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경계를 구획하는 방법임. 그리고 이 경계 구획은 자신이 하는 것.
근데 이들은 그것이 인간본성인데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느냐는 말을 한다. 그들이 말하는 의도추론... 그 의도추론은 대개 사람에게 종속되어 있고, 요사이는 그 의도추론의 목적은 저 사람의 의도가 자신의 이득을 유지하고, 그 이득 유지 때문에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그 가능성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게 왜 그럴까 생각해봤더니, 여튼 본능쪽인데 재미있는 방식을 발견함. 얘네들은 항상 뭔가를 예컨대 동네장사하는 식으로 파악함. 파이를 늘릴 생각은 안하고 있는 파이를 어떻게 분배하느냐 싸움이기 때문에 저쪽이 더 먹으면 상대쪽은 자연스레 덜먹을 수밖에 없음. 어떤 사람이 동네에서 곰탕을 판다. 그러면 그 곰탕 먹으러 오는 사람이 동네사람이겠지. 근데 이들은 곰탕을 맛있게 끓여서 동네사람 말고 타지 사람이나, 나아가서 외국인들도 먹으러 오게하겠다는 생각이 없음. 그래서 동네사람들이랑 정치질해서 옆집 세탁소 하는 아줌마, 앞집 회사다니는 아저씨 아들래미가 이웃이니까 내 곰탕 먹으러 오라 함. 곰탕을 맛있게 만들 생각은 없고, 아니 이웃사촌인데 내 곰탕 먹으러 와야지 어딜 가냐 기분 상한다. 이럼. 그래서 그런 피해 가능성이 단 하나라도 있으면, 그것은 나에게 또는 사회에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가능성 크기가 티끌만해도 없어야 한다. 없으려면 모두가 평등해야 함. 평등해지는 대신 모두가 가난 함. 또는 모두가 똑같이 조금씩 나아져야함. 얘네에게는 그게 진보일 따름임. 만약 티끌만이라도 더 피해 볼 가능성이 있으면 이들은 그것을 실제보다 규모를 키워서 정신으로 피해의식을 과하게 받고 신체증상으로도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우물 안 개구리들임. 근본적으로 위 곰탕 사례처럼 자신이 무능하기 때문임.
그리고 이런 것들은 굉장히 정치에서 빈번한 것들. 오래 전에 뉴스보다가 궁금해서 국회방송까지 찾아간 적이 있음 그리고 요사이 음모론자들 보다보면, 어떤 히스테리가 있다. 특히 성.폭력 관해서는 진짜 그 성.폭력은 당한 사람의 정신을 붕괴시키는 효과가 있어서 피해를 정말 받은 사람은 그 점에 대해서는 히스테리가 심함. 이런 모습은 x천 경찰서 모 사건에서 피해자인 사람이 국회에서 장관을 상대로 한 청문회 비슷한 것에서 히스테리 부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고, 이들은 자신의 피해에 대해서 언급하거나 좋지 않은 말을 할 시에 2차 가해라고 하면서 성역을 구축하거나 상대를 가해자로 몰아가는 그런 악마화하는 경향을 볼 수 있음. 한편 음모론자들이 자신들은 음모론자가 아니라고 하는 바를 볼 수 있음. 그리고 그 이유는 자신들은 실제 증거가 있다는 것인데, 그 증거를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에서 그들이 증거를 기반으로 했다는 주장들이 각하 혹은 기각당함. 그래서 이들은 법원을 악마화하는 효과가 있는 기존의 주장에 더 확신을 가짐. 그리고 전자 후자 모두 배웠다는 사람마저도 휩쓸림; 즉 사법고시 합격자다. 과학자다, 통계학자다, 여성학을 박사까지 받았다. 이런 사람들도 피해의식에 한 번 갇히면 순수와 신념과 평화와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거기에서 못빠져나옴. 한편 이는 여야를 막론함.
더군다나 법원관련해서는 웃긴 점이 있는데, 얘네들은 내편이니 적이니 이런 구분을 쉽게 함. 그래서 혼란에 빠짐. 사례가 있음.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직무대리해서 헌법재판소장 권한을 행사해. 직무대리한 그 분뿐만 아니라 다른 재판관들도 전원일치로 어떤 안건에 대해서 동일한 의견이었고, 당연히 소송지휘 등 권한행사의 내용에 동의했어. 그래 가지고 절차 속에서 여러 과정들을 거치고, 이윽고 대통령을 파면했어. 그럼 그 대통령 파면을 원하는 애들은 어딘가. 여당이지. 이후에는 그 재판관이 자기 편이됨. 자신의 어떤 신념과 정치이념 등이 옳다는 식으로 재판관이 활용됨. 근데 나중에 보면, 그 재판관 했던 사람이 다른 부분에서는 자신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함. 그런데 그가 동의하지 않는 부분은 자신들 편이었더라면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내용이야. 그럼 저번에는 자기편이였는 줄 알았더니 아니네? 이러면서 혼란스럽다가 그 재판관 욕함. 여당 말했으니까 야당도 말할 수 있지. 얘네들 중에는 요사이 음모론자들이라고 칭해지는 쪽에서 자주 발생하는데, 같은 야당에 속하고 야당 편이면서 자기들 편 안들면 여당 쁘락치라고 하거나 변절했다고 함. 그러니까 이들은 여전히 여야 막론하고 내편 니편 싸움이나 동네장사하는 식으로 놀고 있는데 자신들은 진지하고 순수하게 행동하고 있는거. 그래서 정치는 돌아가신 어떤 기업가 말대로 삼류임. 내 생각에는 삼류도 안됨.
이런 것들은 굉장히 좀 뭐랄까.......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임. 즉 뒤에 숨겨진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자신들이 발견한 증거들은 그들이 그들의 목적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숨기지 못하고 드러난 것들이고 그들의 목적대로 가게 되면 자신이 피해받고 사회가 피해받는다. 그리고 그런 드러난 것들에 대해서 자신들은 증거가 있다. 눈이 있으면 봐라. 이런 식으로 나오고 해석해버림. 이걸 요사이 야당 음모론자들이 하는데, 여당이라고 안했나? 걔들도 마찬가지로 공개해라! 공개해라! 라고 하면서, 법원 깔 때가 있었음. 마찬가지로 요즘 음모론자들도 공개해라! 공개해라! 똑같음 이놈들은. 나이가 먹어도 어떤 이는 그냥 인터넷에서 쫄? 이라면서 사람 긁기나 하는 사람이랑 진배없이 나오기도 하고. 얘네들은 존재 양식이 승리감정임. 그래서 자꾸 상대방에게 쫄았냐, 도망가지마라 이럼. 마치 그래주길 바라는 것 같은데, 상대가 도망가면 자기가 이긴 것이기 때문. 그래서 요사이 승리감정 좋아하면 그 사람이 어떤 스펙으로 어떤 위치에 있어도 짐승이라고 봐도 무방함.
그래서 이런 뭐랄까 사람 중심으로 그에 종속되어 여론을 만들어가거나 누구에게 들었다는 식으로 혹은 음모론을 발전시켜나가는 것들은 버리는 것이 경계라는 것. 그들의 바탕에는 느끼기.... 뭐 감탄, 인정, 평판, 이런 것들이 있음. 근데 이들은 진짜 거기에 위험성이 있고, 자신들은 확신하는데, 약간 한국인 종특같이 "네가 몰라서 그러는 거지, 알면 그렇게 나올 수 없다" 즉 너는 계몽이 안되었고 자각이 안되어서 모르는 거다. 이렇게 나옴. 그런데 똑같은 말을 해도 그들은 그 주장들을 어떤 자신의 체감, 느낌, 집단인정, 피해의식 등에서 도출한다는 것이 문제임. 이들의 입장에서는 내용은 느끼는 것임. 자신이 받은 어떤 체험적인 면모로 채우기도 함. 그게 아니더라도, 진짜 감각에 쏠려 있음. 근데 그 감각이 방향지은 바는 자신이 설정한 것이 아님. 유튜브에서 어떤 사람이 주장으로 감각이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방향을 설정 해줌.
그래서 경계를 구획하는 사람은 내용이 없어야 됨. 그런 느끼는 식 혹은 다수의 여론에 빠져드는 것 또는 피해의식에 휩싸이는 등의 내용이 있으면 편견을 받음. 해야할 건 그저 내용을 볼 뿐이여야 하는 것. 여기서 본다는 것은 감각으로 하는 것은 아님.
따라서 아래 검열글에서, 사람에게 종속되었고 피해의식을 담은 그 의도추론을 자꾸 하는 바를 고려하되 피해의식에 의해서 느끼는 것들, 뭐 어떤 본능적으로 또는 감정적으로 체감하고 이를 경험으로 피해의식을 표상지어서 과거를 덧붙이는 것들을 자신의 내면에서는 제거하라는 것임. 이런 방식이 요사이에는 되게 중요하다고 보여지는데, 왜냐하면 이제 인터넷이냐 유튜브 등 플랫폼이나 sns로 사람 간 상호작용이 너무 활발하다는 점 때문임. 온라인에서 대화를 하는데, 기존에는 그 대화 뒤에 인간이 있다는 점때문에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가면 원활한 대화가 되었음. 그런데 이제는 똑같이 그 대화 뒤에 인간이 있다는 점 때문에 피해의식을 잘 키우고 피해의식에 따른 의도추론을 계속 하게 됨. 예전 방식이 좋았다가 이제는 안좋아졌다는 뜻임. 그래서 전에는 딱히 좋게 말한다는 생각이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말해도 잘 통했던 것들이, 이제는 그렇지 않음. 어떤 이는 자연스러운 사람은 그렇게 딱딱할 수 없다면서 원래 인간본성상 사람은 악하다는 전제를 깔고 나와서 그 사람이 실은 악함을 숨기고 선량한 척을 한다는 식으로 나옴.
예전에도 말했던 바, 편의점에 물건을 살 때 그냥 편의점 가서 물건 사고 나오는 거임. 자신의 느낌이나 내가 원하는 바대로 하는데 그 내용이 절도라는 측면으로 사람 본성은 원래 악한데, 그걸 누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내용이 몸에 익은 사람들이 있음. 즉 이들은 몸으로 먼저 감정이나 본능적인 부분을 느끼고, 그 다음 그걸 생각이라면서 생각 내용으로 제시하는 것. 그러면 편의점에서 절도하는 사람도 이해가 가버리는 것. 또한 원래는 인간 세상이 누가 누구를 누르고, 누가 누구를 지배하기 위한 권력쟁투의 상황인데 내가 절제하고 내가 성숙해져서 이제는 타인들에게 관용을 배푼다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함. 이건 애초부터 위에서 말했듯 인간본성은 악하다라는 출발점을 계속 지키고 있을 때임. 그리고 한편으로 나는 악하지 않은데 쟤는 악하기 때문에, 혹은 자신도 과거에 악했는데 그래서 악함을 잘 알고 있다는 식으로, 혹은 선악은 없다는 식으로 인간본성측면에서 이런 식으로 느껴버리는 바를 몸에 붙여 가지고 확신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면모를 볼 수 있음. 벗어나면 이 사람들은 선량한 행동을 하다가 중간에 어떤 렉걸린 것처럼 어색해하고, 이게 몸에 맞지를 않아서 자꾸 상대방에게도 악한 점이나 인간 본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서 그걸 조금씩 공유한 다음 악함으로 다같이 들어가려고 함. 왜냐하면 그래야 자신도 편하고, 그들의 호응으로 확신강화도 되는 효과가 있음. 이런 바를 뭐 이들이 의도적으로 생각해서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봄. 이들은 자동적으로 함.
그렇기 때문에 이런 피해의식 측면에서는 어떤 기질에서 모두 연결되고, 자신으로부터 모두 연결되는 그런 파악방법을 버려야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예측하지 못하는 불상사는 항상 발생해서 막을 수 없음. 정해진 경로로만 걷기 위해, 예측하지 못하는 바를 최대한 막아서 최대한 예측되는 범위를 늘리겠다는 방법은 써야하고 중요하지만, 그 방법을 쓰면서도 그 동기 자체가 사람이 피해의식으로 느끼거나 예측 범위를 벗어나면 그 범위를 일탈한 그 무엇을 싫어하는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 그거는 수렁에 빠지는 것이라고 생각함. 애초부터 막을 수 없는 것까지 막으려하는 것이 이상한 거임. 이런 점이 꼭 특정 부분 그러니까 특정한 사회적 사건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글도 마찬가지임. 문법나치식 문법 지적, 비문 지적, 정리된 글만 보는 것은 얘네들이 히스테리적이기 때문임. 단어가 써져있는데, 정의가 안쓰여졌어. 그럼 이 사람은 애초에 자신에게 편리하게 단어정의까지 모조리 써져있어야 하는데 안써져있으니까 짜증남. 옛날에 어떤 이는 자신이 왜 이런 사항들에 좋지 않은 감정을 느끼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바도 자주 목격함. 이런 사람들이 요사이 늘어나는데, 그거 그냥 시대상황에 물들은 거. 그 시대상황은 위에서 말한 바대로 인터넷 상호작용이 너무 활발한데 거기서 피해의식을 가득 가져온다는 점에서 나옴. 그럼 뭐... 특정 영역에서 피해의식 가득한 사람끼리 만나서 서로 똥꼬빨아주면서 호응적 상호작용하고, 그 상호작용내용대로 나가는 것임. 예컨대 단어정의를 해야 돼. 그럼 단어정의 한 학자들 찾아. 찾아서 이 봐봐라 얘도 하지 않느냐하면서, 이제 단어정의를 하는 것은 당연한거야. 근데 이게 시야가 좁은 거지. 다른 학술서적은 안하고 있으니까. 뭐 전라도에서 곰탕파는데, 곰탕을 어떻게 끓여. 그거보고 이 봐봐라 곰탕은 이렇게 끓이는 것이다~라고 하지만, 충정도랑 경상도 서울 경기남부 북부, 인천 혹은 다른 어딘가를 가면 전라도식으로 곰탕 안끓여버리지. 무국마저도 경상도는 빨갛고 다른 곳은 아닐 수 있지. 근데 우물안 개구리라서 그게 맞는거야 얘네는. 그리곤 그런 약간 농경사회식 파악방법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 외에 것들에 대해서는 피해의식 더 묻혀버리지. "먹을 줄 모르는 구만" 이런 식? 비문 지적, 문법 지적, 정리된 글을 쓰는 것 모두 마찬가지야. 공통점은 여하튼 피해의식으로 만들어진다. 굉장히 수사학적이기만하지, 얘네들이 별도로 왜?를 묻지 않는다. 왜?를 물어도, "아 모르겠고 그냥 짜증나!"라는 식의 히스테리 발현의 결과다.
지금 당장 밖에 나가서 걷다가 어떤 돌은 사람이 나와서 위해를 끼치고 사라질 수 있음. 그럼 그 위해를 어떻게 막느냐. 못막음. 그런데 그거를 막아야 한다고, 사전예방 했더라면, 국가가 제도적으로 예방했더라면 내가 이런 꼴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면서 그것을 어떤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하며 막을 수 있었던 바로 정하고 스스로 피해의식으로 들어 감. 그럼 뭐 인생 힘들어지는 거임. 예컨대 이들이 어떤 권한을 잡았다. 예전 글에 썻듯 이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권한을 가졌다고하면, 그 온라인 공간은 이제 피해의식에 따라서 표면적으로 평화를 구축한 공간만 되는 것. 그러면 그 공간은 그냥 운영하는 사람 피해의식이 어떤 내용인지에 따라서 해도되는 것과 하면 안되는 것이 정해지고 얘네들은 이걸 구조적으로 무언가를 만든다고 표현하는데 그거 그냥 걔네들이 인터넷에서 받아온 피해의식 구조임. 그에 반하면 다 강퇴이기 때문에 어떻게 되겠어. 다 강퇴하면 자연스럽게 평화로워지는 거고. 그런 분위기 읽은 사람은 말을 않거나 그 공간에 들어가질 않겠지. 한 공간에 함께 있어도 서로 오래 붙어있지를 못하는 상황은 요사이 많이 벌어짐. 적당히 거리 유지하면서, 그러나 속으로는 인간을 간절히 원하며. 그런 느슨한 연대를 유지하며... 그런 것들 또한 유행 비슷하게 자신의 정신구조가 다른 것이 아니고 사람들의 피해의식에 의해서 전이되어 바뀐 것임은 모르니까 인생이 힘들지. 피해의식이 많은 거는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에 도움이 되는 바가 없음. 따라서 그에 기반한 것들은 검열이든 뭐든 버려야함.
아 재밌는 생각이 더 떠올랐음. 위 글은 전반적으로 피해의식 중심이야. 그리고 이 피해의식은 본능에서 도출된다는 것인데, 타인에게서 전이되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다라는 것이지.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지니까, 요사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뭐 이상한 애들 말 받아다가 오면 자신의 피해의식도 점증하는 거임. 근데 말이지. 이런 것들이 좀 뭐랄까......... 굉장히 여성적이다. 여성적으로 보인다......
여자는 여자들끼리 표면적으로 잘 지내는 것 같아. 나 예전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 처음 봤던 현상인데 다들 끄덕일 수 있는 내용이 있다. 여자들은 옆에 앉은 여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초반에 급속도로 친해짐. 재수학원에 갔더니 한 반에 한 50명 있어. 별론으로 거기서 인서울 5명함. 45명은 서울에 사는데 대진대가는 식으로 지방유배 감. 여하튼 이들이 처음 반이 구성되었을 때, 좀 옆에 사람이랑 말하라고 담임이 전달하고 나가니까, 남자들은 가만히 있고, 여자들은 바로 그냥 옆에 있는 애랑 친해진다.
근데 이런 친밀함이 위장인게, 얘네들은 그런 공적관계 비슷한 상황에서는 친하게 보여. 근데 얘네들이 뭐 같이 몇 박 며칠로 함께 여행을 갔다, 혹은 사적 관계를 같은 공간에서 오랜 기간 공유하고 있다 그러면 그간 친했을 때의 그 관계가 깨져버림. 오래 붙어있지를 않아. 얘네들이 친한 건 함께 있을 수밖에 없을 때 표면적 평화를 유지할 때 뿐임. 만약 걸그룹이 활동하며 같이 있다가 나갔어. 그럼 갑자기 누가 누구를 저격해ㅋㅋ 이런 거지. 나이가 미성년자에 가까우면 또 쉽게 하다가도 늙으면 못하는 것 같음. 근데 여자가 남친을 사귀었어. 사적관계로 들어왔어. 그럼 남자가 뭐하냐. 맞춰주는 걸 업으로 삼는 노동자가 되는 것.
우리 남자들은 이런 인간관계 측면에서는 띵킹이 없단 말이야. 그래서 여자들은 이런 남자들 보고 바보같다고 하지만, 그 여자들도 대개는 이름 모를 대학 나왔는데 누가 누구더러 바보라고 하냐. 야이 씨 10개월, 2년 3년 공부했는데 평균 3등급 정도가면 잘 간 사람이 과반은 훨씬 넘을 거임. 과반이 뭐야? 더 되겠지. 한국 최고학군이라는 강남 대치동에서 수천 만원 부으면서 공부했다는 애들도 50%밖에 인서울을 못하고 n수 테크타거나 도피유학 가는데, 그 외 지방은 어떻겠냐. 도피 유학도 못하거니와 공부만하면 다 성적 잘받는 줄 알아 버리는데 이게 그럼 바보지 뭐야.
여하튼 이런 여자들은 피해의식이 심하다는 것이지. 예컨대 중년 여성이 남편이랑 싸웠어. 그럼 갑자기 한 20년치 레파토리 다 나와. 원래 여자는 저런 피해의식이 쎄다. 그래서 감정적으로 불안하고 오늘도 안전하게 집에 귀가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하면서도 뭐.... 새벽에도 싸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자신이 느낀 것에만 피해의식이 발휘된다는 것이지. 그럼 이들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많이해. 실제로 여자들 많이 함. 어떻게 되겠냐. 피해의식 잘받아다가 오겠네. 공기만 맞아도 아프겠네.
여자들끼리 피해의식이 오지니까 사적관계, 집단생활. 이런 걸 못하는 거야. 반면에 남자는 뭐야. 군대만 갔다와도 얘네들은 노띵킹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빤스만 입고 방구석 구르는 애들인 걸 알고 스스로도 그렇게 여긴다. 그럼 이런 여자랑 남자랑 만나면, 누가 받아주는 입장이냐. 남자가 받아주겠지 뭘. 근데 요사이는 어떻게 돼. 남자도 피해의식이 쎄가지고 위 본문 내용과도 같이 표면적인 평화를 구축함. 이건 뭐야 여자가 초반에는 빠르게 친해지는 것이랑 같지. 근데 이들은 속으로는 거리를 유지하고, 끝내 친해질 수 없음. 애초에 겉만 평화로웠지, 내면은 자신의 정체성이나 어떤 캐릭터가 있고 그것으로 인하여 확신과 고집이 쎔. 이를 기반으로 사적관계 가 버리면 자신의 모습, 자신의 행동과 다른 것들은 다 쳐 내는 것이지. 이런 아묻따 mute 전략을 보이는데, 그냥 음소거 처리하는 게 아니라 얘가 남자인데 쾌락주의이고 감정이 많고 내면적이야. 그러면 빼박이지 뭐. 한편으로 만약에 동거하거나 결혼하면 옘병할 옷을 어떻게 걸어놨고, 치약을 아래에서 짯니 중간에서 짯니 하면서 쓰잘데기 없는 것으로도 싸우지. 원래는 남자가 맞춰주는 형태였는데 이제 될까. 피해의식에 기반한 기싸움 오지게 하면서, 서로 자유를 외치는데 그 자유가 겹치는 부분에서는 자기 주장하면서 서로 물러서지를 않을텐데. 성격차이로 인한 이혼은 이런 측면을 봐야하지 않나.
피해의식이 좋은 거냐? 그게 시대상황이라면 버려야할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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