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함께 했던 나의 생애들"에서 발췌
내가 추락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 나는 최악의 두려움과 대면하게 되었으며, 또다시 어떤 것도 이보다 더 나빠질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커다란 해방감이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죽음에 가까워졌을 때, 또다시 어떤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추락한 존재들은 우리의 심리 속에 존재하는 뭔가를 살펴보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듦으로써, 우리를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 뭔가를 살펴보려고 하는 두려움이 살펴보려고 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고통보다 더 크다고 여기는 한, 우리는 완벽하게 갇힐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교착상태를 타개하고, 앞으로 이동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식(awareness)을 끌어올리는 것뿐입니다.
최악의 두려움을 극복하게 되었으므로, 나는 이제 두 번째로 나쁜 두려움을 살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러한 두려움이 무엇인지를 빠르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구에서 이백만 년 동안이나, 나는 루시퍼를 이해하고, 그를 도와주거나, 아니면 지구가 루시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뭔가를 하려고 하는 열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백만 년 동안 많은 시련과 고통을 당해왔으며, 그것이 의미 있는 것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한 노력이 시간 낭비가 되지 않도록, 나는 모종의 진보가 이루어지기를 원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러한 노력이 가치 있는 것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두 번째로 큰 두려움이 무엇인지 알 수 있나요? 그것은 이 지구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두려움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의 개인적인 변화(variation), 즉 내가 틀렸다고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추락한 존재들에 대해 내가 완전히 틀렸을 수도 있다고 걱정했었던 것입니다. 어쨌든, “내가 루시퍼와 교감했던 것이 루시퍼에게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 했던 것이 아닐까?”라고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겪었던 모든 고통이 완전히 시간 낭비에 불과했던 것일까, 즉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느라고 이백만 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한 것이 아닐까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나는 곧장 고통 속으로 들어갔으며, 루시퍼의 재판 중에서 마지막 부분을 지켜보았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루시퍼는 상처를 주었던 모든 사람들과 대면하고, 자신에 대한 그들의 반응을 체험하고 난 후, 오메가와 기타 몇몇 상승 마스터들이 루시퍼에게 다가갔습니다. 이들은 루시퍼의 반응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다시 말해, 이러한 체험으로 인해, 루시퍼가 추락한 의식을 버리고, 이번 및 과거의 구체에서 권능을 잘못 부여했던 모든 에너지들을 변형시키는 것을 포함하여, 상향의 길, 즉 그리스도임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걷고자 하는지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분명히, “과거의 삶에 대한 이러한 고찰(life review: 재검토)”로 인해, 추락한 존재는 대개 연민에 눈을 뜨게 되며, 부정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충격을 받게 됩니다. 타인들의 반응을 체험함으로써, 추락한 존재는 대개 빛의 불꽃(spark of light)이 아직도 자신의 내면에 살아 있으며, 따라서 모든 생명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됩니다. 루시퍼와 마스터들 간에 논쟁이 시작됨에 따라, 루시퍼에게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처음에, 루시퍼는 마스터들이 자신에게 하고 있는 것이 자신(루시퍼)의 자유의지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루시퍼는 자유의지는 절대적인 것이므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영원히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자신에게 이것(상향의 길)을 강요한 것은 자신의 자유의지를 침해하는 것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마스터들은 선택에 따른 결과가 없었다면,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고 설명하면서, 루시퍼를 설득했습니다. 선택이 자기 자신과 타인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부정하게 됨으로써, 그러한 선택으로 인해, 결국 무시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결과와 마주했던 생명 흐름과의 대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마스터들이 루시퍼의 자유의지에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루시퍼 스스로가 자신의 자유의지에게 강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루시퍼가 체험하고 있었던 것이 마스터들로 인해 야기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에 따른 궁극적인 결과였습니다.
이것이 나에게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 보였으며, 나는 여기에 대해 루시퍼가 반박할 수 없었을 거라고 느꼈습니다. 부정 속에 빠져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루시퍼도 이것을 의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그 대신에 다른 추론을 제기함으로써 관심을 딴 곳으로 돌리려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루시퍼가 누군가는 했어야 했던 일을 자신이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모든 존재들에게 자유의지가 주어져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존재들 가운데 일부는 필연적으로 이원성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원성 속에는 두 개의 극성들이 존재하고 있으므로, 누군가는 반대편(adversary)의 역할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신(神)이 하는 모든 것을 반대하는 악마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신이 사람들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한 데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였습니다. 사람들이 뭔가를 피해 갈 수 있고, 자신들이 선(善)하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는 필히 누군가는 나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마스터들은 이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사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들이 이원성에 빠지게 되면, 두 개의 극성의 진화는 불가피합니다. 하지만 이원론적인 극성들 중에서, 선(善)한 극성으로 육화한 사람들과 악(惡)한 극성으로 육화한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들이 선택한 것에 따른 결과와 마주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다시, 루시퍼가 직면하게 된 상황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필연적으로, 이원론적인 극성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해서, 당초의 선택이 없었던 것으로 무효화될 수는 없습니다. 먼저, 사람들은 이원성으로 들어가고자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이들은 어떠한 극성으로 육화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했으며, 그런 다음 그러한 극성을 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또다시, 만약 선택에 따른 결과가 없다면, 선택은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루시퍼가 행했던 행위의 궁극적인 결과가 이원성을 선택하는 그의 기회가 반드시 끝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다시, 루시퍼는 전혀 반박하지 않았으며, 신(神)이 존재들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함으로써, 추락한 존재들에게 사실상 지구를 주었다는 주장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지구는 자신들이 지배하고 있으며, 자신들은 지구를 대상으로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따라서 지구의 일에 상승 마스터들은 관여할 권리가 없으며, 추락한 존재들로부터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줄 권리도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추락한 존재들을 여기로 오게 한 것은 지구인들의 선택이었으며, 오직 지구인들의 선택을 통해서만, 자신들을 몰아낼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추락한 존재들로부터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려고 함으로써, 상승 마스터들이 법칙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상승 마스터들은 추락한 존재들이 실질적으로 지구인들의 선택권을 박탈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구인들이 알 수 없는 선택권을 선택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상승 마스터들은 우리에게 이원성에서 벗어난 뭔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줄 권리가 있으며, 정확히 말하면, 붓다, 예수 그리고 기타 모든 참된 영적인 스승들이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또한, 마스터들은 지구에 살고 있는 임계 수치의 사람들이 추락한 의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추락한 존재들이 완벽하게 제거될 수 없다는 것도 설명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이외에도, 개별적인 존재에게는 수명이 있으며, 루시퍼는 그야말로 개인적인 기회가 막바지에 도달해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마지막에 근접해 있었지만, 예수를 죽임으로써, 자신에게 허용된 시간의 종말을 앞당겼던 것입니다.
그런 다음, 루시퍼는 이러한 모든 것들이 자유의지가 엉터리이며, 그러한 자유의지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단지 이전에 했던 주장을 새로운 말로 반복하는 것이었으므로, 다소 지루했습니다. 나에게는, 루시퍼가 기본적인 사실, 즉 결과와 마주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자유의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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