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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표현된 형태와 근원적 창조력]


화가와 작곡가를 예로 들면 표현된 형태는 화가가 그려낸 그림, 작곡가가 만들어낸 음악에 해당되며, 근원적 창조력은 그러한 그림을 그려내고 음악을 만들어낸 화가와 작곡가의 창조력에 해당된다. 또한 학자와 수학자를 예로 들면 표현된 형태는 학자가 써낸 글, 수학자가 발견해낸 수학공식에 해당되며, 근원적 창조력은 그러한 글을 써낸 학자와 그러한 수학공식을 발견해낸 수학자의 통찰력과 직관력에 해당되는 것이다.


즉 표현된 형태는 항상 말과 글로서, 형태와 형상으로서 표현되고 드러날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화가가 그린 그림이나 작곡가가 만든 음악은 각각 색과 형태, 소리와 같은 형상으로서 표현되고 드러날수 있으며, 학자가 쓴 글과 수학자가 발견해낸 공식 역시 말과 언어와 기호로서 표현되고 드러날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표현된 형태를 만들어낸 근원적 창조력 자체는 말과 형태로서 표현되거나 드러날수 없다. 즉 그러한 그림을 그려낸 화가의 창조력과 그러한 음악을 만들어낸 작곡가의 창조력은 형태로서 표현될수는 없는 것이며, 그러한 글을 써낸 학자의 통찰력과 직관력, 또한 그러한 수학공식을 발견해낸 수학자의 통찰력과 직관력 역시 말과 언어로서 표현될수는 없는것이다.


또한 근원적인 창조력은 기존에 표현되었던 형태를 넘어서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고 표현해낼수 있다. 예를들어서 화가와 작곡가의 창조력은 기존에 만들었던 그림과 음악들 말고도 새로운 그림과 음악들을 그려내고 만들어낼수 있으며, 또한 학자와 수학자의 통찰력과 직관력은 기존에 썼던 글과 발견해냈던 수학공식 외에도 새로운 글을 쓸 수 있으며 새로운 공식들을 발견해낼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표현된 형태는 그 상태로 고정되어 달라지거나 성장하지 않지만, 그것들을 만들어낸 근원적 창조력은 계속해서 달라지거나 성장할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화가가 그려놓은 그림과 작곡가가 만들어놓은 음악은 그 자체로 고정되어 달라지지 않지만, 그것을 만들어낸 화가와 작곡가의 창조력은 그것을 만들어냈을 그 당시보다 더욱더 달라지거나 성장할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학자가 써놓은 글이나 수학자가 발견해놓은 수학공식 역시 그 자체로 고정되어 달라지지 않지만, 그것들을 발견한 학자와 수학자의 통찰력과 직관력은 그것들을 발견했을 그 당시보다 더욱더 달라지거나 성장하고 발전할수 있는 것이다.



[17.진정한 지혜와 도덕]


앞의 글인 [표현된 형태와 근원적 창조력] 에서 설명한것과 마찬가지로 지혜와 도덕에도 또한 표현된 형태와 근원적 창조력이 존재하는 것이다. 즉 말로 표현된 개별적인 지혜와 도덕들이 있으며, 또한 그러한 말로 표현된 지혜와 도덕들을 표현해내고 떠올려낸 통찰력과 직관력과 판단력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말과 언어로 표현된 지혜와 도덕은 말과 언어로 표현될수 있지만, 그러한 개별적 지혜와 도덕들을 표현해낸 통찰력과 직관력과 판단력 자체는 말과 언어로 표현될수 없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개별적 지혜와 도덕들을 떠올려내고 표현해낸 통찰력과 직관력과 판단력은, 그렇게 기존에 표현해낸 지혜와 도덕들 외에도 새로운 지혜와 도덕들을 표현해낼수 있는 것이며, 그리고 말과 언어로 표현된 지혜와 도덕은 더이상 성장하지 않는것과 반대로 그러한 개별적 지혜와 도덕들을 표현해낸 통찰력과 직관력과 판단력 자체는 그것들을 표현해낸 그 당시의 순간보다 계속해서 성장하고 발전할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지혜와 도덕을 습득하는것은, 말과 언어로 표현된 개별적 지혜와 도덕들을 습득하는것을 넘어서서, 그것들을 표현해내고 떠올려낸 근원적인 통찰력과 판단력과 직관력을 습득하는 것이다. 즉 그것은 단순히 말과 언어로 표현된 지혜와 도덕들을 많이 알고 외우는것이 아니다, 즉 그것은 그러한 개별적인 지혜와 도덕들을 많이 아는것을 넘어서서 그러한 지혜와 도덕들을 표현해내고 떠올려낸 통찰력과 직관력과 판단력 그 자체를 습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렇게 진정한 지혜와 도덕을 습득함으로서 사람은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단순히 말과 언어로 표현되어 있는 지혜와 도덕들만을 습득했다면, 그러한 지혜와 도덕에 나와있거나 설명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대처할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개별적 지혜와 도덕들을 떠올려내고 표현해낸 통찰력과 판단력과 직관력을 습득했다면, 기존의 지혜와 도덕들에 나와있거나 설명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도 무엇이 올바른지와 올바르지 않은 것인지를 스스로 판단하여 대처할수 있는것이다.


또한 그렇게 진정한 지헤와 도덕을 습득함으로서 사람은 독립적이게 될 수 있는것이다. 즉 사람이 말과 언어로 표현되어있는 지혜와 도덕을 따라한다면 그는 항상 스스로 무엇이 올바르고 잘못된지를 판단하지 않고 외부의 요소들에 의존하게 되는것이다. 반면 사람이 그러한 개별적 지혜와 도덕을 표현해낸 통찰력과 판단력과 직관력을 습득했다면 그는 이제 외부의 요소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무엇이 올바르고 잘못된지를 판단하여 행동할수 있게 되는것이다.




[18.진정한 균형과 평형]


균형과 평형의 핵심은 그것은 가변성과 항상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가변적이여서 매번의 상황마다 다르지만, 동시에 항상적이여서 항상 일관된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균형과 평형은 마치 공 혹은 흔들리는 줄 위에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항상 균형과 평형을 유지하는 것과도 같다. 즉 매번 어떤 방향으로 무게가 치우쳤는지에 따라서 그에 맞는 방향으로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가변적이며 유동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항상 동일하게 균형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몸을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즉 항상적이며 일관된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즉 진정한 균형과 평형을 습득하려면 스스로 균형과 평형을 느낄수 있는 능력을 습득해야 한다. 즉 스스로 무엇이 균형상태에 있는지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하고 느낄수 있는 능력을 습득해야 하며. 그리고 나아가 무엇이 균형상태에 있지 않다면 그것이 왜 그러한지와 다시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판단하고 느낄수 있는 능력을 습득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앞의 글인 [17.진정한 지혜와 도덕] 에서 설명한 진정한 지혜와 도덕을 습득하는 것은, 즉 말과 언어로 표현된 개별적 지혜와 도덕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러한 개별적인 지혜와 도덕을 표현해낸 통찰력과 직관력과 판단력을 습득하는 것은, 곧 그러한 진정한 균형과 평형을 습득하는 것과도 같다. 사실 지혜와 도덕은 곧 균형과 평형과도 같다, 즉 지혜와 도덕은 균형잡혀져 있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 그것이 다시 균형과 평형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전달해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즉 지혜와 도덕은 매번의 상황마다 그에 맞는 적절한 말을 전달하는 것이기에 가변적이며 유동적이다, 그렇지만 모든 상황에서 항상 다시 균형과 평형을 회복하는 방향을 전달하는 것이기에 항상되고 일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19.무형과 바람]


앞의 글인 [4. 형태와 무형] 에서 설명한대로 세상은 형태를 가진 대상들과, 그러한 개별적인 형태가 있는 대상들을 포함하고 있는 형태가 없는 비어있는 공간의, 이러한 두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사실 그러한 세계의 비어있는 공간 그 자체에는 자신이 포함하고 있는 개별적인 형태를 가진 대상들 사이의 균형과 평형을 유지하는 힘 혹은 질서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바람이다.


그리고 앞의 글인 [5. 무형의 존재로서의 진정한 자기 자신] 에서 설명한대로, 세상이 유형의 부분과 무형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것과 마찬가지로, 사람 자기 자신 역시 형태를 가진 부분과 형태가 없는 부분의 두가지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형태를 가진 부분인 몸, 감정, 생각, 기억과, 그것들을 담고있는 비어있고 투명한 공간으로서의 형태가 없는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해당 글에서 설명한대로 형태가 있는 부분은 자기 자신이 아니며 진정한 자기 자신은 형태가 없는 부분이다, 즉 자신의 몸, 감정, 생각, 기억은 자기 자신이 아니며 진정한 자기 자신은 그것들을 담고있는 비어있고 투명한 공간과도 같은 부분인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비어있는 투명한 공간과도 같은 진정한 자기 자신을 자각할수 있으면, 또한 세상의 비어있는 공간 자체에 존재하는, 자신이 담고있는 여러 개별적 형태가 있는 대상들 사이의 균형과 평형을 유지하는 힘 혹은 질서를 느낄수 있게 되며 그것과 연결될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바람과 연결될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의 글에서 말한대로 그것은 진정한 자기 자신에 대한 고전적 설명이며 정확한 설명은 아니다, 즉 더욱 정확하고 현대적인 설명은 앞의 글들인 [2. 관찰자로서의 진정한 자기 자신] 과 [3.관찰대상에 대한 앎과 관찰자에 대한 앎] 에서 말한대로 자신의 몸, 감정, 생각, 기억은 관찰되는 대상에 불과할뿐 자기 자신이 아니며 진정한 자기 자신은 그것들을 바라보는 또다른 관찰자이자 관조자라는 것이다. 즉 바람과 연결되는 것에 대한 더욱 정확한 설명 역시 그러한 관찰자로서의 진정한 자기 자신을 깨달으면, 또한 세상의 비어있는 공간 자체에 있는, 그것이 담고있는 여러 형태가 있는 대상들 사이의 균형과 평형을 유지하는 힘 혹은 질서와 연결될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바람을 느끼고 그것과 연결될수 있으면 이전의 글인 [17.진정한 지혜와 도덕] 그리고 [18.진정한 균형과 평형] 에서 말한 진정한 지혜와 도덕, 그리고 진정한 균형과 평형을 습득할수 있는 것이다. 즉 말로 표현된 개별적 지혜와 도덕들을 넘어서서 그것들을 표현해낸 통찰력과 직관력과 판단력을 습득할수 있게 되는 것이며, 항상 특정한 상황이 균형상태에 있는지와 그렇지 않은지를 느낄수 있는 능력과, 만약 그 상황이 균형상태에 있지 않다면 왜 그러한지와 다시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느낄수 있는 능력을 습득할수 있게 되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