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말랑말랑한 게 좋았다. 당시의 첨단이었던 변진섭 신해철 이문세 공일오비 푸른하늘 이승환 서태지 등을 좋아라 했다.

  그땐 왜 김광석이 그렇게 촌스럽게 느껴졌던지. 김현식은 동네 형 같아서 신비스런 연예인 느낌이 없었고 들국화는 멜로디가 단조롭기만하게 들렸다. 차라리 강수지가 훨씬 좋았다. 그 정도였으니 한대수 정태춘 윤복희 박인수의 노래는 거의 소음이라 여길 수밖에. 줄곧 그래 왔다.

  어제 서점에 들러 2차 세계대전사를 주문하면서 심심풀이로 보려고 산 책 한 권. 엠넷에서 대중가요 역사의 기념비적인 100곡을 선정해 간략한 설명을 달아놓은 책을 읽었다. 물론 다 아는 노래였다. 알지만 대개는 알기만 할 뿐 좋아했던 적은 없었던 노래들이었다. 차례로 해당 곡을 검색해 틀어놓고 책을 읽어 나갔다.

  왜 그랬을까.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를 듣는데 울컥했다.
그저 노래 못하는 가수로만 알았는데 그 기교없음과 어눌한 발음과 담백한 가사와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 숲인지 길인지 구분이 아슴한 동네 뒷산의 샛길같은 멜로디가 무장무장 가슴을 흔들었다. 정태춘의 대폿집 아저씨같은 중저음이며 윤복희의 술집 마담 같던 창법, 귀에 딱지 앉은 건전가요만 같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가곡인지 가요인지 구분이 안 가던 패티김의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이런 것들이 완전히 처음 접하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음담패설용 개사 버전으로만 기억에 박혀 있던 산울림의 아니 벌써가 이렇게 선구적이고 실험적이었음을, 진부한 유행가의 전형으로 여겼던 사랑과 평화의 한동안 뜸했어지에 담긴 연주가 이토록 세련되고 높은 수준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그저 촌스럽고 진부하고 지겹고 유치하게만 여겼던 것들이었다. 해서 세련되고 신선하고 고급하다고 여긴 팝송만 들었다. 요즘 말로 '미개하다'고 낙인 찍었던 70~80년대 한국 가요였다. 그게 갑자기 좋아지는 거다. 이유를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