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아함경(中阿含經) 제1권
이 『중아함경』은 동진(東晋) 효무제(孝武帝)와 안제(安帝) 시대인 융안(隆安) 9년 11월부터 2년 6개월에 걸쳐 동정사(東亭寺)에서 완료한 것이다. 계빈(罽賓) 삼장 구담(瞿曇) 승가제바(僧伽提婆)가 번역하고 도조(道祖)가 필수(筆受)하였다.
1. 칠법품(七法品) 제1①
선법경(善法經)ㆍ주도수경(晝度樹經)과
성유경(城喩經)ㆍ수유경(水喩經)ㆍ목적유경(木積喩經)과
선인왕경(善人往經)ㆍ세간복경(世間福經)
칠일경(七日經)ㆍ칠거경(七車經)ㆍ누진경(漏盡經)이다.
1) 선법경(善法經)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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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 경은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제33권 제39품인 「등법품(等法品)」의 첫 번째 소경의 내용과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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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비구가 일곱 가지 법(法)을 성취한다면, 곧 현성(賢聖)의 도(道)에 환희를 얻어서 바로 누진(漏盡)의 경지에 나아가게 될 것이다. 어떤 것이 그 일곱 가지인가? 이른바
비구가 법을 알고[知法]
뜻을 알며[知義]
때를 알고[知時]
절제할 줄 알며[知節]
자기를 알고[知己]
무리를 알며[知衆]
사람의 잘나고 못남을 아는 것[知人勝]이다.
어떤 것을 비구가 법을 안다고 하는가?
정경(正經)ㆍ가영(歌詠)ㆍ기설(記說)ㆍ게타(偈咃)ㆍ인연(因緣)ㆍ찬록(撰錄)ㆍ본기(本起)ㆍ차설(此說)ㆍ생처(生處)ㆍ광해(廣解)ㆍ미증유법(未曾有法) 및 설의(說義)를 아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법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법을 모른다면 그는 정경ㆍ가영ㆍ기설ㆍ게타ㆍ인연ㆍ찬록ㆍ본기ㆍ차설ㆍ생처ㆍ광해ㆍ미증유법 및 설의를 모르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법을 잘 안다면, 그는 정경ㆍ가영ㆍ기설ㆍ게타ㆍ인연ㆍ찬록ㆍ본기ㆍ차설ㆍ생처ㆍ광해ㆍ미증유법 및 설의를 아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법을 잘 아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비구가 뜻을 아는 것이라 하는가? 이른바 비구가 이러이러한 말의
뜻에 대하여, 이것은 저런 뜻이고 이것은 이런 뜻임을 아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뜻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뜻을 모른다면, 그는 이러이러한 말의 뜻에 대하여, 이것은 저런 뜻이고 이것은 이런 뜻임을 모르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뜻을 모르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뜻을 잘 안다면 이른바 그는 이러이러한 말의 뜻에 대하여 이것은 저런 뜻이고 이것은 이런 뜻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것을 비구가 뜻을 잘 아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비구가 때를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비구가 지금은 하상(下相)을 닦아야 할 때이고 지금은 고상(高相)을 닦아야 할 때이며 지금은 사상(捨相)을 닦아야 할 때임을 아는 것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때를 알지 못한다면 그는 지금은 하상을 닦아야 하고 지금은 고상을 닦아야 하며 지금은 사상을 닦아야 할 때임을 모르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때를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때를 잘 안다면 그는 지금은 하상을 닦아야 하고 지금은 고상을 닦아야 하며 지금은 사상을 닦아야 할 때임을 아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때를 잘 아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비구가 절제할 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비구가 절제할 줄 알아 마시거나 먹거나 떠나거나 머물며 혹은 앉거나 눕거나 말하거나 침묵하며 혹은 대소변을 보며 잠을 덜 자고 바른 지혜를 수행하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절제할 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절제할 줄 모른다면 그는 마시거나 먹거나 떠나거나 머물며 혹은 앉거나 눕거나 말하거나 침묵하며 혹은 대소변을 보며 잠을 덜 자고 바른 지혜를 수행할 줄 모르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절제할 줄 모르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절제할 줄 안다면 이른바 그는 마시거나 먹거나 떠나거나 머물며 혹은 앉거나 눕거나 말하거나 침묵하며 혹은 대소변을 보며 잠을 덜 자고 바른 지혜를 닦을 줄 아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절제할 줄 아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비구가 자기를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비구가 스스로 나에게는 저러한 믿음ㆍ계율ㆍ지식과ㆍ보시ㆍ지혜ㆍ변재(辯才)ㆍ아함(阿含), 그리고 소득이 있음을 아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자기를 아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자기를 모른다면 이른바 그는 스스로 나에게는 저러한 믿음ㆍ계율ㆍ지식ㆍ보시ㆍ지혜ㆍ변재ㆍ아함, 그리고 소득이 있음을 모르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자기를 모르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자기를 잘 안다면, 이른바 그는 스스로 나에게는 저러한 믿음ㆍ계율ㆍ지식ㆍ보시ㆍ지혜ㆍ변재ㆍ아함, 그리고 소득이 있음을 아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자기를 잘 아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비구가 무리를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비구가 ‘이것은 찰리(刹利)의 무리이고 이것은 범지(梵志)의 무리이며, 이것은 거사(居士)의 무리이고 이것은 사문(沙門)의 무리이다. 나는 저 무리들이 이와 같이 다니고 이와 같이 머무르며 이와 같이 앉고 이와 같이 말하며 이와 같이 침묵하는지를 안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무리를 아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무리들을 모른다면, 이른바 그는 ‘이것은 찰리의 무리이고 이것은 범지의 무리이며 이것은 거사의 무리이고 이것은 사문의 무리이다. 나는 저 무리들이 이와 같이 다니고 이와 같이 머무르며 이와 같이 앉고 이와 같이 말하며 이와 같이 침묵하는지를 모른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무리를 모르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무리들을 잘 안다면 ‘이것은 찰리의 무리이고 이것은 범지의 무리이며, 이것은 거사의 무리이고 이것은 사문의 무리이다. 나는 저 무리들이 이와 같이 다니고 이와 같이 머무르며 이와 같이 앉고 이와 같이 말하며 이와 같이 침묵하는지를 안다’고 할 것이다. 이것을 비구가 대중을 잘 아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비구가 사람의 잘나고 못남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비구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믿음이 없는 사람임을 아는 것이다. 만일 믿음이 있는 사람이면 훌륭하다 하고, 믿음이 없는 사람이면 그보다 못하다고 한다.
믿음이 있는 사람에도 두 종류가 있으니, 자주 가서 비구를 보는 사람이 있고 자주 가서 비구를 보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만일 자주 가서
비구를 보는 사람이면 훌륭하다 하고, 자주 가서 비구를 보지 않는 사람은 그보다 못하다고 한다.
자주 가서 비구를 보는 사람에도 두 종류가 있다. 비구에게 예경(禮敬)하는 사람이 있고 비구에게 예경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니, 만일 비구에게 예경하는 사람이면 훌륭하다 하고 비구에게 예경하지 않는 사람이면 그보다 못하다고 한다.
비구에게 예경하는 사람에도 두 종류가 있으니, 경(經)을 묻는 사람이 있고 경을 묻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만일 경을 묻는 사람이면 훌륭하다 하고 경을 묻지 않는 사람이면 그보다 못하다고 한다.
경을 묻는 사람에도 두 종류가 있으니, 일심으로 경을 듣는 사람이 있고 일심으로 경을 듣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만일 일심으로 경을 듣는 사람이면 훌륭하다 하고 일심으로 경을 듣지 않는 사람이면 그보다 못하다고 한다.
일심으로 경을 듣는 사람에도 두 종류가 있으니, 듣고서 법을 지니는 사람이 있고 듣고도 법을 지니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만일 듣고서 법을 지니는 사람이면 훌륭하다 하고, 듣고도 법을 지니지 않는 사람이면 그보다 못하다고 한다.
듣고서 법을 지니는 사람에도 두 종류가 있으니, 법을 듣고서 뜻을 관하는 사람이 있고 법을 듣고도 뜻을 관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만일 법을 듣고서 뜻을 관하는 사람이면 훌륭하다 하고, 법을 듣고도 뜻을 관하지 않는 사람이면 그보다 못하다고 한다.
법을 듣고 뜻을 관하는 사람에도 두 종류가 있으니, 법을 알고 뜻을 알며 법에 향하고 법에 머물며 법을 따르고 법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있고, 법도 모르고 뜻도 모르며 법에 향하지도 않고 법에 머물지도 않으며 법을 따르지도 않고 법대로 실천하지도 않는 사람이 있다. 만일 법을 알고 뜻을 알며 법에 향하고 법에 머물며 법을 따르고 법대로 실천하는 사람이면 훌륭하다 하고, 법도 모르고 뜻도 모르며 법에 향하지도 않고 법에 머물지도 않으며 법을 따르지도 않고 법대로 실천하지도 않는 사람은 그보다 못하다고 한다.
이른바 법을 알고 뜻을 알며 법에 향하고 법에 머물며 법을 따르고 법대로 실천하는 사람에도 두 종류가 있으니, 자기 자신을 요익(饒益)하게 하고 남도 요익하게 하며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고 세간을 불쌍히 생각하고 가엾게 여기며 하늘과 사람을 위해 이치를 구하거나
요익하게 되기를 바라며 안온하고 쾌락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고, 자기 자신도 요익하게 하지 않고 또 남도 요익하게 하지 않으며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지도 않고 세간을 불쌍히 생각하고 가엾게 여기지도 않으며 하늘과 사람을 위해 이치를 구하거나 요익하게 되기를 바라지도 않으며 안온하고 쾌락해지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도 있다.
만일 자기 자신도 요익하게 하고 남도 요익하게 하며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고 세간을 불쌍히 생각하고 가엾게 여기며 하늘과 사람을 위해 이치를 구하거나 요익하게 되기를 바라며 안온하고 쾌락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면, 이 사람은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으뜸이 되고 큰 사람이 되며 위[上]가 되고 최고가 되며 훌륭한 사람이 되고 존경받는 이가 되며 미묘한 사람이 된다.
비유하면 소[牛]로 인해 젖[乳]이 있고 젖으로 인해 낙(酪)이 있으며 낙으로 인해 생소(生酥)가 있고 생소로 인해 숙소(熟酥)가 있으며 숙소로 인해 소정(酥精)이 있게 되는데, 소정은 그 가운데서 가장 으뜸이 되며 큰 것이 되고 위가 되며 최고가 되고 훌륭한 것이 되며 높은 것이 되고 뛰어난 것이 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사람이 자기 자신도 요익하게 하고 또 남도 요익하게 하며,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고 세간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가엾게 여기며 하늘과 사람을 위해 이치를 구하거나 요익하게 되기를 바라며 안온하고 쾌락해지기를 바란다면, 이 두 종류의 사람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고 위에서 분별한 것과 같으며 위에서 시설(施設)한 바와 같다. 이것이 곧 첫째가 되며 큰 것이 되고 위가 되며 최고가 되고 훌륭한 것이 되며 존경 받는 사람이 되고 뛰어난 것이 된다. 이것을 비구가 사람의 잘나고 못남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2) 주도수경(晝度樹經)2) 제2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삼십삼천(三十三天)에 있는 주도수(晝度樹)3) 잎이 시들어 노래지면, 삼십삼천 대중들은 머지않아 그 나뭇잎은 반드시 떨어지리라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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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이 경은 『증일아함경』 제33권 제39품인 「등법품」의 네 번째 소경의 내용과 동일하다.
3)파리질다(波利質多, pārijāta)나무라고도 하며 향변수(香遍樹)라고 번역한다. 콩과에 소속된 식물로서 인도 히말라야 산 아래 스리랑카ㆍ버마ㆍ말레이시아ㆍ자바 등지에 서식한다. 나무의 줄기는 높고, 껍질은 엷은 회색이며, 작은 가시가 많다. 잎은 우상엽(羽狀葉)이고 꽃은 주머니 모양으로 크고 붉으며 매우 아름답다. 이 나무는 도리천(忉利天) 제석궁(帝釋宮)인 선견성 동북쪽에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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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삼십삼천에 있는 주도수 나뭇잎이 떨어지고 나면 이때에도 삼십삼천 대중들은 그 나뭇잎은 머지않아 반드시 다시 피어날 것이라고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또 삼십삼천에 있는 주도수 나뭇잎이 피어나면 이때에도 삼십삼천 대중들은 그 나무는 머지않아 반드시 잎이 피어 그물처럼 덮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다시 삼십삼천에 있는 주도수가 잎이 피어 그물처럼 덮으면 이때에도 삼십삼천 대중들은 그 나무는 머지않아 새부리 같은 꽃봉오리를 틔울 것이라고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다시 삼십삼천에 있는 주도수가 새부리 같은 꽃봉오리를 틔우면 이때에도 삼십삼천 대중들은 그 나무는 머지않아 반드시 발우처럼 생긴 꽃을 피울 것이라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또 삼십삼천에 있는 주도수가 이미 발우처럼 꽃을 피우면, 이때에도 삼십삼천 대중들은 그 나무는 오래지 않아 반드시 꽃이 활짝 필 것이라고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만일 주도수의 꽃이 활짝 피면 100유연(由延:由旬) 안에 그 광명을 비추고 그 빛깔이 비치며 그 향기가 두루 풍긴다. 이때에 삼십삼천 대중들은 여름 넉 달 동안 하늘의 5욕(欲)의 공덕(功德)을 구족하였으므로 스스로 즐기고 기뻐한다. 이것을 삼십삼천 대중들이 주도수 밑에 모여 즐기고 기뻐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이치와 같이 성인[聖]의 제자들에게 있어서도 그러하여 그들이 출가하기를 생각하면, 이때 거룩한 제자들을 엽황(葉黃)이라고 부르는데, 마치 삼십삼천에 있는 주도수 나뭇잎이 시들어 누렇게 되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다시 거룩한 제자들이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捨舍] 집 없이 도를 배우게 되면, 이때 거룩한 제자들을 엽락(葉落)이라고 부르는데, 마치 삼십삼천에 있는 주도수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다시 거룩한 제자들이 탐욕을 끊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며,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초선(初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닐게 되면
이때 거룩한 제자들을 엽환생(葉還生)이라고 부르는데, 마치 삼십삼천에 있는 주도수 나뭇잎이 다시 나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또 거룩한 제자들이 각과 관이 이미 그쳐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第二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닐게 되면 이때 거룩한 제자들을 생망(生網)이라고 부르는데, 마치 삼십삼천에 있는 주도수에 잎이 그물처럼 덮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또 거룩한 제자들은 기쁨의 탐욕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저 성인이 말한 성인의 평정[捨]ㆍ기억[念]ㆍ즐거움에 머묾[樂住]ㆍ공(空)을 갖추어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닐게 되면 이때 거룩한 제자들을 생여조훼(生如鳥喙)라 부르는데, 마치 삼십삼천에 있는 주도수가 새부리 같은 꽃봉오리를 내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또 거룩한 제자들은 즐거움도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근본은 이미 다 멸한 상태이다. 그리하여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捨]ㆍ기억 [念]ㆍ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닐게 되면, 이때 거룩한 제자들을 생여발(生如鉢)이라고 부르는데, 마치 삼십삼천에 있는 주도수가 발우와 같은 꽃을 피우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다시 거룩한 제자들은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고,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을 이루어 현재에 있어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며 성취하여 노닌다. 그래서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梵行)이 이미 서고 해야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뒷세상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뜻을 알게 되면 이때 거룩한 제자들을 진부개(盡敷開)라고 부르는데, 마치 삼십삼천에 있는 주도수가 꽃을 활짝 피운 것과 같은 경우이다.
그가 번뇌가 다한 아라하비구(阿羅訶比丘)가 되면 삼십삼천 대중들은 선법정전(善法正殿)에 모여 칭송하고 찬탄한다.
‘저 아무개 높은 제자는 아무개 마을에서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게 되었다.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고 심해탈과 혜해탈을 성취하여 현재 세계에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해 노닌다.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해야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뒷세상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뜻을 알았다.’
이것을 번뇌가 다한 아라하(阿羅訶)의 모임이라고 하니, 마치 삼십삼천 대중들이 주도수 밑에 함께 모인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3) 성유경(城喩經)4) 제3 초 1일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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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이 경은 『증일아함경』 제33권 제39품인 「등법품」의 세 번째 소경의 내용과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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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왕의 변성(邊城)이 일곱 가지 일[七事]을 구족하면 네 가지 식량[四食]의 풍요로움을 얻기 어렵지 않게 된다. 그런 까닭에 왕성(王城)은 오직 안에서 스스로 무너지기 전에는 외적 때문에 부서지지는 않는다.
왕성이 일곱 가지 일을 갖춘다는 것은 무엇인가?
왕의 변성에 망보는 다락을 만들어 세우고 땅을 굳게 다져 무너지지 않게 하여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바깥의 원적(怨敵)을 제어하면 이것을 왕성이 첫 번째 일을 구족한 것이라고 한다.
또 왕의 변성에 성 밖으로 매우 깊고 넓은 못을 둘러 파고 잘 보수하여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면 이것을 왕성이 두 번째 일을 구족한 것이라고 한다.
또 왕의 변성에 성 주위로 평평하고 넓은 길을 내어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면 이것을 왕성이 세 번째 일을 구족한 것이라고 한다.
또 왕의 변성에 네 종류의 군사의 힘, 곧 상군(象軍)ㆍ마군(馬軍)ㆍ차군(車軍)ㆍ보군(步軍)을 모아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면 이것을 왕성이 네 번째 일을 구족한 것이라고 한다.
또 왕의 변성에 병기, 곧 활과 창을 미리 갖추어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면, 왕성이 다섯 번째 일을 구족한 것이라고 한다.
또 왕의 변성에 밝은 계략과
지혜와 변재(辯才)가 있고 굳세고 용맹스러우며 기특한 꾀가 있는 대장을 세워 문을 지키게 해서, 착한 사람이 들어오는 것은 허락하고 착하지 않은 사람이 들어오는 것은 막아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면 이것을 왕성이 여섯 번째 일을 구족한 것이라고 한다.
또 왕의 변성에 높은 담을 아주 튼튼하게 쌓고, 진흙을 바르고 흰 흙을 발라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면 이것을 왕성이 일곱 번째 일을 구족한 것이라고 한다.
왕성에서는 네 가지 식량의 풍요로움을 얻기 어렵지 않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왕의 변성에서는 물과 풀과 섶나무와 자재를 미리 준비하여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한다. 이것이 왕성에서는 첫 번째 식량의 풍요로움을 얻기 어렵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또 왕의 변성에서는 많은 벼를 거두고 또 보리를 저축하여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한다. 이것이 왕성에서는 두 번째 식량의 풍요로움을 얻기 어렵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또 왕의 변성에서는 점두(秥豆)와 콩과 팥을 저축하여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한다. 이것이 왕성에서는 세 번째 식량의 풍요로움을 얻기 어렵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또 왕의 변성에서는 소유(酥油)ㆍ꿀ㆍ사탕수수ㆍ엿ㆍ생선ㆍ소금ㆍ말린 고기ㆍ육고기를 구족하여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한다. 이것이 왕성에서는 네 번째 식량의 풍요로움을 얻기 어렵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왕성이 일곱 가지 일을 구족하여 네 가지 식량의 풍요로움을 얻기 어렵지 않게 된다면, 다만 안으로 스스로 무너지기 전에는 외적 때문에 부서지지 않는다.
이와 같이 만일 거룩한 제자들이 7선법(善法)을 얻는다면 4증상심(增上心)을 체득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 때문에 거룩한 제자들은 마왕이 틈을 노릴 대상이 되지 않고, 또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따르지 않으며, 더러움에 물들지도 않고, 다시는 뒷세상의 생명을 받지 않게 된다.
거룩한 제자들이 7선법을 얻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거룩한 제자들은 견고한 믿음을 얻어 여래에게 깊이 의지하며, 믿음의 뿌리가 이미 확립되어 끝내 다른 사문(沙門) 범지(梵志) 혹은 천(天)이나 마군[魔]이나 범(梵)이나 다른 세간을 따르지 않는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들이 첫 번째 선법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또 거룩한 제자들은 항상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알아,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더러운 번뇌로서 그것은 모든 악한 과보를 받고 생사의 근본을 만드는 것이므로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인 줄 안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들이 두 번째 선법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또 거룩한 제자들은 항상 남에게 부끄러워할 줄 알아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더러운 번뇌로서 그것은 모든 악한 과보를 받고 생사의 근본을 만드는 것이므로 남에게 부끄러워해야 할 것인 줄 안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들이 세 번째 선법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또 거룩한 제자들은 항상 정진(精進)을 실천하여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끊고 모든 선법(善法)을 닦으며, 항상 스스로 뜻을 일으켜 전일(專一)하고 견고하게 하여 모든 선의 근본을 위해서 방편을 버리지 않는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들이 네 번째 선법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또 거룩한 제자들은 널리 배우고 많이 들은 것을 받아 지녀 잊지 않으며 쌓고 모으며 널리 듣는다. 이른바 법이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으며, 이치도 있고 문채도 있으며 청정함을 구족하여 범행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법을 널리 배우고 많이 들어 익히기를 천 번에까지 이르고, 마음이 생각하고 관(觀)하는 바대로 밝게 보고 깊게 사무친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들이 다섯 번째 선법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또 거룩한 제자들은 항상 기억[念]을 행하되 바른 생각[正念]을 성취하고, 오래 전부터 익혀온 바와 오래 전부터 들은 바를 항상 기억[憶]하여 잊지 않는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들이 여섯 번째 선법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또 거룩한 제자들은 지혜를 닦고 행하여 흥하고 쇠하는 법을 관하고, 이와 같은 지혜를 얻어서는 거룩한 지혜로 밝게 통달하여 분별하고 밝게 깨달아 그로써 진정 괴로움을 없앤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들이 일곱 번째 선법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거룩한 제자들이 4증상심(增上心)을 체득하기가 어렵지 않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거룩한 제자들은 탐욕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을 체득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이것이 거룩한 제자들은 첫 번째 증상심을 체득하기가 어렵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또 거룩한 제자들은 각과 관이 이미 그쳐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一心]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第二禪)을 체득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이것이 거룩한 제자들은 두 번째 증상심을 체득하기가 어렵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또 거룩한 제자들은 기쁨의 탐욕[貪欲]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捨]ㆍ기억[念]ㆍ즐거움에 머묾[樂住]ㆍ공(空)을 갖추어 제3선을 체득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이것이 거룩한 제자들은 세 번째 증상심을 체득하기가 어렵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또 거룩한 제자들은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不苦不樂] 평정[捨]ㆍ기억[念]ㆍ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이것이 거룩한 제자들은 네 번째 증상심을 체득하기가 어렵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거룩한 제자들이 일곱 가지 선법을 얻으면 네 가지 증상심을 체득하기가 어렵지 않다. 따라서 마왕이 틈을 엿보지 못하고 또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따르지 않으며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다시는 뒷세상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
왕의 변성에 망보는 다락집을 세우고 땅을 견고하게 쌓아 무너지지 않게 하여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견고한 믿음을 얻어 여래에게 깊이 의지하고 믿음의 뿌리가 이미 세워져서 끝내 다른 사문 범지나 혹은 하늘ㆍ마군ㆍ범(梵)이나 다른 세간을 따르지 않나니, 이것을 거룩한 제자가 믿음이라는 망보는 다락집을 얻어 악과 불선을 없애고 모든 선법을 닦는 것이라고 한다.
왕의 변성 밖에 아주 깊고 넓은 못을 파고 잘 보수해서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막아내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항상 자기 자신에 대하여 부끄러워할 줄 알아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더러운
번뇌로서 그것은 모든 악의 과보를 받고 생사의 근본을 짓는 것이므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인 줄을 아는데, 이것을 거룩한 제자가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아는 해자[池塹]를 얻어 악과 불선을 없애고 모든 착한 법을 닦는 것이라고 한다.
왕의 변성에 두루 길을 내되 트이고 편편하고 넓게 하여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항상 남에게 부끄러워할 줄 알아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더러운 번뇌로서 그것은 모든 악의 과보를 받고 생사의 근본을 짓는 것이므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임을 안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가 남에게 부끄러워함이란 편편한 길을 얻어 악과 불선을 없애고 모든 선법을 닦는 것이라고 한다.
왕의 변성에 네 가지 군사의 힘, 곧 상군ㆍ마군ㆍ차군ㆍ보군을 모아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항상 정진하여 악과 불선을 끊고 모든 선법을 닦으며, 항상 스스로 의욕을 내어 전일하고 견고히 하여 모든 선을 위해 방편을 버리지 않는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가 정진이라는 군사의 힘을 얻어 악과 불선을 없애고 모든 선법을 닦는 것이라 고 한다.
왕의 변성에 병기, 곧 활ㆍ화살ㆍ창 따위를 미리 갖추어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널리 배우고 많이 들어 잘 지닌 채 잊지 않고 지식을 쌓아 모은다. 법이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으며 뜻도 있고 문채도 있으며 청정함을 구족하여 범행을 실현한다. 이와 같은 모든 법을 널리 배우고 많이 들어 익히기를 천 번에 이르고 마음이 생각하고 관하는 바대로 밝게 보고 깊게 사무친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로서 많은 지식이라는 군기(軍器)를 얻어 악과 불선을 없애고 모든 선법을 닦는 것이라고 한다.
왕의 변성에 밝은 책략과 지혜로운 변재가 있고 용맹스럽고 굳세며 기특한 꾀가 있는 대장을 세워 문을 지키게 하여 착한 사람이 들어오는 것은 허락하고 착하지 않은 사람이 들어오는 것은 막아서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항상 생각을 거듭하여 바른 생각을 성취하고 오래 전부터 익힌 바와 오래 전부터
들은 바를 항상 기억해 잊지 않는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가 기억[念]이라는 문 지키는 대장을 얻어 악과 불선을 없애고 모든 선법을 닦는 것이라고 한다.
왕의 변성에 높은 담을 아주 견고하게 쌓고 진흙을 바르고 흰 흙을 발라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지혜를 닦고 행하여 흥하고 쇠하는 법을 관하고 이와 같은 지혜를 얻어서 거룩한 지혜로 밝게 통달하여 분별하고 분명하게 깨달아 그로써 진정 괴로움을 없애는데, 이것을 거룩한 제자가 지혜라는 담을 쌓아 악과 불선을 없애고 모든 선법을 닦는 것이라고 한다.
왕의 변성에서 물과 풀과 섶나무 같은 재료를 미리 준비하여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탐욕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도 있고 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체득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하여 즐거움에 머물되 다함이 없으며 안온하고 쾌락하여 스스로 열반을 이룬다.
왕의 변성에서 많은 벼를 거두고 또 보리를 저축하여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각과 관이 이미 그치고 안이 고요해지고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定]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第二禪)을 체득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하여 즐거움에 머물되 다함이 없으며 안온하고 쾌락하여 스스로 열반을 이룬다.
왕의 변성에서 많은 점두와 콩과 팥을 쌓아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기쁨의 욕망[喜欲]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捨]ㆍ기억[念]ㆍ즐거움에 머묾[樂住]ㆍ공(空)을 갖추어 제3선을 체득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하여 즐거움에 머물되 다함이 없으며 안온하고 쾌락하여 스스로 열반을 이룬다.
왕의 변성에서 소유와 꿀과 사탕수수와 엿을 저축하고 생선ㆍ소금ㆍ고기 말린 것ㆍ육고기 따위가 다 충족하여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捨]ㆍ기억[念]ㆍ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禪)을 체득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하여 즐거움에 머물되 다함이 없으며 안온하고 쾌락하여 스스로 열반을 이룬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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