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손길을 찾아 이리저리 해매이고, 삶의 행복을 찾아 아픔을 견디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 나약하고 길고도 짧은 삶.
길이와는 상관 없이 현재까지도 정답을 찾지 못했다라는 사실이 절망이라는 표상으로서 나를 더욱 깊은 심연으로 인도한다. 이는 오성적인 현상인 것일까, 나는 절망감속에서 평생을 향유하게될까 두려워 아직 그 어떠한 동아줄도 잡지 못한 채, 이리저리 방황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목적지를 알지만, 어떤 길을 통해 향하는지 모르는 버스 안에서 가고싶어진 풍경이 있는 곳을 바라보나, 가지 못하는 심경을 느끼고 있는 느낌이다. 당장이라도 내릴 수는 있으나, 누군가에겐 이 결정이 안타깝게 느껴질 수 밖에 없거나,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의사조차 누군가에게 맡긴 채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의문이 아닌 사실이다. 인생의 종착점은 죽음에 불과한데, 이리도 상처받아가며 나아갈 수 밖에 없다라는 것이 너무나도 슬프다.
허나, 누군가는 실제로 자신의 몸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계속해서 남긴다. 자신의 내면적 상처를 외면적인 표현으로서 이를 형상화하고자 하는 게 그 이유일까? 아직 내가 심연과는 궤가 달리하는 음지에 발을 담구지 않았다라는 사실을 깨닫고,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 슬픔은 어디서부터 기인한 것일까. 근본적인 실체를 탐구하기 위해, 칸트, 쇼펜하우어 등 인간의 근본적인 순수 이성과 형이상학을 공부했으나 시발점이 어디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아무레도 근본부터 잘못 짚은 것이 아닐까 싶다. 음지에 발을 담궈보는 것도 또한, 이러한 근본적인 접근 중 일환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더라면 도전해보고싶은 영역 중 하나인 셈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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