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독교의 주장
- 율법을 따르는 것보단 믿음이 중요함
- 무한한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면
- 자연스레 복음을 듣고 믿음이 생김
- 그러면 자연스럽게 기독교 공동체에 헌신하게 됨
질문:
믿음이 생기는게 어떻게 공동체로의 헌신으로 이어지는가?
이는 그저 믿음을 증명받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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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불교의 주장
- 모든 고통은 집착에서 옴
- 깨달음은 곧 무아지경을 말하는 것임
- 내가 없음을 안 뒤엔 그저 세상을 관망하는 삶을 삶
- 먹더라도 먹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사람에 집착하지 않음
질문:
무아지경에 이른 뒤 삶을 연장하는 것은 그마저도 집착 아닌가?
배고픔을 느낀다는 것 그 자체가 욕망이고
그렇기 때문에 먹는다는 것 자체가 의지의 실현 아닌가?
그러므로 그를 통해 삶을 연장한다는 것 자체가 집착 아닌가?
메타적 접근이네... 기독교의 경우는 내가 추정한것이지만 교리상..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는순간.. 판단을 "자신 외부의 신"이 아닌.. "자신 내부의 예수님"이런식으로 바뀌는 구조가 있어서.. "자신만이 옳다 그 근거는 내 안의 예수님"이런식으로 될 가능성이 있기에.. 그런게 아닌가 추정하고 있음..
그래서 "열매로 알리라","행동으로 복음을 전파하라" 이런식으로 판단기준을 다시 외부로 돌리려는 시도를 한게 아닌가.. 추정중임..
무한한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면 =>자연스레 복음을 듣고 믿음이 생김=>그러면 자연스럽게 기독교 공동체에 헌신하게 됨 이 순서라기보단... 판단을 내부로 돌릴가능성이 있는 신약의 교리상 안전장치적 요소가 구약에 비해 약하다고 여겨진게 아닌가...
"믿음을 증명받기 위한 장치"라기보단 기독교공동체 내부에서 "교인들이 독선으로 빠지는걸 막는 안전장치"인게 아닌가 추정중임.. 내가 기독교가 아니라 잘은 모름..
근데 다시 생각해보면 연결을 좀 세게 잡은 거 같긴 함.. 역시 잘 모르겠네..
@ㅇㅇ(223.39) 절대자 외치는 종교 치고는 너무 허술한 것 같아서 모르겠음
불교는 욕망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욕망에 집착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죠. 배고프면 먹는 것이고, 졸리면 자는 것이죠. 그리고 밑에 글에도 썼지만 무아 라는 말이 '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이 인과의 굴레에 빠져있다는 것을 부정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열반, 깨달음이라는 것은 지금 사는 삶이 유일한 삶이며, 집착에 빠지지 말고 살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볼 때 희론에 빠져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본래면목을 보고, 자신의 한번뿐인 삶의 주인공이 되어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깨달음 입니다.
그것조차 구차한 변명아님?
기독교는 선한 사람이 반드시 기독교 공동체에 헌신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음. 불교는 삶을 연장하는 것 자체를 집착이라고 보지 않음. - dc App
삶을 연장하는것이 집착이라는것에 집착하는것이 집착 ㅋㅋ
불교쪽은 특이해서 그냥 고정된 상이 되서 거기 머무르면 집착임. 어떤 것 어떤사상 무슨무슨 교리, 그게 고정점이 되서 인간을 규율하기 시작하면 안조음
'자체' 라는 말이 무엇이 있어서 고정점으로 기능하며 인간을 규율해야 된다는 일종의 강박인데 불교는 좀 이런거 시러해서리
@rfi(59.7) 불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던 집착과 의지를 구분하는 기준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짜침
본인도 의지/ 집착을 구분해서 쓰는게 맘에 안듬. 집착은 진짜 근원적인 상태인데, 이걸 누구는 부정적인걸로 볼 공산이 있어서 ㅋㅋ
@rfi(59.7) 알아보니까 아라한의 자살이라고 진짜 그렇게 생각해서 깨달음 얻자마자 냅다 죽어버린 수행자들도 있던데 진짜 시발 ㅋㅋ 이건 존나 존경스럽긴 함 그들 입장에선 쓰레기 버린 셈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