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유의지 주제 :

철갤을 보다가 자유의지라는 단어를 봤다. 이번에는 이 주제가 좋아보여 선택해 봤다.

자유의지라는 개념을 해석하기 위해서 분해하기 전에. 자유의지라는 개념이 가진 난해함을 먼저 봐야한다.

철학에는 보이지 않고 만지거나 들을수 없는 여러 개념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자각같은. 자신이 자각하는 행위를 하거나 느끼면서 이게 자각이구나 식별이 가능한 것이 있고. 행위나 느낌으로 식별조차 할수없는 더 난해한 개념들이 있는데 그것이 자유의지고. 이것이 자유의지라는 개념의 난해함이다.

그러면 이 난해한 개념을 어떻게 해석을 시작해야 할까? 내가 시도한 방법은 최초로 자유의지라는 개념을 쓴 것이 확인되는 것은 언제일까? 라는 질문에서 이 주제를 풀어가는 것이였다.

기록이 사라졌거나 확인 불가능해서 식별 못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자유의지와 비숫한 개념의 단어의 기원은 하단과 같다.

지금부터 2300년전인 기원전 약 300년경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철학자 데모크리오스의 원자론(Atomism) 이라는 이론에서 "우주는 완전한 인과에 의해 결정된다" 는 결정론을 비판하고 반론하는 과정에서. 에피쿠로스가 사용한 자발적 행동(고대 그리스어 : hekousion)이라는 단어가 자유의지와 같은 뜻은 아니지만. 자유의지라는 단어와 유사한 최초의 기록으로 학자들은 본다.

그러면 여기서. 에피쿠로스는 무슨 생각에서 이런 단어를 쓴 것인가? 그 답은. 결정론으로 해석할 경우 이미 결정된 것이므로. 인간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질 수 없게 되므로 그가 믿던 가치가 무너지기 때문에. 자발적 행동이라는 개념을 제시해서 세상은 결정론이 아니라고 반론한 것이 이유였다.

따라서. 에피쿠로스의 "자발적 행동" 은  결정론을 반대하고 개인이 자신의 일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근거로서 제시된 개념이었고 "외부 필연이나 우연이 아닌, 행위자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행위" 정도로 설명했지만. 그래서 그게 무엇이고 어떻게 식별하는지는 제시한 것이 없었다.

현대까지 에피쿠로스의 개념이 그대로 변형되지 않고 이어졌을까? 답은 아니다. 지금부터 약 1600년전인 서기 약 3-400년경. 북아프리카에서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가 자유의지라는 단어를 직접 정리하고 알리는 것에 영향을 끼친 다른 인물이었다.

그는 저서 "De libero arbitrio" ( 자유의지에 관하여 ) 에서 기록상 최초의 자유의지 개념을 제시했고. 그 맥락과 이유는 하단과 같다.

그의 저서에서는. 처음 하나님은 악이 아닌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악은 실체가 아니라 선함의 결여 결핍이라고 주장하고 -> 이런 선함의 결여나 결핍은 자유의지를 잘못사용하는 오용에서 온다고 이야기한 후 -> 따라서 자유의지의 오용이 악을 만드는 원천이다. 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 맥락에서 그가 사용한 자유의지란 하나님이 악을 만들었다는 것을 반론하고. 잘못 사용하면 선함의 결여나 결핍을 만드는 원천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그는 자유의지를 오용되는 것으로만 해석하진 않았는데.

그는 자유의지를 "선택의 능력"으로. 더 높은 선을 선택할 수 있도록 주어졌으며. 더 높은 선을 선택할때 그것은 자유의지의 잘못된 사용이 아니라 적절한 사용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선택하는 능력"을 자유의지로 본다는 점에서 모호하지만 조금은 식별 가능하다.

그러면 1600년이 지난 지금. 아우구스티누스의 "선택능력" 자유의지 개념이 지금까지도 계속 유지되고 있을까? 그는 "서방 교회의 아버지" 라고 불리는 영향력 있던 신학자고 당대에도 히포 지역의 이름있던 주교였기 때문에. 그가 제시한 "선택의 능력" 과 "오용과 적절한 사용" 같은 개념은 현대까지 영향을 주고 유지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닐것이다.

특히 지금부터 약 200년전 1789년 발생한 프랑스혁명 사건, 약 100년전인 1917년 소비에트 탄생 사건에서도 "자유의지" 같은 개념이 핵심 아젠다로 사용됐는데. 이것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유의지 개념과 같을까?

이들이 당시 제시한  "자유의지" 는 "기존 질서에 반대하고 억압된 분노나 열등감 같은 감정 표출과 생각"에 좀더 가깝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의미와 개념으로 소통하고 공감했더라도. 백과사전에 기존질서를 반대하고 억압된 분노나 열등감 같은 감정표출과 생각이라고 적어놓진 않았던것 같다.

현대에는 1960년대 미국의 히피 문화나 최근에는 힙합같은 대중음악 장르에서 자유의지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들의 자유의지 개념도 에피쿠로스나 아우렐리우스의 자유의지란 개념보단.
"속에 쌓인 울분이나 열등감 분노같은 것을 표출하는 감정과 생각" 을 자유의지라는 개념으로 보는것 같다.

이제 여기에. 신경과학자 로버트 사폴스키(Robert Sapolsky) 같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인간은 자신이 살아가는 유전자나 환경같은 것에 의한 영향에서 그것과 무관한 무언가가 될수 없으니 자유의지는 환상이라는 회의론을 주장하기도 하는데 하단은 사폴스키의 원문과 번역문이다.

Show me a neuron (or brain) whose generation of a behavior is independent of the sum of its biological past."
- by Robert Sapolsky.

"뇌가 어떤 행동을 만들어내는데, 그 행동이 그 뇌의 모든 생물학적 과거의 총합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이라고 보여달라. 그걸 보여주면 자유의지가 존재한다고 인정하겠다.”
- 로버트 사폴스키.

여기까지 "자유의지" 라는 단어를 해석해 봤다. 이제 이것 중 무엇에 공감하는지 내 생각을 적어보겠다.

먼저. 억눌린 감정을 폭동이나 반사회적으로 표출하는건 자유의지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건 억눌린 감정을 표출한다는 본능을 자유의지라고 착각하는 상태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 다음. 최초라는 어원으로 놓고보면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선택능력" 이 적절한 해석이라고 생각이 된다. 단. 그는 올바른 선택으로 신에 대한 신앙심을 답이라고 제시했는데. 나는 그 범위가 신앙심 외에 다른 범위로 더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 다음. 로버트 사폴스키의 질문은. 너무 엄격한 불가능한 제한을 걸어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생물학적 총합에서 독립된 행동을 실제로 했더라도 뇌를 열어서 보여서 입증할수가 없고. 뇌 정보와 전혀 무관한 머리에 없는걸 해야만 자유의지다 라는 해석은. 자유의지보다는 영혼을 증명해라고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생물학적 모든 총합이 아니라. "기존 정보를 조합해서 이전보다 더 나은 새로운 정보를 만드는 것" 정도를 뇌과학 범주에서 자유의지로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사폴스키 말처럼 모든 총합을 포함하면 기존 정보 조합도 자유의지가 아니라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제 이걸로. 인간의 자유의지는 실존하는가? 질문에 대입해보면..

아우구스티누스가 제시한 개념 해석에서는 선택능력으로서 자유의지는 실존한다고 생각하지만 더 나은 선택의 범위는 신 외에도 더 확장해야 하고. 로버트 시폴스키의 해석에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부분 변형해서 다시 제시해본 개념으로 보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억눌린 감정 표출은 자유의지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제외하고. 에피쿠로스의 해석에서는 뭐가 필연이고 우연인지 분별하지 못하므로 논할수가 없다.


여기까지 자유의지를 주제로 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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