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덫
내가 아스라하게 부서진 꿈을 꾼 것은 절대 그 때의 기억 때문이 아니다. 꿈에서 깨자마자 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침대 위가 흥건히 젖어 있어서 그것이 단순히 허황된 망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창문 너머로 흰 풍경이 아지랑이처럼 밀려 들어왔다. 나는 추위보다 먼저 밀려들은 공포에 못 이겨 부들부들 떨며 주방으로 향했다. 벌컥 벌컥 물을 마셔도 속은 진정되지 않았다. 채 물이 위에도 닿기 전에 다시 후다닥 방으로 올라왔다. 그러곤 이불을 얼굴까지 덮은 채 누웠다. ‘그 무엇보다도 생생하다. 어제의 일 보다도 방금 꿈이 더 현실 같았다.’ 나는 이불에 패여 있는 바느질 선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이었을 뿐, 그것의 상은 뇌로 채 들어오지 못했다. 그때 사건의 추억이, 정말 막고 싶었지만, 망각의 구덩이로부터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다시 잠을 청하려 눈을 감았지만, 또렷한 추억의 구절들이 대신 몰려온 것이다. 옆에서 아내의 색색대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아내가 깨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 반대 상황이었다면 내 사인은 심장마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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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훈아! 엄마가 흘리고 먹지 말랬잖아! 이리와 봐, 닦아줄게.”
패스트푸드 점에서 자식의 식사 습관을 꾸짖고 있는 젊은 엄마를 보고 있자니, 아릿함과 헛웃음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아기는 엄마가 입을 거칠게 닦자 입술을 배배 꼬았다. 가만, 내가 당시에 결혼해서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면, 저만한 귀여운 애가 있었겠구나. 난 치즈버거의 양배추를 걸러내고는, 다시 아기를 보았다. 이번에 아기는 초콜릿을 볼에 한 가득 묻혀서, 엄마에게 혼날까 굉장히 두려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역시나 엄마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나는 그 광경이 낯설지 않았다. 한참을 어깨너머로 바라보다가 감자튀김을 마저 다 먹고 가게를 나왔다.
늦은 아침 길거리는 시간에 매질당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햇살은 애꿎은 사람들의 얼굴과 목을 태우고 있었다. 나도 태워지고 있었다. 가게 안의 에어컨 바람 냄새에 익숙해져서, 후끈한 여름 공기가 불쾌했다. 늦여름의 늦은 아침에 우는 매미들은 17년 동안의 고난의 행로를 보상받으려 열심히 울어댔다. 어디서 울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떼창이 꽤나 시끄러워 나는 그곳을 황급히 떴다. 몇 걸음 옮기지 않았는데 피부에서 땀이 몽글 솟아올랐다. 눈앞은 아스팔트에서 반사된 햇빛으로 거무죽죽해졌다. 26년을 겪어온 여름(사실 내가 여름이란 걸 알아차린 때는 6살이었기에, 20년이라고 정정하겠다)은 또 자비 없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직장 앞에 도착하니 회전문 옆에서 사람들이 떼 지어 모여 있었다.
임금 인상 촉구라는 플랜 카드를 저마다 들고 있었다. 머리가 특이하게 벗겨진 회사원이 땀을 뻘뻘 흘리며 뭐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 외침에 다시 사람들이 구호를 부르짖었다. 나는 관습적으로 그 장면을 바라보며 지나쳤다. 그 바람에 바로 앞에 천천히 도는 회전문에 이마를 부딪칠 뻔 했다. 회사 로비는 에어컨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이 곳까지는 후끈댐이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일하는 지하 3층의 사무실에 진입하자, 에어컨 바람이 엘리베이터 앞까지 마중을 나와 주었다. 지하 3층의 분위기는 참으로 독특했다. 형식적이고 무미건조한 여느 회사들의 디자인과는 달랐다. 마치 2030년 즈음의 로봇제조업체 공장으로 견학을 온 것 같았다. 전등은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았는데, 나는 그게 너무 좋았다. 바닥에서부터 천장까지 온통 알루미늄과 탄소 나노 튜브 재질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은은한 페로몬 향수 같은 것이 어디선가 풍겨져 왔다. 오늘로 이 회사에 취직한 지 나흘째지만, 첫날의 신선한 충격이 좀 더 증폭되어 찾아왔다. 내 사무실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무실도 다 불이 꺼져 있었다. 분위기만 조금 더 평범했으면 보통의 귀여운 컨셉트 직장이라고 생각될 지도 모른다. 아니, 그저 거대 기업 본사로 견학 온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 든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독특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과장 격 되는 우리 회사만의 독특한 직급인 “방구”라고 쓰인 명찰을 달고 가고 있는 여사원을 만났다. 그녀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사회에서 인식되는 일반적 여성상을 가지고 있는 곳이 없었다. 호리한 턱 선과 긴 속눈썹으로 그녀가 여자인 것은 지레짐작할 수 있었다. 허나 그녀는 그런 상식이 통하지 ‘못했다‘. 머리는 코발트색으로 염색했고, 이상한 만화 캐릭터가 촘촘히 박힌 노란색 민소매 티셔츠를 걸치고 있었다. 겨드랑이 쪽이 어찌나 파였는지 그녀의 가슴 벨트가 훤히 드러나 보였다. 그녀가 빨간 색으로 염색한 이빨을 내게 들이밀며 말했다. “밥은 먹고 왔나?” “예, 방금 먹고 왔습니다. 하하... 방구님도 식사하러 가시는 건가요?” 그녀는 다시 고개를 뒤로 빼더니 나를 위아래로 살짝 훑었다. 그러곤 고개를 끄덕이고, “언제 한 번 같이 먹으러 가지.” 라며 느끼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나는 얼른 내 사무실로 들어왔다. 내 사무실만은 그래도 사람냄새가 났으면 하는 마음에, 꽤나 어지럽혀진 처음 상태를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나한테 인간적인 것은 카오스였다). 세계에서 거의 최고로 으뜸가는 혼야 흥신소의 넘버원 직원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함박 미소가 매력적인 내 사진도 액자에 걸어 놓았다. 나는 유쾌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만년필을 들고 종이에 뭐라도 적어 보았다. ‘어제 왔던 일본인 부부에 관한 이야기’를 브레인스토밍 형식으로 펼쳐 나갔다. 결국 그들은 현재까지도 모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아니면 턱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아저씨 일화는? 그 일화는 다시는 생각하고 싶진 않았기에 모퉁이에 흘겨 썼다.
이 흥신소는 지하 3층의 찾기 힘든 곳에 위치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고객들은 꽤나 많은 편이었다. 서울 한복판에 위치해 있는 이유일까, 지나가던 회사원들이 층별 안내판에 쓰인 ‘b3-혼야’라는 것에 관심이 끌린 이유일까? 일반 회사의 부장 급이라 할 수 있는 ‘설사’가 저번 아침 체조시간에 연설하길, 우리 흥신소는 예상외로 꽤나 깊은 전통을 자랑한다는 것이었다. 그 전통이 약 20년 동안 이어져 내려와 지금처럼 단골 고객도 많고 입소문이 자자하다고 한다. 노태우가 범죄척결을 외치며 대동단결해 조직폭력배들을 물색했고, 그 중 선량한 일부가 지금의 청진동 인근에 이 흥신소를 세웠다. 초기엔 그들의 무서운 인상에, 의뢰를 하러 왔다가도 의뢰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다 돌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얼굴 없는 상담사격으로, 정식 직원들을 채용해서, 현재 3000명이 넘는 사건을 해결했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까지 믿을 만 한가는 아직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다. 나는 다시 사무실 밖으로 나와 복도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역대 ‘항문’(사장이다)들의 초상이 담긴 액자가 고풍스럽게 죽 이어져 있었다. 그들의 흉악하고 널따란 인상은 복도의 미래지향적 스타일과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다. 또한 그들을 보니, 직급의 이름들(심지어 성기 이름도 있었다)의 기괴함이 이해가 갔다. 주로 일상에 무료함과 혐오감을 느낀 소위 ‘천재’들이, 장벽 없고 아이디어를 마구 쏟아낼 수 있는 이 흥신소로 몰려와, 회사를 전반적으로 ‘퓨처리스틱’하게 개조했다고 한다. 영화에서나 봤던 붉은 발광 다이오드 형광등이 주기적 패턴을 가지며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했다. 곧 있으면 점심 체조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에, 나는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 현미녹차를 달여 마셨다. 바깥 현실 세계를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라 각별히 신경 써서 홀짝댔다.
점심 체조 시간이 끝나고, 뻐근해진 사타구니 쪽을 문지르며 해결 사건들에 대한 문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갑자기 책상 한 쪽에서 검은 색 벨벳 리본을 맨 로봇 토끼가 깜짝 놀랄 정도로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그 토끼에게 경고 식으로 손가락을 들어 올려 보았다(욕은 하지 않았다). 토끼는 ‘25번 사무실 강동혁 님, 업무 도착 예정입니다’ 라고 두 번 까랑까랑하게 외쳤다. 나는 갑자기 긴장이 되어 검은콩 달인 물로 입을 축였다. 그리고는 깍지를 낀 채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문 앞에서 서성이며 준비한 멘트를 다시 곱씹어 보고 있었다. 드디어 손님이 문 앞에 도착하자 자동문이 위로 젖혀졌다. 나는 ‘어서오십시오, 혼야의 강동혁 트름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명량하게 말했지만, 의뢰인은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나를 무시한 채 거만하게 들어왔다. 나이는 20대 중반으로 보였고, 옷과 화장과 머리모양의 매무새를 보아서 커리어우먼인 것 같았다.
“사무실이 조금, 덥네요?”
여자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저는 원래 에어컨 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에어컨을 쐬면 면역력이 낮아지고, 냉방병에 걸리기 때문에 보통이면 창문을 열어놓고 자연풍을 맞겠지만, 여기는 지하라, 선풍기를 쐬고 있습니다!”
나는 긴장한 나머지 에어컨 리모콘을 찾으며 횡설수설했다. 여자는 나를 찬찬히 살피는 눈치였다. 그러고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책상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꽤나 귀여우신 분이네요. 반가워요, 김한뜻 이에요. 여러모로 여기 계신 그 뭐더라, 자기 말로는 장목환 ‘설사’ 라고 하던데, 풉..”
갑자기 여자가 실소를 터뜨려 대화가 중단되었다.
“장목환 ‘설사’ 풉... 그 분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로비 안내원이 당신이 꽤나 믿을 만한 인재라고 하던데, 어째 관상을 보니 이 일보다는 좀 더 안전하고 안락한 직업을 가지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싶네..”
여자는 내가 권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녹차 티백을 꺼냈다. 나는 살짝 무례함을 느꼈지만 참고 답을 해 주었다.
“인간이란 본디 원하지 않는 것을 해 나가는 존재지 않습니까. 저는 항상 제가 원하지 않는 일들을 골라서 해 왔습니다. 이유는 간단하죠. 제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었거든요. 자신이 원하는 일만 골라서 해 가면 얼마나 후회막심한 인생을 살게 되겠습니까. 거기에 안주하여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게 될 테니 말이죠. 저는 그러한 인간상을 증오합니다.”
나는 궤변가라도 된 것처럼 장황히 말을 늘어놨다. 그녀는 호탕하게 깔깔댔다. 그녀가 고개를 들며 웃자, 성대 부근에 난 상처가 선명히 보였다. 길이가 4cm는 되어 보였다. 날카로운 물체에 강하게 스크래치를 당했는지 너무나도 또렷하고 분명해 보였다.
“꽤나 철학적이시네요. 머리도 비상해 보이고 인물도 훤칠하니 첫인상에서는 나한테 마음에 들었어요. 축하해요. 얼마나 똑똑하고 관찰력이 있는지 볼까? 가만있어 보자, 내가 어디 사는지 맞춰 봐요.”
그녀는 나를 지긋이 응시하며 손가락으로 책상을 번갈아 두드렸다. 마치 수수께끼를 내고 내 반응을 확인하는 우리 할머니가 생각났다.
“혹시, 용산 사시나요?”
난 정감 있는 말투와 포기했다는 식의 말투를 뒤섞어서 질문했다. 그녀의 돌발적 질문에 나는 오기가 생기기도 했지만, 그것을 맞출 확률이 극히 적다는 것을 알기에 답에 대한 큰 기대는 걸지 않았다. 단지 틀린다면, 그녀의 호감을 얻는 과정에서 조금 삐끗한 것 뿐이다.
“
괜스레 시적 어감을 보이려고 애쓴 흔적이 많은데 오히려 '소설' 을 읽는다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쥐어 짜내는 에세이 수필을 읽는 듯 하여 재미도 없고 흥미도 떨어지고, 가독성과 흡입력도 현저히 떨어뜨림
ㄴ븅신이 한 평가라 가뿐히 팻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