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은 언제 진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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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Braveheart를 보면, 스코틀랜드 독립을 위해 싸우던 윌리엄 월리스(멜 깁슨 분)는 결국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 일명 ‘Longshanks’에게 패배해 모진 고문을 당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월리스는 기로에 선다. “Mercy!(자비를 구합니다)”고 외치기만 하면 형벌을 면하거나 가벼운 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기회가 주어진다. 하지만 그는 고통 속에서도 “Freedom!”을 외치고, 끝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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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는 이 장면을 별다른 생각 없이 보았다. 단순히 위대한 영웅의 장렬한 최후라고 여겼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몸이 아프고, 고통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몸소 겪고 나니, 이 장면을 다시 보게 되었다. 확실한 건 하나다. 나는 위인은 아니다. 만약 내가 윌리엄 월리스가 당한 고문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북한에서 당한다면, “위대한 김일성 수령님, 김정은 대장동지 만세!”를 외칠 자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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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외침은 과연 내 진심일까?
극심한 고통 속에서는 그 순간 그것이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일 수도 있다. 당장 죽을 만큼 아픈 상황에서는, 무엇이든 피하고 봐야 하니까. 그 순간의 '진심'은 오히려 생존을 향한 절박함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외침이 ‘진짜’ 내 진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평소에 나는 “김정은 개새끼”라고 거리낌 없이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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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또 다른 질문이 따라온다. 고통이나 절박함이 없는 평상시의 말만이 ‘진심’일까?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아쉬움, 불안, 공포, 이해관계를 마주한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하는 선택과 말들은 모두 진심이 아닌 걸까? 그렇지 않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항상, 그 선택이 내 ‘진심’이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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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은 나를 또 다른 문제로 이끌었다.
많은 이혼 경험자나 배신당한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은 날 속였어. 진심이 아니었어.”
하지만 과연 정말 그럴까? 상대가 결혼 당시에는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믿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진짜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단지 그 진심이 시간이 흐르며, 상황이 바뀌며, 감정이 식으며 변해버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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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은 고정된 게 아니다
사람의 진심은 절대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그때의 진심도 진심이고, 지금의 진심도 진심일 수 있다.
진심은 고통과 감정, 이해관계와 생존본능, 시간의 흐름 속에서 유동적으로 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과거와는 다른 말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거짓'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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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누군가를 평가할 때, '그 말은 진심이 아니었어'라고 단정하기 전에, 그 말이 나온 맥락과 절박함, 그리고 당시의 상황 전체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진심은 어떤 단 하나의 순간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삶 전체에 걸쳐 흐르는 변화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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