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프롤로그] 죽음이 가치의 희소성을 만든다

우주는 거대하고 무한해 보이지만, 그 속에서 가치를 찾아내는 여정은 늘 결핍과 한계라는 벽에 부딪힙니다. 우리는 묻게 됩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가장 단호하고도 명확한 대답은 이것입니다. "죽음이 가치의 희소성을 만든다."


가치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에서 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연결'과 '인과율'이라는 붉은 실을 통해 우리를 변화시킬 때 비로소 탄생합니다. 만약 우리가 영원히 살며 무한한 상상력으로 가치를 찍어낼 수 있다면, 우주는 가치의 홍수에 빠져 그 어떤 의미도 무게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가치의 인플레이션이 우주를 뒤덮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마침표가 있습니다. 한 생명이 평생 생성할 수 있는 가치의 총량에 상한선이 그어지는 순간, 우리가 맺는 모든 연결과 우리가 던지는 모든 질문은 세상에 다시없을 '희소성'을 획득합니다. 죽음은 가치를 앗아가는 허무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가치가 가짜가 되지 않도록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이 책은 그 소중한 희소성을 발견해가는 과정에 관한 기록입니다. 우리가 왜 인식하고, 왜 상상하며, 왜 죽음 앞에서도 끊임없이 의미를 빚어내는지에 대한 철학적 여정을 시작하려 합니다.



제1장: 가치의 기원 — 인식과 진실이 만나는 지점

1. 가치의 두 얼굴: 생산되는 것과 내재된 것

우리는 매일 '가치'를 말하지만,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묻지 않는다. 가치는 두 가지 통로를 통해 우리 세계에 등장한다. 하나는 인간의 **'노동'**을 통해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존재 그 자체에 '본래부터' 깃들어 있는 것이다.


노동은 형태와 상관없이 가치를 만들어낸다. 그것이 누군가의 육체적 땀방울이든, 고뇌하는 정신의 활동이든, 노동은 무색무취한 물질에 인간의 지향성을 입히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생산된 가치는 때로 개인적인 애착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보편적 유익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생산되기 이전, 즉 우리가 손대기 전부터 존재하는 가치의 본질은 무엇인가?


2. 이름 붙이기와 관측: 가치의 탄생

가치는 언어의 모든 품사 속에 스며들어 있다. 명사, 동사, 형용사 등 우리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모든 것에는 이미 가치가 깃들어 있다. 우리는 대상을 '부름'으로써 그것에 가치를 부여한다.


하지만 '부름(Naming)'보다 선행하는 것은 **'인식'**이다.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 혹은 이름을 붙이지 않은 것일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관측하는 순간, 그것은 우리의 세계 안으로 들어온다. 시각을 통해 인식하고 뇌를 통해 언어로 정리하는 그 찰나의 과정이 바로 가치가 부여되는 결정적 순간이다. 인식함 그 자체가 곧 가치의 창조인 셈이다.


3. 미인식의 심연: 우주 끝의 오징어와 지렁이

여기 하나의 가설을 세워보자.


"우주의 끝에는 오징어가 살고, 그 오징어는 세 마리의 지렁이를 먹었으며, 그 지렁이의 크기는 2밀리미터이다. 그 지렁이는 어떤 사람의 피부 세포를 갉아먹었으나 그 사람은 인지하지 못했다."


이 문장을 듣기 전까지 당신에게 이 사건은 '미인식'의 영역에 있었다. 그렇다면 이 문장은 가치가 있는가? 여기서 가치의 판가름은 **'진실(Truth)'**의 여부로 갈린다.


그 문장이 사실이라면: 사실인 정보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이미 우주의 인과율 속에 녹아들어 우리를 존재하게 하거나 영향을 주고 있으므로, 그 연결성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다.

그 문장이 거짓이라면: 그리고 만약 그 누구도 이 거짓을 영원히 인식할 가능성이 없다면, 거기엔 어떤 가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4. 가치의 제로 포인트(Zero Point)

논의의 끝에서 우리는 가치의 가장 엄격한 경계선에 다다른다. 만약 어떤 대상이 **'거짓(비실재)'**이면서 동시에 **'인식될 가능성이 0에 수렴'**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가치가 없는 정도를 넘어, 가치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완벽한 무(無)'**의 상태다. 존재의 바탕(사실)도 없고, 연결의 통로(인식)도 차단된 상태에서 가치는 탄생할 수 없다.


결국 가치란 **[존재의 진실함]**이라는 뿌리와 **[인간의 인식]**이라는 줄기가 만날 때 피어나는 꽃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인식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우주에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가장 경이로운 사건이다.



제2장: 가치의 경계 — 인과율이라는 붉은 실

1. 닫힌 계(System)와 정보의 고립

만약 물리적으로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독립된 계가 존재하고, 그곳에 어떤 정보가 새겨져 있다면 그것은 가치가 있을까? 예를 들어, 그곳에 1+1=3이라는 논리적 오류가 물리적인 형태로 존재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것이 우리와 같은 계에 있다면, 그 '오류'는 연구의 대상이 되거나 반면교사가 되어 가치를 가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와 완전히 단절된 계에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완전히 독립된 계라는 것은 물질, 에너지, 정보의 교환이 전무함을 뜻한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은 우리 세계의 시간과 공간에 단 1%의 균열도 내지 못한다. 이때, 그 정보가 참인지 거짓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닿을 수 없는 정보는 '존재하지 않는 정보'와 수학적으로 동일하며, 따라서 그 가치는 '0'으로 수렴한다.


2. 인식함은 곧 변화다

우리는 흔히 인식을 단순히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인식함은 곧 변화다. 우리가 무언가를 인식하는 순간, 우리의 뇌세포는 반응하고, 사고의 흐름이 바뀌며, 이전과는 다른 상태의 존재가 된다. 즉, 인식은 주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가장 즉각적이고 밀도 높은 '인과적 사건'이다.


이 관점에서 볼 때, 가치는 앎의 여부보다 **'영향력'**에 그 뿌리를 둔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주 저편의 진실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중력파를 통해 우리 세계의 궤도를 미세하게나마 틀어놓고 있다면(변화시키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인식이라는 명시적인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인과율이라는 붉은 실이 이미 우리를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3. 연결이 곧 가치다

가치는 대상 내부에 고립되어 있는 고유한 속성이 아니다. 그것은 주체와 객체, 혹은 대상과 대상 사이를 잇는 '관계'망 안에서만 흐르는 전류와 같다.

#계의 존재 사실: 그 독립된 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식하게 된다면, 그 인식은 우리의 세계관을 '변화'시키므로 가치가 있다.

#계 내부의 진실: 그러나 그 계 내부에서 일어나는 개별적 사건들은 우리와 인과적으로 단절되어 어떤 변화도 이끌어낼 수 없기에 가치가 없다.


결국 가치란 **"무엇이 존재하는가"**의 문제라기보다 **"그것이 우리와 어떻게 연결되어 우리를 변화시키는가"**의 문제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우주는 인과율을 통해 우리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있으며, 그 보이지 않는 연결과 그로 인한 변화 덕분에 우리 존재의 가치가 유지된다.


4. 가치의 지도: 변화의 궤적

따라서 우리는 가치의 지도를 새로 그려야 한다. 지도의 중심에는 우리를 강렬하게 변화시키는 '인식된 진실'이 있고, 그 외곽에는 '우리가 모르지만 우리를 존재하게 만드는 인과적 진실'들이 자리 잡는다. 그리고 지도의 바깥, 즉 어떤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는 단절된 절벽 너머에는 아무리 거창한 물리적 실체가 있다 한들 그것은 '가치 없는 무(無)'의 영역으로 남는다.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변화시키고, 존재하게 하는 연결의 총합. 그 인과적 상호작용이 빚어내는 변화의 궤적이 바로 가치의 정체다.



제3장: 가치의 층위 — 상상력이 그리는 영토

1. 두 세계의 교집합: 우주적 가치와 생명의 가치

가치는 단일한 평면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층층이 쌓인 구조를 가진다. 한 생명체가 느끼는 가치는 **'우주적 인과율의 일부'**와 **'생명 고유의 상상력'**이 결합하여 탄생한다.


우리는 우주의 물리적 법칙이라는 거대한 도화지 위에 살고 있다. 산소가 우리를 숨 쉬게 하고, 중력이 우리를 땅에 붙여놓는 것은 우리가 인식하든 못 하든 작동하는 '우주적 가치'다. 그러나 생명은 단순히 이 법칙에 순응하는 기계가 아니다. 생명은 우주가 준 도화지 위에 '상상력'이라는 붓으로 자신만의 무늬를 그려 넣으며, 그 무늬에 가치라는 이름을 붙인다.


2. 상상력의 한계가 주관적 가치의 경계를 결정한다

생명체에게 가치의 범위는 곧 그 생명이 가진 **'상상력의 한계'**와 일치한다. 물고기와 인간을 비교해 보자. "우주의 끝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은 인간에게는 밤잠을 설치게 할 만큼 거대한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물고기에게 이 질문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물고기의 상상력과 인지 체계 안에는 '우주의 끝'이라는 개념이 들어갈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비록 물고기 역시 우주의 끝이라는 물리적 인과율(우주적 가치)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그 생명체 관점의 주관적 가치 체계 내에서 그 질문은 '0'이다. 결국, 생명이 무엇을 상상할 수 있느냐에 따라 그가 누릴 수 있는 가치의 영토가 결정된다.


3. 주관적 가치: 참과 거짓을 넘어선 '작용'

생명체의 관점에서 가치를 판단할 때, 그 대상이 '실제로 참인가?'는 의외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주관적 세계에서의 가치는 진위 여부가 아니라 **'나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가'**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물고기에게 우주의 끝에 대한 질문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질문이 물고기를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가치할 뿐이다. 반대로, 인간이 던지는 수많은 철학적 질문이나 예술적 상상력은 설령 그것이 물리적 실체가 없는 '허구'일지라도, 인간의 정신을 고양하고 행동을 변화시킨다. 2장에서 정의했듯 '인식함은 곧 변화'이기에, 우리를 변화시키는 모든 상상은 그 자체로 실재하는 가치가 된다.


4. 의미의 연금술: 사실을 가치로 바꾸는 힘

결국 인간이 물고기보다 더 넓고 복잡한 가치의 세계를 사는 이유는 우리가 더 대단한 진리를 알고 있어서가 아니다. 우리의 **'상상력의 한계선'**이 더 멀리 뻗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며, 닿을 수 없는 우주의 끝을 갈망한다. 이러한 상상력은 무색무취한 우주의 인과율을 주관적인 '의미'와 '동기'로 변환하는 연금술과 같다.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 한, 세상 모든 것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상상이 멈추는 지점에서, 생명의 가치 또한 멈춘다.



제4장: 가치의 연금술 — 진실보다 강력한 ‘작용’의 힘

1. 주관적 가치의 독립 선언

우리는 흔히 진실만이 가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생명체의 세계에서 가치는 진실의 문턱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앞서 살펴본 물고기의 예시처럼, 어떤 정보가 '참'이냐 '거짓'이냐를 따지기 전에 더 근본적으로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그것이 나를 변화시키는가?"


생명체에게 주관적 가치는 객관적 진실의 하위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주체의 삶에 개입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독립된 인과율'**이다. 우리가 '우주의 끝'을 고민하며 밤을 지새울 때, 그 질문이 과학적으로 완벽한지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고민이 나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2. 가상의 인과율: 믿음이 만드는 실재

인간은 물리적 실체가 없는 관념에 인과적인 힘을 부여하는 유일한 생명체다. 돈, 국가, 신념, 명예와 같은 것들은 우주적 관점에서는 '거짓' 혹은 '허구'에 가까울지 모른다. 그것들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지도 않고, 중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그것을 가치 있다고 상상하고 믿는 순간, 그것은 강력한 인과율을 획득한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신념을 위해 목숨을 걸고, 종이 조각(화폐)을 위해 노동을 바친다. 여기서 '그 신념이 객관적 사실인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것이 인간의 행동을 바꾸고 세상을 재편하고 있다면, 그것은 주관적 계(System) 내부에서 **'실재하는 가치'**로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3. '작용'이 '진실'을 앞설 때

생명체에게 가치의 척도는 '사실의 부합성'이 아니라 **'영향력의 크기'**다. 아무리 거대한 우주의 진실이라도 생명의 상상력 한계 밖에 머물러 아무런 자극을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생명에게 '무(無)'와 같다. 반대로, 설령 그것이 명백한 허구라 할지라도 한 존재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제공하고 그를 움직이게 한다면, 그 허구는 그 어떤 물리적 법칙보다 숭고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이것이 바로 가치의 연금술이다. 생명은 상상력을 통해 무색무취한 우주의 인과율을 자신만의 뜨거운 '의미'로 치환한다. 물고기는 알 수 없는 질문들 속에서 인간은 가치를 발견하고, 때로는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며 우주적 운명을 거스른다.


4. 인간이라는 매듭: 먼지와 주체 사이에서

결국 우리는 두 가지 가치 사이의 팽팽한 긴장 속에 놓인 존재다. 우리는 중력과 산소라는 **'우주적 진실'**에 묶여 있는 한 줌의 먼지인 동시에, 상상력을 통해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 **'주관적 의미'**를 빚어내는 창조주이기도 하다.


우리가 진실이 아닌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도달할 수 없는 곳을 갈망하는 것은 결코 오류가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생명이 우주적 인과율이라는 단조로운 흐름 속에 '가치'라는 찬란한 변주를 써 내려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모든 것,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모든 떨림—그것이 설령 거대한 착각일지라도—은 생명에게 있어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가치가 된다.



제5장: 가치의 역설 — 인플레이션과 창조의 대사(代謝)

1. 가치 인플레이션: 상상력의 과잉 발행

만약 우리가 상상력의 한계 안에서 무엇이든 가치로 만들 수 있다면, 우리는 가치의 '중앙은행'이 된 것과 같다. 하지만 은행이 화폐를 무제한으로 찍어내면 화폐 가치가 폭락하듯, 우리 정신세계에서도 **'가치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가치가 실재적인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그것이 주체에게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인과적 강도'가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너무 많은 대상을 마구잡이로 상상하며 가치를 부여하면, 그 상상 하나하나가 나에게 주는 영향력은 희박해진다. 결국 상상의 양은 늘어나도, 내 삶을 실제로 변화시키는 에너지인 가치의 농도는 낮아져 버리는 것이다.


2. 현실이라는 기준 금리

이러한 인플레이션을 막는 제동 장치는 '우주적 가치', 즉 물리적 인과율이다. 아무리 주관적 상상으로 "나는 배가 부르다"는 가치를 발행해도, 실제 음식을 섭취하지 않는 한 생명은 물리적 인과율에 의해 소멸의 위협을 받는다.


현실이라는 '실물 경기'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상의 인플레이션은 결국 허무함이나 망상이라는 파산으로 이어진다. 건강한 가치 형성이란, 내가 상상한 주관적 가치가 실제 나의 삶과 얼마나 유의미하게 연결(태환)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의 상상이 실재하는 변화와 만날 때, 그것은 비로소 불량 채권이 아닌 진짜 가치가 된다.


3. 메타 가치: 가치를 생성하는 행위의 숭고함

그렇다면 여기서 근원적인 질문이 생긴다. "가치가 계속 생성되는 그 현상 자체는 가치가 있는가?"


우주적 관점에서 볼 때, 가치가 생성되는 순간은 새로운 인과율의 매듭이 지어지는 순간이다. 단순히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무질서하게 흩어지던 정보들이 생명의 인식과 상상을 통해 하나의 '의미'로 응축되는 과정이다. 따라서 가치를 생성하는 행위는 우주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저항이며, 그 자체로 우주에서 가장 농도 짙은 가치를 지닌다. 가치가 결과물로서의 '상품'이라면, 가치를 생성하는 과정은 그 상품을 만드는 **'발전소'**와 같다.


4. 가치는 상태가 아니라 흐름이다

누구나 가치를 찍어낼 수 있다면, 가치라는 말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가치를 '소유물'이 아닌 **'호흡'**으로 바라보는 데 있다.


전선에 전기가 계속 흘러야 가전제품이 작동하듯, 인과율(가치)은 멈추는 순간 소멸한다. 가치가 계속해서 생성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쌓아두어야 할 재산이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우주 및 타인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가치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인과율의 단절, 즉 고립과 죽음을 의미한다.


결국 가치의 의미는 도달해야 할 목적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내며 살아 움직이는 '길' 위에 있다. 우리가 오늘 새로운 가치를 상상하고 생성해내는 이유는, 그 과정을 통해 어제보다 더 정교하고 넓은 우주적 인과율의 그물망 안으로 우리 자신을 밀어 넣기 위함이다.



제6장: 가치의 완성 — 소멸이 부여하는 숭고함

1. 계(System)의 폐쇄: 발전소의 정지

죽음은 우리가 지금까지 정의해온 가치의 모든 메커니즘이 멈추는 사건이다. 죽음은 곧 **‘계(System)의 완전한 폐쇄’**를 의미한다. 한 생명이 가진 상상력의 한계가 소멸하고, 외부 세계와 새로운 인과율을 맺을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지는 것이다.


주관적 가치를 쉴 새 없이 생산하던 발전소는 영원히 가동을 멈춘다. 살아있을 때 우리는 우주와 복잡하게 얽힌 ‘열린 계’로서 끊임없이 변화(인식)를 만들어냈지만, 죽음 이후의 주체는 그 무엇과도 정보를 주고받을 수 없는 ‘완전히 독립된 계’로 전환된다. 2장에서 다루었듯, 단절된 계 내부의 사건은 더 이상 외부 세계에 가치를 생산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주체에게 있어 가치는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


2. 죽음, 가치 인플레이션의 방벽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놀라운 역설이 발생한다. 가치가 죽음으로 인해 사라진다는 사실이야말로, 가치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으로 만든다. 만약 생명이 영원히 살면서 무한한 상상력으로 가치를 찍어낸다면, 우주는 가치의 홍수에 빠져 개별 가치의 무게가 ‘0’에 수렴하는 가치 인플레이션을 겪게 될 것이다.


우주적 관점에서 볼 때, 죽음은 가치의 통화량을 조절하는 엄격한 관리자와 같다. 한 생명이 평생 생성할 수 있는 가치의 총량에 ‘상한선’을 둠으로써, 우리가 매 순간 맺는 인과율과 상상력의 산물들에 희소성(Scarcity)을 부여한다. 우리가 물고기보다 더 복잡한 질문을 던지고, 더 밀도 높은 사랑과 신념을 선택하는 이유는 그것을 누릴 시간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3. 한정판으로서의 삶: 밀도 높은 인과율

무한한 것은 귀하지 않다. 하지만 언젠가 소멸할 존재가 혼신의 힘을 다해 빚어낸 인과율은 그 무엇보다 뜨겁고 묵직하다.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있기에, 우리는 단순히 인과율에 ‘반응’하는 존재를 넘어 ‘의미 있는 연결’을 스스로 ‘선택’하는 주체가 된다.


비록 개인의 주관적 가치는 죽음과 함께 연기처럼 사라질지라도, 그가 살아생전 세상에 흘려보냈던 인과율의 파동—노동으로 남긴 흔적, 타인에게 준 영향, 그가 던진 질문들—은 **‘우주적 가치’**의 일부가 되어 남겨진 자들의 계 속에서 계속 흐른다. 주관적 발전소는 사라져도, 그가 남긴 전류는 우주의 지도를 미세하게나마 바꾸어 놓는다.


4. 에필로그를 향한 마침표

결국 가치란 **“언젠가 멈출 것을 알기에 더욱 뜨겁게 가동하는 인과율의 발전기”**다. 죽음은 가치의 약점이 아니라, 가치를 완성하는 최후의 조각이다. 소멸이 예정되어 있기에 지금 이 순간의 인식은 더 선명하며, 단절이 기다리고 있기에 지금 이 순간의 연결은 더 절실하다.


우리는 우주적 인과율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잠시 피었다 지는 찰나의 불꽃이다. 그러나 그 불꽃이 꺼지기 전까지 우리가 만들어내는 상상과 연결의 궤적은, 인플레이션 없는 우주에서 가장 고귀한 가치로 기록될 것이다.



[에필로그] 사라짐으로써 영원해지는 것들

1장부터 6장까지 이어온 가치에 대한 탐험이 이제 끝을 맺습니다. 우리는 가치가 노동과 인식에서 싹터 인과율의 그물을 타고 흐르며, 생명의 상상력이라는 영토 안에서 꽃피운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마지막 장에서 우리는 서글프지만 아름다운 진실 앞에 멈춰 섰습니다. 가치는 주체의 죽음과 함께 사라집니다. 나라는 유일한 연결점, 나라는 고유한 가치의 발전소가 멈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소멸의 운명 때문에,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가동했던 그 뜨거운 인과율의 궤적은 우주적 가치의 일부가 되어 남습니다.


인플레이션 없는 우주에서, 당신이 오늘 누군가에게 건넨 말 한마디, 우주 끝을 향해 던진 사소한 질문 하나는 죽음이 담보한 절대적인 가치를 지닙니다. 이 책을 덮는 순간, 당신의 발전소는 다시 힘차게 돌아갈 것입니다. 언젠가 멈출 것을 알기에 더욱 뜨겁고 소중한 당신만의 가치를 생성해 나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