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신이 존재하느냐를 묻는다
근데 내가 보기엔 그 질문은 좀 핵심을 비껴간거 같음
진짜 중요한건
신이 있냐 없냐
그 자체라기보다
신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
설령 존재한다면 왜 인간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이쪽에 더 가까운거 같음
인간은 옛날부터 신을 상상해왔음
자기보다 크고 강하고
모든걸 알고
때로는 자기를 구원해주는 존재
근데 가만히 보면 이 상상 자체가 좀 많이 인간 중심적임
우주 바깥 어딘가에 절대적인 존재가 있다고 쳐보자
그런 존재가 왜
이 지구 위의 작은 생명체
그것도 특정한 한 인간의 소원, 감정, 고통, 바람 같은걸
일일이 챙겨야 하지?
왜 누군가의 취업
연애
성공
실패
후회
이런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에까지 개입해야 하지?
이쯤 되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인격신이라는건
진짜 신이라기보다
인간이 스스로를 좀 특별한 존재로 느끼고 싶어서 만든 상상에 더 가까운거 같기도 함
그리고 진짜 인간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돌보는 신이 있다면
애초에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싶음
인간에게 이기심을 주고
탐욕을 주고
질투와 분노와 집착을 주고
서로 상처 입히며 살아가게 했을 이유가 뭘까?
왜 세상은 파라다이스가 아니고
왜 고통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인간 삶에 박혀있고
왜 선한 사람도 무너지고
왜 아무 잘못 없는 사람들이 큰 고통을 당하고
왜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너무 불리한 판 위에 올라와야 할까?
만약 신이 전지전능하고
선하고
동시에 인간을 사랑하고 세심하게 돌보는 존재라면
이런 세상을 만들었을리가 없음
만들 수 있는데도 이렇게 만든거면 선함이 흔들리고
만들고 싶었는데 못 만든거면 전능함이 흔들림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결국엔 신이 아니라 우주의 법칙임
변하지 않고
누구 편도 안 들고
기도한다고 봐주지도 않고
원망한다고 흔들리지도 않는 어떤 질서
그건 누군가 기분 따라 움직이지 않음
그냥 작동함
인간이 슬퍼하든 기뻐하든
믿든 안 믿든
그대로 흘러감
어쩌면 진짜 있는건 신이 아니라
이런 법칙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음
설령 신이 있다 해도 인간에게는 별 관심 없고
법칙만이 세계를 굴리고 있을 가능성이 더 커보였고
더 급진적으로 말하면
신은 없고
오직 우주의 법칙만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음
근데 또 이 법칙이라는게
막 거창하고 신비한 무슨 비밀 공식 같은게 아님
오히려 너무 단순해서
모든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알고 있음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이걸 하면 저게 된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
인이 있으면 과가 있다
사실 이게 전부인거 같음
애기때부터 배운거지.
울면 누군가 온다
불에 손대면 뜨겁다
욕심을 부리면 불안이 따라온다
거짓을 쌓으면 언젠가 틀어진다
집착하면 괴롭고
놓으면 좀 가벼워진다
사람은 처음부터 인과 속에서 살아가고
인과의 감각으로 세계를 배움
근데 웃긴건
다들 이걸 알면서도 자꾸 흐림
몰라서가 아니라
자기 욕망 때문에 인정하기 싫은거지
나는 예외일거라고 믿고
이번만큼은 괜찮을거라고 믿고
이 집착은 사랑이라고 포장하고
이 분노는 정당하다고 합리화함
인간은 법칙을 모르는게 아니라
알면서도 자꾸 비틀어 봄
그렇다면 깨달음이라는건 뭘까
뭐 숨겨진 비밀을 전달받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계시를 얻는 것도 아닌거 같음
이미 다들 어렴풋이 알고 있는 이 인과를
왜곡 없이
개입 없이
가장 맑은 상태로 보는 것
그게 더 맞는거 같음
보통 인간은 자기 욕망이랑 공포랑 집착이랑 자아를 통해 세계를 편집해서 봄
원인을 원인으로 못 보고
결과를 결과로 못 받아들임
근데 어떤 사람은 그런 잡음을 좀 걷어내고
있는걸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거 같음
인이 있으면 과가 있다는
이 단순하고도 냉정한 법칙을 끝까지 받아들이는 사람
내가 보기엔 그런 사람이 깨달았다고 불리는거 같음
그러면 예수나 석가모니 같은 성인들도 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함
하늘에서 특별한 권능 받아 내려온 존재라기보다
우주의 법칙과 마음의 인과를 누구보다 깊이 본 사람들
나는 오히려 이쪽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짐
석가모니는 창조주를 말하기보다
고통의 원인과 고통의 소멸을 말했음
집착이 고를 낳고
무지가 윤회를 낳고
인연 따라 생긴 것은 인연 따라 사라진다는 것
그러니까 믿으라고 했다기보다
보라고 한 쪽에 더 가까운거 같음
예수도 전통 종교의 테두리를 잠깐 벗겨놓고 보면
존재와 사랑의 질서
인간 마음의 어리석음과 위선을 깊이 본 사람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거 같고
신이 있든 없든
법칙은 작동하니까
누가 나를 구원해주냐보다
이 세계가 어떤 구조로 굴러가고
나는 그 안에서 어떻게 살고 있냐
이게 더 중요해 보였음
구원이라는게 있다면
누가 밖에서 내려주는 선물이라기보다
인과를 똑바로 보고
그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데서 오는 결과 쪽 아닐까 싶음
그러면 깨달은 자라는 것도
신의 대리인 같은거라기보다
우주의 법칙을 남들보다 덜 흐리게 본 인간쯤 되는거 같음
어떠한 집착도 없고, 자아의 개입 없이
인과를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
그런 사람은 인간 중에서는 제일 신에 가까워 보일 수도 있을거 같음
신이 진짜 있든 없든
인간이 닿을 수 있는 제일 높은 곳이 있다면
아마 저런 상태 아닐까 싶음
중요한건 뭘 지배하는 힘이 아니라
있는걸 있는 그대로 끝까지 보는 힘
내가 말하는 깨달음도 아마 그런거고
인간이 신에 제일 가까워진다고 하면 그런 식일거 같음
이걸 귀칼에 대입해보면,
코쿠시보와 요리이치의 차이는
단순히 재능이나 수련량 차이로만 보긴 어려운거 같음
코쿠시보는 끝없이 더 강해지고
더 완전해지고
끝내 그 경지에 도달하려 했던 자였음
근데 오히려 바로 그 집착 때문에
인과와 흐름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던거 같음
반면 요리이치는 자아의 개입이 거의 없이
세계가 흘러가는 결 자체를 더 맑게 본 쪽에 가까워 보임
그래서 결국 둘의 차이는 힘의 차이라기보다
집착이 낀 눈이었냐
아니면 그게 걷힌 눈이었냐의 차이였던거지
그러니까 진정한 의미의 깨달은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였던거 같음.
뭐 귀칼 다시 보다가 든 생각들 정리해봤음.
잘 봤다
좋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