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함께 했던 나의 생애들"에서 발췌
예수가 자신을 오직 영(Spirit), 혹은 상승 마스터들의 대변자(mouthpiece)로 여겼다는 사실을 알지 않고는, 예수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추락한 존재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로, 즉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전능한 힘을 가진 존재로 둔갑시켜놓은 것은 이러한 사실을 정말로 조롱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자기 자신을 우상화하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아주 단호하게, 그리고 아주 직접으로 거부했습니다.
나는 아직도 한 가지 상황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사람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것들을 물어볼 수 있는 세션을 종종 가졌습니다. 대개, 예수는 상승 마스터들로부터 구술을 받는 형태로 대답했지만, 어떤 때는 그 자신의 존재로부터 대답했습니다. 그런 세션 동안, 한 남자가 예수에게 다가와, 예수가 분명히 특별한 사람이라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나는 그 남자의 굽실거리는 태도에 예수가 어떻게 반응할지를 느낄 수 있었으며, 그 남자는 “선한 마스터(Good master)시여,.....”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는 말을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왜 당신은 나를 선하다고 하나요? 하나님(God) 이외에는 어떤 사람도 선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말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이 말이 문자 그대로 뒤로 넘어질 정도로 엄청난 힘으로 들렸으며, 예수를 통해 흐르는 영(Spirit)의 힘으로 인해, 그 남자는 동요되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그 남자는 동요되었으며, 따라서 그는 약간의 자기 탐구를 하고 , 결국 예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성경에는 예수가 자기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자신을 통해 일을 하시는 분은 아버지(상승 마스터 및 자신의 아이 앰 현존)라고 말한 대목이 있습니다. 어쨌든, 내 말의 요지는 예수는 자신을 통해 흐르는 힘의 원천(originator)이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그 힘이 영(Spirit)의 힘이었으며, 자신은 이러한 영의 힘을 소유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시 출발점으로, 즉 영의 힘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예수가 말을 시작하자마자, 많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들은 예수가 했던 말들 중에서 자신이 이미 믿고 있던 것들에서 벗어나거나, 모순되는 한 가지에 집착하여, 이것을 예수의 말을 부정하고, 예수의 곁을 떠나는 구실로 삼았습니다. 진실은 영의 힘이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함으로써, 만약 예수의 현존 속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이들이 기존의 믿음을 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예수의 곁을 떠나야 했으며, 표면적인 구실은 예수가 거짓된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패턴은 서기관(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이들을 따랐던 사람들에게서 종종 찾아볼 수가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현상은 유대인들 중에서 상류층의 사람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이들은 예수를 부정하기 위한 구실을 찾아낼 가능성이 더 높았습니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 중에서도 예수를 부정했던 사람들도 많이 있었으며,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추락한 존재들이 만들어놓은 종교들 속에 머물러 있으면,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외적인 규칙을 따르기만 하면, 이 생이 끝난 후, 구원이 보장된다는 말을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추락한 종교들은 살아있는 영의 말씀이 흐르는 것을 (우연을 제외하고) 거의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공식적인 주장에 도전하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메커니즘은 간단합니다. 성직자들은 영(Spirit)의 힘을 갖고 있지 못하므로, 사람들이 성직자들과 동일한 의식 상태에 있으면, 자신들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쉽게 믿게 됩니다. 아무튼, 사람들은 성직자들의 지배(reign)를 반박할 영(Spirit)의 힘을 아직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열린 문이 된 사람, 즉 영(Spirit)의 힘이 흐를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될 때, 이러한 환상은 도전받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지 못한 뭔가를 이 사람이 지니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게 됩니다. 이 사람이 높은 의식 상태에 도달함으로써, 이러한 뭔가를 성취하게 되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알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구원받기 위해서 더 높은 의식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정체성 몸에 암호화한) 내부의 기억】을 깨우려고 위협합니다. 우리 모두는 내적인 앎, 즉 이원성 의식을 지니고는 하늘나라로 들어갈 수 없다는 앎을 지니고 있으며,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상태로는 실제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주 혼란스럽게 만들 수가 있으며, 혼란의 정도는 책임을 거부하고, 알아채지 못하는 마음 상태에 얼마나 집착하느냐에 따라 정해지게 됩니다. 영(Spirit)과의 조우는 사람들을 일깨울 수가 있으며, 따라서 이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며, 편안한 삶도 변화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에 직면하게 됩니다. 만약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깨어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하며,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장 혼한 방법은 영(Spirit)이 흐르고 있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결점을 찾아내는 것이며, 이러한 외적인 결점을 이용해서, 그것을 거부하게 됩니다. 예수와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의 출생지(나사렛에서 훌륭한 뭔가가 나올 수 있습니까?)에서부터, 개인적인 외모, 혹은 말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구실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주된 수단은 예수의 말 중의 일부를 문맥에서 빼내어, 그러한 말들을 공식적인 경전이나, 해석과 비교했으며, 그런 다음 예수를 거짓된 스승이라고 부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추락한 존재들은 충성심에 호소하는 것에 매우 능숙합니다. 그들의 추론은 매우 간단합니다. 이 경우, 유대교는 명백히 진실이므로, 만약 예수가 진짜 교사, 심지어 메시아라면, 예수는 유대교의 가르침과 모순되는 말을 한 마디도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였습니다. 그건 그렇고, 만약 예수의 살아 있는 말씀이 공식적인 교리와 모순이 된다면, 오늘날의 대다수의 기독교인들도 예수의 살아 있는 말씀을 거부하게 될 것입니다(동일한 논리를 이용하여, 많은 기독교인들이 분명히 이 책을 거부하긴 하겠지만).
물론, 여기에서의 문제는 만약 공식적인 교리가 추락한 존재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면(늘 그렇듯이), 영(Spirit)은 교리와 모순되는 말을 해야만,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사람들이 추락한 존재들로부터 그들을 자유롭게 해줄 수 있는 것을 거부하기 위한 이유로 이것(교리와 모순되는 말)을 사용한다면, 이러한 사람들은 한 생, 혹은 여러 생에 걸쳐, 맹목적으로 추락한 존재들을 따르는 추종자로 남아 있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내 말의 요지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가르침과 특히 불안감을 주는 영(Spirit)의 흐름을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말씀이 흐르는 전통이 유지될 수 없었던 이유를 부분적으로 이것이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공식적인 기독교가 출현하기 시작했을 때, 예수 밑에서 훨씬 더 힘들고, 도전적이었던 제자의 길을 걷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은 더 편안했던 이러한 종교를 선호했습니다. 나중에, 보다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겠지만, 설명의 다른 부분은 (물론) 추락한 존재들로부터 영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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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베리
굿
네? 그런게있나요? 나는단지궁금해서보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