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멋지고 이쁜 두 남녀가 서로를 알아가다가 사랑에 빠지고
여러가지 시련을 함께 해쳐나가며 종국에는 서로 키스하는 장면이 많이 있는데요
그 어린 나이에도 키스가 사랑의 마지막은 아님을 알고 있었나 봄니다
남녀간의 사랑 그 마지막에 섹스가 있다는 착각은
저에게 사랑에 대한 섹스의 환상을 생기게 하기 충분했읍니다
시간이 지나 여자친구도 만나고 관계도 하면서 그런 환상은 조금씩 사라져 갔지만
제 무의식 안에는 아직도 그런 종류의 환상이 남아있나 봄니다
슬라보예 지젝 선생님의 유명한 한 구절이 있죠
프로이트의 아이는 딸기케이크를 원했다
아이가 딸기케이크를 원했던 것은 그것을 먹고 싶었던 욕구 때문이 아니였다
딸기케이크가 당장 나에게 없다는 결핍도 아니였다
과거 자신이 딸기 케이크를 먹는 모습을 보고 만족해했던 부모의 시선 때문이였다
...
우리들은 모두 어떤 존재를
자기들 속에서 진정한 여자, 관능적인 애인, 친구를 발견하는 그런 존재를 만나기를 희망합니다
어떨 때는 나의 외로움을 보듬어줄 엄마같은
어떨 때는 대화가 통하는 친구같은
어떨 때는 예쁘고 완벽한 몸매를 가진 애인같은 사람을 말이죠
하지만 저는 새로운 만남의 첫 순간부터 알고 있읍니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돈으로 여자를 사는 주제에 너무 같잖은 소리를 했나요?
남자의 욕망과 환상을 여자가 채워 줄 수 있다는 사실은 남자에게는 커다란 축복인 것 같읍니다
섹스라고 하는 것은 그저 통과의례입니다
너와 내가 이만큼 가까워졌다고 믿게 하기 위한 또 하나의 환상이죠
이런 환상(hyper-reality)는 결국 그 너머에 있는 실재를 가리는 장막임니다
하이퍼 리얼리티를 리얼리티로 받아들이면 결국 저 자신의 소외감, 혐오감은 피할 수 없죠
한때 인터넷에 만연했던 여성혐오의 근간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쁘고 이상적인 여성을 나는 능력이 없어서 얻지 못하고 쳐다만 봐야 하는 그런 패배자적인 마인드와 더불어
내가 살고 있는 이런 시궁창같은 현실감에서부터 나오는 걸까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함니다
현대에 들어서 인간을 움직이는 힘은 합리적인 생각이나 이성적인 논리가 아닌
내재적인 욕망과 환상이라는 점을 철학에서도 강조하고 있는데요
섹스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단순히 성욕이라고 우리가 뭉뚱그려서 말하긴 하지만
인간의 가장 강력하고 근원적인 욕망 네가지를 동시에 채워줄 수 있는 것 같읍니다
하지만 성매매를 해보면 금방 알 수 있죠
섹스는 나의 욕망이 아닌 환상이며 사랑의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는 사실을요
이런 사실을 부정하고 기만하기 위해서 내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그리고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여성을 떠나 보내고 또 다른 여성을 찾아나서는 그런 행동을 반복했읍니다
마치 나의 공허하고 외로운 마음을 이 여자가 채워주지 못했다는
아주 전형적이고 비현실적인 남탓도 절대 빼먹지 않죠
성매매를 통해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섹스가 아닌 사랑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너무 역설적일까요?
잘 생각해 보면 제 자신이 참 불쌍한 사람이죠
더럽고 추잡한 과정을 통해서야 알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래도 철학을 어깨 넘어 배워서 금방 깨쳤나 봄니다
여러분들 철학 많이 하세요
사는자 & 파는자 현실과 환상 그 사이 어딘가에서.
섹스는 쉽게 달성할 수 있고, 교감이 바탕이 되는 사랑은 달성하기 어려우니 그렇게 생각하시는게 아닐까요? 만약 육체적 관계가 아예 배제된 사랑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큰 아쉬움과 공허함을 느낄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혐오의 원인은 너무나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되는 것이겠지만, 대체로 크게는 조장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대개는 혐오와 갈등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조장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