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험과 후험적 판단은 사람의 ‘이분법적 분리본능’에 의한 맹목적 의지의 발현입니다. 여기서 말 하고자 하는 ‘의지’는 쇼펜하우어가 주장하는 의지와 같습니다.
사람(대상)이란, 맹목적으로 그 존재를 살아야(있어야)하는 맹목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동물(인간)이란 판단을 할 수 있는 ‘이성’을 지니고 태어납니다.
‘이성’이란, 무언가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예시로서,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에 대한 분리 본능이 이 이성에 속합니다.
즉, 사람은 어떠한 것에 대한 논의를 선험적이거나 후험적인 것으로 나누어 이분법적 분리 본능의 발현으로 인한 논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과정’의 존재 의미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선험적인 것이냐 후험적인 것이냐로 판단하기에는 둘 다 속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인간(대상)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선험과 후험만이 존재하는 시간의 장에서는 설명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과정’이 필요합니다.
‘과정‘이 있어야 비로서 우리의 삶이 어떠한 이유와 가치를 요청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선험-과정-후험 이 세 가지의 방식으로 대상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습니다.
이는 충진율과 같이 선험적으로 세상에 이치로서 존재하는 것에 대한 설명이 아닙니다. 인간(대상)은 시공간 적인 장에서 ‘존재‘하기에 후험적이지 않다는 것에 대한 증명이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선험적, 후험적 판단을 하는 과정 이전에, ‘과정’이라는 것이 있어야만이 삶의 가치를 논할 수 있는 존재의 이유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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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과 하나가 되면 파동이 눈에 보이는법~ - dc App
카오스 에서 나온 프랙탈은 무성생식의 시공간.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dc App
해탈에 관한 이야기의 복사품.
@^^(211.234) 쇼펜하우어를 논하면서 동양철학을 몰라서는 안되지만, 비슷한 내용인가봅니다 - dc App
과정 은 화이트헤트 용어 아닌가 그렇지 않아? 왜 갑자기 과정일까?
https://m.dcinside.com/board/philosophy/589804 이 글의 연장선이예요~ - dc App
첫줄도 못 읽네 난 ^^
@天地密移(119.206) https://m.dcinside.com/board/philosophy/590769 그래서 준비한 해설서예요^^ - dc App
또한 첫줄도 못 읽음 난.
@天地密移(119.206) 얼래 ㅋㅋㅋㅋㅋ 죄송합니다 - dc App
쇼펜하우어를 인용하셨지만, 칸트의 관점에서 비추어 볼 때 순수이성비판의 마침표를 찍고 실천이성비판의 첫머릿말을 쓰는 그 단계인 거 같군요. 도식으로 표현하면, 이론이성의 정초=>실천이성의 요청 단계인듯 싶습니다. 비록 그러한 정리는 그 자체로 의미 있지만, 철학사의 관점에서는 칸트의 비판 철학을 따라가는 정도 같군요. 어쩌면, 글쓴님께서 전에 쓰셨던 삶에 대한 회의적인 내용의 글들은 이론이성을 정초하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점들 모두는, 철학을 공부하셨던 글쓴님도 이미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글쓴님의 의도는 아마도 복습 차원에서 지식들을 한번 쭉 정리하시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또 제가 추측건대, 글쓴님께서 쓰시는 글들에 전체적으로 쇼펜하우어를 인용하시며 등장시키시는 그 까닭은, 글쓴님께서 쇼펜하우어를 공부하시면서 그의 사상을 정리하시고자 쇼펜하우어의 관점을 쭉 따라가보시는 게 아닐련지요. 말하자면, 쇼펜하우어가 칸트 철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며 가졌던 생각들을 처음부터 단계를 밟아가며 정리하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글쓴님께서 글에서 주장하고계시는 요지가 무엇인지 대략 이해가 갑니다. 아마도 글쓴님은 칸트/쇼펜하우어의 사상을 가지고 계실 겁니다.
@대수확 우와 제 글을 진심으로 읽어주셨군요! 감동입니다! 제가 글을 쓰는 주된 목적은,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정초를 다듬는 중이였습니다. 이런식으로 계속해서 나아가다보면 언젠가 ‘진리’에 닿지 않을까 하구요! 생각이 또 언제 바뀔지 모르지만, 일단 계속 도전해보겠습니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