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면 난 늘 두렵다.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혹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두렵다. 그것은 언제나 내가 바라는 모양으로 이루어지고, 오늘이 아닌 내일에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건 지금 우리 곁에 있다. 희망이란 아이러니하다. 그건 지금이면서도 미래이고, 지금이 아니면서도 동시에 미래도 아닌 것이다.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다. 마치 살 찐 여자가 하루에 여덟번 소변을 누는 것과 같다. 방광 속에 있는 걸 비워낸다고 살이 빠지겠는가? 그 희망 속에는 비계가 가득하지만 결코 무로는 환원되지 않는 지방덩어리이다. 희망은 의도적 왜곡이다. 늘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여덟번 소변을 눈 여자는 "아, 오늘 2키로가 빠졌네!" 살이 빠졌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지진 같은 변화의 근원지는 언제나 표면에서 먼 법이다. 구름이 지나간 곳은 길이 아니었지만 구름의 길이 되고, 개미가 지나간 곳은 길이 아니었지만 개미의 길이 된다. 희망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같다. 나는 없는 신을 만들어낸다.
빼빼로데이다!
두려운데 곁에 있고 있지만 없는 아이러니, 왜곡되어 착각하고 길이 아닌데 길이 되며 없는 신을 숭배하는 희망에 제목은 장애인 고백...
이건 전문가다운 솜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