옷의 굴절각도는 참 우아하기도 하지요.’, ‘아뇨, 이응의 곡선미를 좀 보세요. 곡률의 아취를 폄하해서는 안 되죠.’


 이게 무슨 헛소리람. 지금 이 짓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이는 건 껍데기뿐인걸. 기역과 ‘ㅐ’가 더불어 지니는 의미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몰라도, 지금 내게는 말 그대로 기역, 그리고 ‘ㅐ’가 올곧이 보일 뿐이야. 그러고 보니 문득 떠오르는군. 어느 작가가 쓴 책이 있었는데, 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내내 가만히 있다간 온 몸에 먼지가 뒤덮일 것만 같아 얼마나 뒤치락거렸는지 몰라. 그야말로 텅텅 빈 주제에, 출입구 없이 꽉 틀어 막힌 무저갱 속에 들어앉은 기분이었거든. 그 책이 대체 어땠기에 그랬냐고? 아아, 작가 탓을 하면 안 돼. 그게 그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이었대.


 사실 거기에는 일말의 공포심이 도사리고 있었어. 책을 끝까지 읽은 뒤에도, 아무런 의미가 없으면 어떡하지, 싶었거든. 지금 이 순간처럼, 나는 분명 책을 보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읽히지 않는다면, 그게 나만의 문제라면 차라리 다행이겠지만, 모두가 그런 일을 겪는다면, 그러니까, 책이, 혹은 글이 온전히 의미를 잃어버릴 땐 어떡해야 하지?


 눈을 조금 더 크게 치켜뜨고, 책장 사부작거리는 소리조차에도 귀 기울이고, 목젖이 떨리도록 자모들을 소리 내어 읽어보면 무언가가 달라질까? 언젠가 그런 날이 정말로 도래한다면, 음표, 스타카토, 도돌이표가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든지 아주 흔한 기호로 쓰이거나, PB 3/10, GY 7/10과 같은 물감 기호들이 더욱 낯익은 표식이 될지도 모르겠어. 아무래도 우리는 틀에 박힌 기호 한 뭉텅이 없이는 도무지 안심하고 살아가기 힘든 신경질적인 존재들인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