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험과 후험적 판단은 사람의 ‘이분법적 분리본능’에 의한 맹목적 의지의 발현입니다. 여기서 말 하고자 하는 ‘의지’는 쇼펜하우어가 주장하는 의지와 같습니다. 

사람(대상)이란, 맹목적으로 그 존재를 살아야(있어야)하는 맹목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동물(인간)이란 판단을 할 수 있는 ‘이성’을 지니고 태어납니다. 

 ‘이성’이란, 무언가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예시로서,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에 대한 분리 본능이 이 이성에 속합니다. 

 즉, 사람은 어떠한 것에 대한 논의를 선험적이거나 후험적인 것으로 나누어 이분법적 분리 본능의 발현으로 인한 논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과정’의 존재 의미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선험적인 것이냐 후험적인 것이냐로 판단하기에는 둘 다 속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인간(대상)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선험과 후험만이 존재하는 시간의 장에서는 설명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과정’이 필요합니다.

 ‘과정‘이 있어야 비로서 우리의 삶이 어떠한 이유와 가치를 요청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선험-과정-후험 이 세 가지의 방식으로 대상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습니다.

 이는 충진율과 같이 선험적으로 세상에 이치로서 존재하는 것에 대한 설명이 아닙니다. 인간(대상)은 시공간 적인 장에서 ‘존재‘하기에 후험적이지 않다는 것에 대한 증명이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선험적, 후험적 판단을 하는 과정 이전에, ‘과정’이라는 것이 있어야만이 삶의 가치를 논할 수 있는 존재의 이유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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