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얼굴은 평소보다 약간더 상기되어있었다.

“벌써라니 지금 12시라고 내일부턴 학교도나가야되니깐 지금 자는게 좋아”

“그..그래도”

“응?뭐가?”“아니에요 먼저 씻고오세요”

그녀는 나와 눈도 마주치지않고 나를 욕실쪽으로 밀어당겼다.

“어련히 알아서 씻으려고”

“빨리 씻어요!”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는 그녀는 얼굴만 벌겋게 달아올라서는 나에게 어서 씻으라고 소리를 빽질렀다.

“알았어 씻으면 되잖아”

따뜻하게 내 온몸을 적시는물, 좁은 원룸의 화장실 겸 욕실의 작은 공간에 뿌연 수증기가 낀다. 물을 맞고 있자니 그간의 일이 머릿속에서 플래쉬백되온다.

그녀를 처음만난 날 처음 그녀의 어머니를 보고 질겁을 하고 쫒겨 났던 날, 그리고 말로 하지 않았지만 그녀와 함께 지냈던 날들, 전부다 천천히 머릿속에서 음미된다.

“잘 된거면 잘 된거겠지”

대답 따위는 들리지않고 그저 뜨거운 물이 내 몸을 때리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옷을 챙겨 입고 욕실에서 나와서 그녀를 불렀다.

“보은아 나 다 씻었다. 빨리 씻어 내일 늦잠자면 안되니깐”

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알았어요”

그녀는 내가 거실로 오자마자 후다닥 뛰어 들어가듯 욕실로 뛰어들어갔다.

“하아.. 피곤하다 피곤해”

나는 원룸 바닥에 이불을 깔았다.

“역시 두 개를 붙이면 싫어하겠지?”

예민한 10대 소녀다. 아무리 그래도 10살이상 차이나는 남자와 나란히 이불을 붙여 쓰는건 싫어 할것이 분명하다. 이어서 깔아 놓은 이불을 조금 거리를 두어 떨어뜨려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샤워실에서 걸어 나오고 거실의 이부자리를 보고는 잘 들리지도 않을 크기의 작은 탄식을 내뱉었다.

“아”

“응? 방금 뭐라고 했어?”“아니에요”

그리고 그녀는 한쪽 이불에 들어가서 누웠다.

자기전에 잠시 화장실이라도 다녀와야겠다.

화장실에 다녀왔더니 어느세 그녀는 이불에 파묻혀 얼굴만 내놓고 있었다.

두 이불이 나란히 붙어있다. 나는 괜시리 얼굴이 붉어 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미안하다. 가난한 월급쟁이라 원룸이 한계야 나중에 좋은 남자 만나서 방 많은 집으로 시집가라”

“자꾸 맘에도 없는 소리 할래요?”

사실이다. 그녀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다는 생각을 하면 아찔해 져오는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보다 11살이나 많은 사람이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 또한 내게 그런 감정이 있다 하더라도 분명 시간이 지나면 그녀는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날 것이고 또 내게서 벗어날 것이다. 나는 그저 그녀에게 지금은 좋아하는 사람 일지라도 나중에는 아버지가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가슴 한켠은 무언가로 푹 찌른듯 아파오긴했지만 말이다.

“자자 피곤하네”

나는 머쓱하게 방불 스위치를 눌러 끄며 말했다. 무진장 피곤한 하루였지만 방에 알 수 없는 긴장의 공기가 흘러서 그런 건지 모르지만 잠이 도무지 오질 않는다.

그녀 쪽을 돌아봤지만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다.

진정하자 내가 무슨 짓을 하려고 그녀를 우리집으로 끌어들인게 아니다. 나 역시 그녀를 좋아한다. 그녀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는게 아니다. 하지만 나는 참아야 한다. 그게 내가 그녀를 좋아할 수 있는 방법인 것이라고 선을 그어야한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긴장이란 것도 옅어지고 슬슬 잠이 올때 쯤 내 가슴팍에 느껴지는 육중한 무게감에 잠에 빠지려던 정신지 다시 들어왔다.

가위에 눌린 건가? 하지만 가위치고는 이 무게감은 기현상적인 것이 아닌 실체하는 무게같았다.

나는 반쯤 감겨 잇는 눈을 떠서 내 가슴팍에 올라와있는 물체를 확인했다.

어두운 방안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내 가슴팍을 누르고 올라앉아있는 형상의 주인은 그녀다.

“보은이?”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뭐하는 거야 무거워 내려와”

나는 내 위에 올라앉아있는 그녀의 팔을 잡아 옆으로 내려놓으려고 했지만 그녀의 옆구리를 잡는순간 포기하고 말았다.

느껴져야할 잠옷의 갑촉이 느껴지지않았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체온 천의 감촉은없고 손바닥과 그녀의 맨살이 맞닿았다.

“우..우왓!”

그녀의 옆구리에 손을 잠시 얹었을뿐이었는데 손끝에서 그녀의 뜨거운 체온이 느껴졌다.

“너 이게 뭐하는거야!”그녀는 내위에서 고개를 내려서 그녀의 얼굴을 내 얼굴에 거의 맞닿을 정도로 내렸다.

“조용히 해요.. 나.. 나도 부끄러워 죽을것같으니깐”“그러니깐 이게 도데체”그녀는 내말을 무시하고 잠옷의 단추를 풀어내려갔다.

작고 여린 손은 끊임없이 떨리고있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된다. 분명히 잘못된것이다.

나는 누운체로 내 위에 오른 그녀의 손을 잡아채고 말햇다.

“그만해 보은아, 이러려고 난 너를 집에 대리고 온게 아니야”말에는 그녀에대한 일말의 실망과 조금의 원망이 들어있었다. 첫날부터 이런식으로 그녀가 나를 대한다면 누가봐도 내가 이상한짓을 하려고 그녀를 우리집으로 데려왔다고 생각할것이 뻔하지않은가, 난 단지 그녀와 헤어지기 싫었을뿐이다.

“나..나도 알고있어요.. 근데 이렇게라도 안하면.. 안하면 불안해요”

“뭐?”그녀의 얼굴은 분명히 어둠 때문에 가려서 보이진 않았지만 울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뭐..뭐가 불안한건데.. 이런 짓까지”

“그야...이렇게라도 안 해놓으면 선생님이 언제 가버릴지 모르잖아요”

“무슨소리야”“선생님은 아직 젊고 능력도 있고 그러니깐 언제든 나말고 다른사람 많으니깐 그러니깐..”

아 그런거였다.

이 아이는 불안했던 것이다.

내가 자기 말고 다른 사람을 더 좋아하게 될까봐 불안해했던 것이다.

내옆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아있는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어 앉는다.

그리고 그녀를 꽉껴안는다.

“내가 너 왜 데리고 왔는지 벌써 잊어버린거야?”

그녀는 아무말도 없이 내 포옹에 화답해 나를 같이 껴안았다.

“아무한테도 가지 않을게 걱정 하지마”

그녀의 떨리던 어깨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이제 됐지?”그녀는 조용히 내품에서 새근거리는 소리를 규칙적으로 내고 있었다. 며칠을 잠을 자는둥 마는둥하며 빈소를 지킨 그녀다. 피곤함이 극에 달했을터이다. 이잠깐세에 잠드는 것도 이해가 간다.

“선생님 안타십니까?”

굵직한 남자 목소리, 그리고 따라오는 덜덜대는 커다란 버스 엔진소리와 매케한 매연냄세 학교로 향하는 버스가 내앞에 서있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더니 벌써 버스정류장에 도착하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것 같았다.

“아, 죄송합니다. 탈게요”

버스안은 참으로 많은 인간군상의 장이다. 밤새 뭐를 했는지 헤드폰을 끼고 창가에 주기적으로 머리를 부딪치며 조는 녀석, 아침부터 휴태폰에 볼게 뭐그리 많은지 눈이 빠져라 휴대폰을 들여다 보고있는 녀석, 뒷자리에서 재잘대며 기분좋은 목소리로 떠들고 있는 한무리의 여학생들까지 이 모든 것들이 과거에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세계였다.

역시나, 재잘대는 뒷자리를 쳐다보니 그녀가 앉아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는 중이였다. 일부러 친구와 같은 정류장에서 타기위해 일찍 집을 나서서 옆정거장까지 걸어가는 수고를 하면서까지 친구와 같이 가다니, 나로썬 조금 이해 범위 밖이지만 그녀가 좋다니 말릴 생각은 없다. 그녀를 보고 살짝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여전히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느라 내쪽은 보지 못하고 있다.

부우웅___

핸드폰이 울렸다.

[느끼하게 웃지마세요. 변태같아]

그녀가 보낸 메시지다. 친구들과 이야기 하며 동시에 문자까지 하다니 대단한 능력이다.

문자를 확인하고 조금 얄궂은 맘이 들어 그녀를 한번 더 쳐다 봤더니 이번엔 그녀가 주변 친구들 모르게 나를 보며 씨익 한번 웃어주었다.

불과 몇 달전까지만해도 벽을 쌓고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았던 그녀가 이렇게 변할 줄은 같은 교무실에서 근무하는 도덕선생님도 모를 일이었을 것이다.

둘이 함께한 겨울은 무척이나 추웠지만 따뜻했고 봄이 찾아왔다. 그녀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고 나는 29살이 되었다. 그녀는 웃을줄 알게되었고 나는 가족을 만드는 법을 알게 되었다.

정말이지 행복해서 기지게를 키고싶은 봄날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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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길어서 글이 다 안올라 갈줄은 몰랐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