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내 전글 고딩쓴 철학 읽어보는거 추천드릴게요.
이기심이랑 이타심은 둘 다 실존적 층위다.
근데 이기심이 먼저다. 태어난 직후 아기는 자기 배고픔밖에 모른다. 생존 본능이 물리적 층위에 제일 가깝기 때문에 이기심의 창발이 먼저 일어난다.
근데 살다보면 타인을 만난다. 혼자보다 같이가 생존에 유리하다는 걸 실존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그 경험이 축적되면서 이기심이 타인을 향하는 방향으로 확장된 게 이타심이다.
즉 이타심은 이기심의 적이 아니라 이기심의 확장이다.
그리고 그 이타심들이 집단 안에서 축적되면서 “해치지 말자” 같은 윤리가 창발한다 (사회적 층위)
이타심이 약한 사람한테는? 사회가 교육이나 처벌로 외부에서 각인시킨다. 그것도 사회적 층위가 실존적 층위에 개입하는 과정이다.
결론 : 절대적 선악 없어도 윤리는 존재 가능하다. 이기심 -> 이타심 -> 윤리 순서로 창발하기 때문이다.
결국에 내가 하고 싶은말은 이거다.
-> 이기심이고 지랄이고 행복하면 된거 아님?
남의 행복이랑 조화를 이루는 게 어려운 문제. 니가 풀어봐라. 글 보니까 똘똘해 보이니 전망 있는듯!
사랑이나 연민 등의 타인을 향한 감정은 타인이 내 몸에 남긴 흔적에 대한 관념인 이상 이기심의 확장이라는 표현이 맞는 듯 하네요
그 관념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게 왜 이기심이죠? 그냥 모른체 해도 되는데
@철갤러1(211.234) 내몸의 흔적을 기반하지 않은 관념으로서의 이해심은 오롯이 타인을 위한 이타심이 될 것 같아요
@철갤러1(211.234) 이런 창발, 자유의지의 감정은 어떤 느낌인지 아까부터 궁금하였던 것이죠
@철갤러1(211.234) 저는 모든 이타적인 감정이 내 몸에서 출발하는 한 나를 사랑하는 것에 그치지 않다는 생각이라 이타심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요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데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기 하네요..
@철갤러1(211.234) 타인을 사랑하는 일은 절대 없다는 것이죠 나는 평생 나만 사랑하다 죽는 거죠 넘 극단적이라 불쾌하다면 죄성하죠..
@철갤러1(211.234) 나는 나 이외에는 절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거예요
@철갤러1(211.234) 그래서 내 몸이라는 경계에 비애를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