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함께 했던 나의 생애들"에서 발췌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원성으로 들어가고 난 이후, 루시퍼는 피해를 주었던 많은 생명 흐름들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내 첫 번째의 육화에 대해 설명했던 것처럼, 루시퍼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죽이는데 대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루시퍼가 이러한 사람들을 모두 만날 필요는 없었지만, 개인적으로 자신이 직접 접촉했던 사람들은 만나야 했습니다. 집단적인 살상일 경우, 루시퍼는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견해를 듣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심판이 끝나갈 무렵, 예수와 나는 재판에 참석하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예수가 먼저 갔으며, 나는 이것을 목격할 수가 있었습니다. 내가 육화하기 이전에 일어났었던 상황들과 예수가 어떻게 해서 루시퍼에게 반응하는 패턴 속으로 휩쓸리게 되었는지를 보게 된 것은 나에게는 참으로 귀중한 체험이었습니다. 당연히, 나는 예수가 나보다 더 진보해 있거나, 경험이 많은 생명 흐름이라고 여겼으며, 예수가 나와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어쩔 수 없이 반응하는 패턴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나에게는 위안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추락한 존재들에 관한 한, 여러분이 얼마나 진보해 있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됨으로써, 나는 예수에 대해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조그마한 숭배심마저 극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상적이지 않은 행성에 육화하게 되면, 반응하는 패턴 속으로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추락한 존재들이 저지르는 잔혹한 행위들이 너무나 충격적이고, 극단적이므로, 그러한 행위들에 반응하지 않을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추락한 존재들 밖에는 없습니다. 타인들을 분리된 존재라고 인식할 때에만, 반응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생명과 하나라는 인식을 지니고 있다면, 추락한 존재들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 대해 연민을 느낄 수밖에 없으며, 이 말은 여러분이 반드시 반응하게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또한, 나는 예수가 반응하는 나선에서 나보다 훨씬 먼저 빠져나오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나로 인해 촉발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예수가 많은 육화를 통해, 추락한 존재들과 싸우기는 했지만, 폭력을 행사할 때마다, 그는 자신과 폭력을 얽어매는, 로프에 줄이 추가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으로 인해, 그는 싸우는 것이 헛된 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다른 식으로 반응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결국 예수와 내가 육화하여, 전쟁터에서 서로 맞서 싸우는 상황으로 이어졌으며, 우리는 폭력에 대한 다른 대안을 찾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추락한 존재들의 문제를 폭력에 기초하여 해결하려고 했던,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내 욕망을 버리는데, 이러한 결심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예수가 마침내 루시퍼를 완벽하게 용서하는 것을 보게 된 것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광경이었습니다. 나는 예수와 루시퍼 사이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에너지적인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예수는 추락한 의식으로부터 완벽하게 해방되었습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루시퍼가 나에게 총체적인 고통을 가했던 전체적인 상황을 (이번에는 내부가 아니라, 외부로부터)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나에게는 대단히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몸에서 빠져나와 있던 사이에, 루시퍼가 내 마음속에 주입했던 모든 프로그램들을 하나하나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는 루시퍼가 아주 교묘한 프로그램을 내 마음속에 주입해 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몇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먼저, 루시퍼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나의 충격을 이용하여, 전 우주에서 추락한 존재보다, 더 나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 속에 프로그램 해놓았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내가 추락한 존재라는 것을 발견하는 거라고 내 마음속에 프로그램 해놓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루시퍼는 내가 지구로 오기 전에, 실제로 내가 추락한 존재였으며, 루시퍼보다도 훨씬 더 나쁜 잔혹한 짓을 저질렀다는 환상을 내 속에 프로그램 해놓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목격하게 되었을 때, 내가 최초의 트라우마(original trauma)에 노출되고 난 이후부터, 줄곧 내 존재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뭔가를 살펴보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최초의 트라우마에 노출되었을 때, 그와 같은 고통을 결코 다시는 체험하고 싶지 않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욕망이었지만, 이러한 욕망은 거의 이백만 년 동안이나 나를 노예 상태로 가두어놓는 쇠사슬이 되고 말았습니다.
나는 그와 같은 고통 (혹은 더 나쁜 고통)을 결코 다시는 체험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나는 이제 내가 추락한 존재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그야말로 상상할 수도 없는 최악의 고통이 되는 프로그램을 마음속에 지니게 되었습니다. 또한, 나는 과거에 내가 추락한 존재였으며, 또한 끔찍한 잔혹한 행위를 저질렀다고 말해주는 프로그램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써, 가능한 최악의 고통을 피하려고 했던 욕망으로 인해, 루시퍼가 내 속에 삽입해놓은 프로그램들을 찾으려고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내가 추락한 존재였을 수도 있다고, 단지 의심하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고통스러웠으므로, 그러한 프로그램을 살펴보려고도 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것을 살펴보려고 한다면, 내가 죽게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프로그램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으며, 그것은 그러한 프로그램을 살펴보는 것이며, 그렇게 해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뭔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뭔가를 반드시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살펴봄으로써, 그것을 체험할 수가 있으며, 그러면 그 프로그램이 여러분이 무엇이라고 말하든, 그것보다 여러분이 더 큰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루시퍼와의 이러한 만남이 끝난 후, 나는 조용한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나는 내면으로 들어갔으며, 내가 추락한 존재였을 수도 있다고 여겼던 두려움과 접촉했습니다. 그 고통은 그야말로 엄청나게 심각했지만, 나는 그러한 고통을 회피하려고 하지 않고, 내가 이전에 항상 했던 것처럼, 그 고통 속으로 곧장 들어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뭔가를 피하려고 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실제로는 다른 종류의 고통이 만들어지게 되며, 피하려고 하는 한, 계속해서 그러한 고통을 지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고통에 익숙해지게 되면, 두려워하는 고통에 비해, 실제로는 견딜 만하다고 여겨지게 됩니다.
나는 잠시 동안 고통 속으로 들어가는 가치에 대해 알고 있었으며, 루시퍼가 삽입한 다른 프로그램을 포함하여, 내 심리 속에 저장되어 있는 다른 주제들을 살펴보기 위해, 나는 종종 이러한 방법을 이용했습니다. 나는 이제 이 주제에 대해서도 이 방법을 사용하기로 결심했으며, 내가 추락한 존재였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생겨난 고통 속으로 곧장 들어갔습니다. 늘 그랬듯이, 일단 고통 속으로 들어가고 나면, 그 고통은 생각했던 것만큼 그렇게 나쁘지가 않았습니다(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감정적인, 정신적인, 정체성의 고통이며, 물질적인 고통은 아님). 우리의 마음속에는 어떠한 메커니즘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은 과거의 체험으로 인해,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받았다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우리의 마음은 어떠한 정신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게 되며, 이러한 이미지에 따라, 고통을 견딜 수 없다고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속에는 그러한 고통을 다시 체험하지 않으려고 하는 저항이 만들어지게 되며, 상황을 견딜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이러한 저항입니다. 지구와 같은 행성에는 우리에게 엄청난 고통을 가져다주는 상황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전적으로 사실입니다. 하지만 체험하는 것에 저항할 때에만, 고통이 견딜 수 없을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내면적으로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내맡김을 통해 고통스러운 상황을 체험하고자 하면, 곧바로 고통이 견딜만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고통이 아주 심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견딜만하다고 여기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추락한 존재였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야기된 고통 속으로 들어갔을 때, 나는 그 고통이 견딜만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다음, 나는 고통의 핵심 속으로 곧바로 들어가, 어떠한 제약도 없이 그러한 고통을 온전하게 체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나는 솔직하게 “그럼, 만약 내가 정말로 추락한 존재였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다음, 과거에 내가 어떤 존재였는지와는 관계없이, 내가 자기 초월의 길에 전념했으며, 따라서 내가 추락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나는 빠르게 고통을 통과했으며, 내면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는 이제 내가 추락한 존재였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살펴볼 수 있게 되었으며, 나는 삶의 전 기간(entire lifespan)에 대한 영상(vision: 이미지)을 받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지구에 오기 전에 내가 추락하지 않았으며, 루시퍼가 저질렀던 것과 같은 잔혹한 행위도 결코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도 분명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루시퍼처럼, 생명에 대한 총체적인 무감각을, 내가 결코 개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루시퍼의 몇몇 반응들이 재연되는 것을 보게 됨으로써, 나는 또 다른 교훈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나는 루시퍼가 생명에 대해 철저하게 무감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내 마음으로 결코 감쌀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다른 많은 사람들도 이러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많은 사람들 역시도 “추락한 존재들이 정말로 그렇게 나쁠 수가 있을까?”라고 의심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러한 사람들은 생명에 대해 민감하므로, 사람이 그 정도로 민감성이 완벽하게 결여될 수 있다는 것을 결코 상상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추락한 존재들이 완벽하게 민감성이 결여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가 추락한 존재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하며, 또한 내 경우에서처럼, 그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심지어 “악마에 대한 연민”을 키우기도 했으며, 이로 인해 이러한 사람들은 정말로 빠져나오기 어려운 정신적인 감옥 속에 갇히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특히 자만심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 즉 “자신들이 틀렸다”라는 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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