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친척 어르신 발인이 있었다. 꽤 오랜 지병이 있으셨으나 다행스럽게도 비교적 모진 병마에 시달리시지는 않고 가셨다. 호상이라 할 만했다.    

  평생 종교와는 담을 쌓은 채 술담배를 신앙했던 분이시나, 몇 해 전부터 교회를 다니셨다. 상을 치르는 동안 교회 사람들이 찾아와 예배를 드리곤 했다. 남과 다름 없는 이를 위해 자신들의 귀중한 시간을 내어 애도를 해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나는 문갤 이전에 무신론 갤러리에서도 활동했던 바 기독교, 특히나 개신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진심으로 그들의 예배를 고맙게 여겼고 예를 다해 대했다.

  그러나 오늘 아침 나는 그들로 인해 무진장 화가 났다. 고인과 가족의 뜻으로 기독교 장으로 치루어졌으니 발인에 앞서 예배가 진행됐다. 목사는 예배 시작 전에는 직계가족 이외의 추도를 막았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목사가 예배 시작을 알리자 머뭇거리던 일반 유족들을 뒤로 한 채 교회 사람들이 발인실을 빠르게 매웠다.

  곧이어 목사의 추도문 낭송과 찬송가 가창이 울렸다. 찬송가가 끝나면 성경 구절을 인용한 또 다른 추도문과 또 다른 찬송가가 이어졌다. 세 번 정도 반복되었던 것 같다.

  발인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발인실 밖 복도엔 비개신교 유족 10여 명이 예배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고인의 사촌형님이라는 분도 계셨는데 소식을 듣고 가장 일찍 빈소를 찾으신 분이셨다. 영정 앞에서 이틀 밤을 새시고 고인의 마지막 가시는 길 손을 잡아볼 수는 없지만 관뚜껑이나마 쓸어보고 싶노라고 충혈된 눈으로 기다리고 계셨다. 다들 그런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예배를 마치겠다는 목사의 선언이 있고 기다리던 유족들이 엉거주춤 발인실 안으로 들어서려는데..목사는 관을 운구차에 싣도록 했다. 모두가 교인으로 구성된 사람들이 관을 들고 일어섰다. 마치 틈입을 막으려는 듯 목사가 선창하자 교인들이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예배를 마친 짧은 사이 헌화를 해보려고 발인실에 들어가신 어머니는 마치 스크럼을 짜듯 관을 둘러싼 교인들 주위를 서성이다 꽃 송이들을 교인들에게 나누어주곤 쫓기듯 나오셨다. 그곳의 누구보다 고인과 가까웠던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본 다른 유족들은 들어가길 꺼리는 눈치였다. 그렇게 교인들 손에 들린 관은 병풍처럼 늘어선 유족들 곁을 스쳐갈 뿐이었다.

  어머니는 화가 솟구친 나를 말리셨다. 중환자실에 누워 계실 때 그저 손만 잡아드렸을 뿐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했는데 그냥 이렇게 보내는구나. 눈물이 났다. 고인의 떠남으로 인한 슬픔에 더해 통제되고 배제되는 듯한 묘한 분위기가 서러웠다.

  야훼를 섬기면 이래도 되는 것인가. 질투의 화신을 섬기는 작자들이라서 다른 유족들을 배제하고 애도를 독점하는 것인가. 자신들의 행동이 얼마나 폭력적었는지 모른 채 그들은 위선에 가득 찬 안도감을 느꼈으리라. 예수만 믿으면 모든 게 용서된다니 양심의 가책 따윈 그들에게 사치이리라.

  관이 운구차에 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목사는 마지막 떠나는 고인보다는 야훼와 예수 이름을 외치기에 바빴고 전염병처럼 찬송가 소리가 스멀스멀 번지고 있었다.

  문득 무신론 갤러리에서 한 기독교인이 던진 질문이 떠올랐다.

  만약 당신들이 죽어서 사후세계에 갔더니 하나님이 계서서 그분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고 가정합시다. 그분이 \"내가 그동안 내 종들을 시켜서 수많은 교회를 짓고 복음을 전하도록 했는데 너는 왜 나를 믿지 않았느냐?\"고 물으시면 뭐라 대답하실 겁니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지전능하신 신이시여, 몰라서 물으신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